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더라도 멈추지만 않는다면.
"가을은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가 전부였던 내가 가을을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인생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지난 3월 첫 10km 마라톤을 완주하고, 두 번째 10km를 준비했다. 첫 번째 마라톤 때에는 달리다가 조금 걸었던 구간도 있었기에 이번 목표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뛰는 것이었다.
흐린 날이었다. 해가 쨍쨍한 날보다는 구름이 있는 날 뛰기 쉽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방해꾼은 바람이었다. 초속 10m의 강풍으로 초보러너가 에너지를 뺏기기 쉬웠다.
14년 러닝을 해왔다는 동호회 회원님은 내가 이런 강풍에 뛰어본 적이 없다고 걱정하자
"뛰다 보면 비 오는 날에도 뛰고, 눈 오는 날에도 뛰고, 바람 부는 날에도 뛰고 그래요."
한마디로 별것 아니라는 얘기다.
경험이 풍부하면, 쓸데없는 두려움은 없어진다.
5, 4, 3, 2, 1 출발!
출발대 앞에 서서 우르르 출발할 때가 마라톤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마라톤을 해보기 전에는 골인하는 순간 가장 짜릿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골인하는 순간은 초보 러너에게 그저 '끝나서 다행이다' 하는 안도의 순간일 뿐이다.
반대로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연습한 대로 그냥 꾸준히 달렸다. 가끔 울타리 너머로 집채만 한 파도가 도로까지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꺄아아~ 꺄~~"
그럴 때는 워터파크가 따로 없다.
3km 지점에 식수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입을 적시는 정도로만 갈증을 달랜다.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마라토너가 된 것 같다.
5km 반환점을 돌자, 체력이 벌써 바닥난 느낌이다. 무릎이 시려온다. 방향을 반대로 바꿨으면 이제 바람이 밀어줄 차례 아닌가? 잠깐 내 등을 밀어주는 척하다가는 다시 이쪽저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다가 또 힘들어죽겠다 할 때쯤 다시 한번 등을 쓱!
'이놈 참, 밀당 잘하네.'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으로 멍을 때려야 고통을 좀 잊을 수 있다.
첫 번째 마라톤에서는 숨이 가빠서 걷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연습한 보람이 있는지, 무릎은 아프지만 숨이 차지는 않았다.
'느리더라도 뛰자, 절대 멈추지 말자'
신기하게도 걷는 속도와 거의 비등하게 뛰는 것 같은데도, 어느새 걷고 있는 사람들은 뒤로 멀어졌다.
별 거 아닌 속도라도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걷는 사람과 뛰는 사람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마지막 9.5km 지점에서는 더 이상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은 에너지를 쥐어짜서 나름 스파트를 내었다.
드디어 10km 골인!
느리더라도 멈추지만 않는다면 도착한다는 진리.
기록은 처참하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10km를 뛰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내년엔 하프를 뛰어보고 싶다. (물론, 나만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