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좋은 점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낯선 환경에 나를 놓아두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주위사람들과 서로 긴밀히 영향을 받는다.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각과 행동이 결정된다.
일상적으로 내가 놓여있던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들과 만나보고 대화하는 경험을 해보면, 다른 관점이 보인다. 새로운 세계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게 바로 '견문을 넓힌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큰 의미였다.
아이들과 고양이카페에 갔을 때였다. 아이들이 고양이를 함께 쫓아다니며 같이 놀자, 엄마들도 자연스럽게 말을 트게 되었다.
"한달살이 오셨어요?"
"예~ 저희는 2주 정도 되었어요."
"저희도 비슷하게 왔어요"
우리처럼 한 달 살기를 온 보름이네를 만났다.
숙소는 어디인지, 그동안 어디를 갔는지 공유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내향인으로 살다 보니 이제는 조금만 얘기를 나눠봐도 나랑 결이 맞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교육관이 비슷해 대화가 잘 통했다. 그리고 나의 진짜 삶에서 어떤 관계도 엮여있지 않기 때문에 더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면도 있었다.
보름이네가 묵고 있는 숙소는 올드타운 중심에 있지만 수영장은 없는 곳이라서 이틀 후 우리 콘도 수영장으로 초대를 했다.
보름이 엄마는 초대해 줘서 고맙다며 우리가 한국음식을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고는 파우치로 된 반찬과 누룽지까지 싸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국의 정이랄까. 아이들이 다음날 아침으로 누룽지와 반찬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보름이네를 보니, 나는 한국에서 너무 준비를 안 해왔나 싶었다.
'어쩐지... 짐쌀 때 트렁크 자리가 남더라 흐흐'
그날 저녁에는 함께 치앙마이대학교에 있는 앙깨우 저수지를 보러 갔다. 해 질 녘의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현지인들이 러닝을 하고 있길래, 아이들 네 명과 함께 저수지 한 바퀴를 달렸다. 우리 아이들만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네 명이 모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반캉왓 트래킹과 트위촐식물원도 함께 갔으니, 두 번이나 더 만나 시간을 보냈다. 정해진 일정이 아니다 보니 약속은 전날 즉흥적으로 정해졌다.
다음에 또 만날 기약이 없으니, 아이들은 하루를 함께 보내고 헤어질 때마다 이제 보름이네는 못 보는 거냐고 아쉬워했다. 그런 아쉬움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여행지에서 마음맞는 사람을 만나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아이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 즐거웠어! 다음에 또 인연이 된다면 만나자!" 하고 헤어져본 경험으로 사람에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되겠지.
다시는 못 볼 것 같았던 보름이네는 지난 여름에 제주 한 달 살기를 와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보름이네를 만나니 치앙마이에서의 추억이 되살아 나는 듯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또 잘 살다가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