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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바질 Mar 10. 2024

할머니의 경품

나의 작은 부엌살림살이에 관하여_솥

우리 부부는 친구가 많지 않은 편인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집들이를 하였다. 끝날만하면, 잊을만하면 집들이가 있었다. 내가 주선하는 집들이가 많았기 때문에 메인 요리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한결같이 간을 못 보거나 보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 다급히 “오빠!!”를 크게 외치기 일 수였다. 그러다가 다시 요리가 실패한 것 같으면 수습을 요청하고자 또다시 “오빠!! 어떡해!!!”를 외쳤다. 아무튼, 신혼 초 어느 즈음에 친척 언니들과 동생을 초대하게 되었고, 팔팔 끓이기만 하면 완성인 백숙을 접대하기로 남편과 결정하였다. 커다란 파란 솥과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남편과 나, 파란 솥은 셋이서 처음으로 백숙을 해내었다. 그 뒤로 파란 솥은 나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었는데 고구마나 찐빵을 담아내기도 하고, 식혜나 수정과를 내어주기도 하였다. 겨울에는 감기 조심하라며 대추 달인 물도 두어 번 끓여 낼 줄 알았다. 우리 집 대소사를 함께 하였던 파란 솥은 술빵도 참 많이 내주었다. 문제는 먹을 수 있었던 적이 단 한 번 뿐이었다는 것. 술빵을 찌는 날에는 나와 솥이 속을 끓이기 일쑤였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두 번째 신혼집에서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되는 어느 날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성공할 것 같아.’라는 마음이 갑자기 몰려왔다. 그러나 또다시 반죽이 익지 않아 다시 애간장을 태웠고 솥도 함께 태웠다.    

 

파란 솥은 아무래도 회생이 어려워 보였고, 엄마네 집에 있던 은빛 들통을 신혼집에 들고 왔다. 엄마의 대소사를 함께한 이 들통 속에는 나의 추억도 같이 들어 있다. 내가 잘 무렵 엄마는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에게만 늦은 시간이었을) 밤에 식혜를 끓이시곤 하였다. 깜깜한 어둠을 무서워하던 나는 엄마가 밖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를 좋아했다.    

  

“이거 외할머니가 윷놀이 경품으로 받아 오신 거야.” 엄마가 들통을 주시며 말씀하신다. 딸이 있는 집들은 시집보낼 때 주라며 마을 윷놀이 경품으로 들통을 주었다고 한다. 들통 외에도 할머니는 수건도 많이 모으셨다고 하는데, 오륙십장 정도 모으셨다나. 그건 큰 이모에게 주셨다는데 그 많던 사랑은 어디로 갔는지 볼 수 없고, 들통만 내 옆에 있을 뿐이다. 신나게 윷을 던지시며 깔깔대기도 하시고, 말이 잡힐까 마음 졸이시기도 했을 외할머니의 그때를 상상해 보니 나의 은색 들통이 더욱 반짝여 보였다.     


그렇게 나의 어여쁜 은빛 들통으로 첫 요리를 들뜬 마음으로 해보았지만, 홀라당 태워버렸다. 다행히 이번 은색 들통은 남편이 잘 살려내어 내 곁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날이 쌀쌀해진 요즘. 감기가 잦은 남편과 추위를 쉽게 타는 나를 위해 대추를 바글바글 끓여 살짝 묽은 대추고를 만들어 보았다. 갈색빛이 참 반짝인다. 엄마가 딸을 위한 마음, 그 딸이 다시 자신의 딸을 위한 마음이 이어져 내가 은빛 들통을 만나게 된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을 담아 나의 인생을 잘 만들고 싶다. _2023. 가을 또는 겨울 어느 날


친정 부모님은 이번에 새로 이사를 가신 곳은 인덕션이 설치가 되어 이 오래된 솥들은 더 이상 사용하실 수 없다. 조만간  다른 들통도 우리집에 들고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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