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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바질 Jan 07. 2024

애정과 집착사이

나의 작은 부엌살림살이에 관하여_칼

나는 작은 것에 마음을 많이 쓰는 편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작지 않다. 그저 눈에 띄지 않을 뿐. 얼마 전,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텅 빈 영화관에서 토종 씨앗을 지키는 70대 농부 이야기를 다룬 독립영화 <느티나무 아래>를 본 뒤로 생각이 더 많아졌다. 원래도 불안이 많은 나는 눈에 띄지 않아 시나브로 사라지는 것들이 영영 사라질까 두려워진다. 이것을 애정이라고 부를지 집착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내가 3년 전 결혼을 하기로 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알아보았고, 부모님과 함께 혼수 준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논산에 가자고 하셨다. “인간극장에서 보았는데, 100년이나 된 대장간이 있데.” 그렇게 부모님과 나, 구 남자친구 현 남편은 논산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결혼 전이라 부모님과 한 공간에서 4시간을 함께하기가 어색했을 텐데 고맙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아무튼, 아빠는 두 시간을 달렸고 우리 가족은 논산시 연산면에 도착하였다. 추운 칼바람과 함께 인적 없는 시장 모퉁이를 도니 나이가 있어 보이는 손님들이 대장간 앞에 꽤 보였다.     


“사장님, 어떤 칼이 좋은 것이에요? 딸 시집가는데 좋은 것 좀 골라주세요.” 엄마는 특유의 콧소리와 함께 아줌마의 모습을 보이며 사장님께 말을 걸으셨다. 그렇게 나는 4자루의 칼을 갖게 되었는데, 이쯤에서 나의 대장간 칼들을 소개해 보겠다. 우선, 누가 보아도 기성품이 아님을 강하게 들어내는 두 자루의 식칼들은 그냥 칼(고기 외의 것을 자르는 칼), 고기 써는 칼로 불린다. 얼마 전 아파트에서 무료로 칼갈이 행사가 있어 ‘그냥 칼’을 3년 만에 갈았을 정도로 칼 갈이가 그다지 필요 없다. 대장간 사장님께서도 칼을 갈지 말고, 어떻게 하라고 했으나 ‘그 어떻게’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과도와 마늘 칼이라고 불리는 작은 칼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식칼보다 기성품처럼 생겼다. 이 중에서도 제일 귀여운 마늘 칼의 만족도가 높은데, 서툰 요리 실력인 내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요리 도구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한 뿌듯함 이랄까. 물론, 마늘 까기에 딱 좋아 무척 편한 점도 좋다. 아, 나의 칼들은 손잡이가 나무로 되어 있고, 나무 무늬가 살아있다. 칼날이 주는 투박함, 나무가 주는 따뜻함이 나를 부엌에 머무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날카롭고, 뾰족해서 자칫 예민하게 여겨질 수 있는 외모로도 사랑받는 존재가 칼 말고 누가 있을까. 나의 칼들은 또각또각 말을 건넨다. ‘아마 나밖에 없을걸?’ 모양새 하나만으로 사랑받고 인정받는 존재 무척 부럽다. 온 식구가 나서서 어느 겨울날 샀던 예쁜 나의 혼수는 칼질이 서툰 주인 때문에 오늘도 부지런히 움직이겠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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