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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결국 사람이다(2)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면.

by 포에버영

아이들을 캠프에 보낸 5일 동안은 10시부터 4시까지 자유가 주어졌다. 아이들이 걷는 것을 싫어하니까 혼자 여기저기 걸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구글맵에서 평점 5점 만점을 받은 로컬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간 날이었다. 주인아저씨는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더니 한국인인 것을 알자마자 자신의 가게 지붕을 가리키며 웃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기가 그려진 지붕이었는데 태극기는 그중에서도 한가운데 반듯하게 그려져 있었다. 주인아저씨의 호의를 이어받아 사진 한 장을 찍고 테이블에 앉았다.



팟씨유와 타이티를 시켰다. 내 뒤로 무에타이 트렁크를 입은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단골인 듯 익숙해 보였다.

장기 여행자들 중 태국의 전통 무예인 무에타이를 배우는 사람이 많다. 나도 배워볼까 하던 참이어서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말을 걸었다.


여기서 잠깐,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I성향의 내가 외국인과 말을 잘 시작할 수 있는 이유를 공개한다.

내가 20대 초반 호주에 갔을 때 문화적으로 놀랐던 것 중에 하나는 호주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같은 협소한 공간에서는 눈이 마주치면 미소, 다음은 날씨 같은 스몰토크 순서이다. 그건 낯선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작은 배려와 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후로 한국에서도 그렇게 살았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는 자칫 '도를 아십니까' 등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내 주위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혹은 상점 등에서.

내가 먼저 미소를 지으면 무표정하게 있던 사람도 신기하게 미소를 보여준다. 그건 내가 매일 느끼는 일상의 작은 마법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눈이 마주치면 미소 다음 차례는 스몰토크다.


“무에타이 배우시나 봐요?”

“아니요, 킥복싱을 해요. “


그렇게 어디서 왔냐, 여행 온 지는 얼마나 된 거냐 등 말을 이어가고 있을 때 또 혼자 들어온 손님이 있었다. 그리고 처음 들어온 젊은 남자의 일행도 들어왔다. 어쩌다 보니 식당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대화를 함께 나누게 되었다. 장기여행을 온 20대(처럼 보이는)의 폴란드 남자와 중국여자는 함께 킥복싱을 배운다고 했다. 마지막에 들어온 혼자온 손님은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미국인으로, 태국에 산지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태국어도 유창하게 하신다.

한국에서도 다른 사람의 인생 얘기를 궁금해하는 편이라 이런 다국적 모임에서 나오는 그들의 얘기가 흥미롭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에서 내 삶의 방향에 대해 힌트를 얻기도 한다.

폴란드인의 나에게 한 질문 중에 "What do you do in your life?"가 있었는데, 그도 나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무엇을 질문한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가 묻는 게 직업인지, 취미인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건지.

아무튼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다가 불현듯 나도 직업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만났던 보름이네 엄마도 교사였던 것을 비롯해 치앙마이에서 만났던 한국엄마들의 직업이 대부분 교사였던 것도 한 몫했다. 파울로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나오는 '표지'란 이런 건가. 왜냐하면 그전까지는 내가 주부라서 아이들을 온전히 케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확고해진 생각에 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 작은 나비효과로 지금 도서관에 사서로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낯선 사람의 낯설고 이상한 질문이 나를 여기로 데려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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