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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바질 May 08. 2024

알고 있다는 착각 이후, 새로운 여행을 기대 중입니다.

꿈에 그리던 직장, 전업주부를 작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낯섦과 설렘이 가득했던 도시 생활이 익숙해졌고, 무료해졌다. 휴대폰을 부여잡고 친구와 무얼 하고 지낼지 이야기하다가도 심심하다며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마도 익숙해진 환경 속에서도 홀로 있다는 외로움이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마루에 앉아 햇볕을 맞으며 남편의 퇴근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는데, 해변가에 흐물흐물 늘어진 미역같이 느껴졌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집에 있고 싶을 만큼 바빠졌다. 작년부터 해오던 모임, 취미활동과 더불어 용용이를 만나고부터는 동화책 관련 수업도 듣게 되었고, 도서관 헌책들을 수리하는 동아리에도 가입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주로 동화책을 수리하게 된다는데 이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서툴러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아무튼, 임신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지금이 ‘마지막 자유’라는 생각으로 가능한 한 비어있는 시간을 활동적으로 보내려 노력 중이다. (그런데 막상 적으려 하니 별것 없어 눈을 치켜뜨고 천장을 노려보는 중이다.) 봄맞이 부여 여행 이후 본격적으로 태교 여행을 고민하다 보니 ‘기(氣)’를 찾아 떠나는 여행지를 고르게 되었다. 그중 첫 번째 장소가 창덕궁 및 후원이었다. 작년에는 남편과 후원에 있던 괴석들과 멋있는 나무를 어루만지며 임신을 바라였다면 이번엔 뱃속 아가와 함께 괴석, 커다란 나무들에 손을 살포시 얹고 건강한 출산을 기도해 보았다.      


돌에 좋은 기운이 있다고 믿는 나는 의도치 않게 남편과 함께 하는 나들이로 단양을 가게 되었다. 단양 대표 관광지인 사인암, 도담 삼봉 등을 다녔는데 남편이 “하루 종일 돌만 본 것 같아. 물 옆에 있는 돌, 물 위에 떠 있는 돌.”이라며 장난 삼아 이야기했다. 내가 놀라며 이러다 용용이 기가 너무 쌔지는 것 아니냐 했더니 남편은 사뭇 진지하게 우리 부부의 기가 약하니 애는 좀 쌔도 되지 않겠냐며 대답하였다.      


그런데 단양을 잘 다녀온 다음 날, 사소한 오해로 남편과 다투게 되었다. 틀어진 관계를 풀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남편은 지금까지 본인이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원래 그런 줄 알던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육아서나 방송을 보면서 아이가 서툴러도 참고 기다려지라고 다짐을 하는데(잘 해낼 자신이 없어 항상 되새김질을 하는 것 같다) 바로 옆에 있는 남편에게 조차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니.      


내가 놓치고 있던 그의 생각과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던 이번 다툼으로 나와 달리 남편은 지난번 다녀온 음악회를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공연을 검색한 뒤, 공연을 고르고 좌석도 살펴보며 예약을 하였다. 항상 같이 시간을 보내왔지만, 이제야 같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이상한 감정과 행복을 느꼈다. 덤으로 남편과 좋은 시간을 또 한 번 기대할 수 있는 복권을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은 감정까지.     


임신 안정기라는 황금 같은 방학은 기쁜 마음과 동시에 이 방학이 끝나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 생각지 못한 일들까지 벌어지고 있다. 늘 상 같은 일상 같지만, 늘 다른 일상.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내가 앞으로 남편과 여행지 조율을 잘할 수 있을까 막연한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남편은 어디로 떠나자고 할까. 궁금해진다. 다시금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었으니 열심히 달려보아야겠다. 알고 있다는 착각 이후, 새로운 여행을 기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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