나는 오늘도 달린다.
우리 집에는 운동중독자가 한 분 계신다.
10년여 년 전 나는 첫째 육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부터 그는 철인 3종을 나간다며 매 주말마다 마라톤, 수영장, 사이클을 연습하러 다녔다.
그는 그래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고, 다녀와서는 바짝 가정적인 남편이 되었기에 구박? 은 했지만 보내주었다.
남편에게 감화되어 운동에 관심을 가질 법도 하지만 나는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일상생활만으로도 에너지가 부족한 타입이랄까.
그러다가 제주에 이주했는데, 제주에서는 운동을 안 하면 죄라고 느껴질 만큼 운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마침, 살기 위해 운동한다는 40대에 막 들어선 시점이라 나도 여러 가지 운동을 즐기게 되었다.
요즘하고 있는 운동은 달리기다.
수영에 처음 입문했을 때처럼 달리기는 또 새로운 세계로 들어온 느낌이다.
나는 몰랐지만 나와 동 시간을 살며, 누군가는 이렇게 달리고 있었구나.
새벽에 사려니숲길을 달리자니, 40년 동안 열지 않았던 창문을 활짝 열은 것처럼
폐가 시원해진다.
빽빽한 삼나무 가지 빈틈을 비집고 내려오는 햇빛이 마치 연극무대의 하이라이트 조명같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달리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세계.
달리기는 간편한 운동이다. 나처럼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운동하러 나가기까지가 굉장히 어렵다.
수영을 예로 들자면 수영장을 찾아가야 하고, 챙겨가야 할 용품을 챙기다 보면
'수영장 휴식시간이네? 오늘은 못 가겠다.'
'그게 어디 갔지? 그거 새로 사야 되는데.. 오늘은 못 가겠네'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달리기는 핑계 댈게 별로 없다. 그냥 간편한 복장에 집밖으로 달려 나가면 그만이니까.
개인적인 운동이라 상대가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마라톤도 등수는 있지만 (올림픽에 나가는 게 아니라면-더욱이 초보라면-) 승패를 가른다기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다른 사람과의 비교도 필요 없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고 내 속도, 내 기록만이 중요하다.
다른 운동보다 성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생각보다 빠르게 늘어난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기록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내가 된 것
은 아니지만, (그저 어제보다 오래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된 것뿐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장거리 달리기는 매일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이 오는 순간을 넘어설 마음의 주문인 만트라가 있으면 좋다.
나의 만트라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라는 곡.
이상하게 이 곡만 들으면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목표량을 달성하게 된다.
건물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흥얼거리며 나는 오늘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