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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Apr 07. 2024

3. 살기 위한 발버둥

두부 한 모가 플라스틱 팩 안에 들어있다.


두부를 보존하던 물을 모서리 끝으로 따라내고 그 두부의 한가운데 칼을 꽂는다. 칼을 그 안에서 휘젓는다. 단 두부의 형태는 보존되어야 한다.


내가 간헐적으로 느끼는 심장의 고통은 그런 것이었다. 내 마음이 그 두부였다. 누군가 내 마음에 비수를 꽂고 그렇게 심장을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이었다. 숨이 잠시 쉬어지지 않고, 움직이는 것조차, 소리를 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런 심리적인 심장이 느끼는 것 같은 고통은 이제 잘 찾아오지 않는다. 단지 가슴을 치게 하는 답답함. 그리고 마음 활짝 웃을 수 없는 경직됨. 모든 게 무채색처럼 보이는 마음의 시야. 무엇보다도 두 손으로 단단히 깍지를 낀 것처럼 마음이 늘 그렇게 있다.


마음이 녹아 '해빙'의 때가 온다면, 난 멀리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


가까운 언젠가 약간 복잡한 지하철을 탔다. 나의 작년 1년은 병원과 간병뿐이어서 그런 약간 혼잡한 지하철 마저 탈 일이 별로 없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내려서 몇 발 안 디뎠을 때쯤, 어떤 분이 급히 지하철을 타려다 나를 치고 갔다.


그때 나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여서 잠시 넋을 잃었던 상태여서 더 정신을 차리고 피하질 못했다. 몸이 동생 표현에 따르면 종이 인간처럼 종이처럼 갑자기 날아올라 땅바닥에 엎어졌고, 손과 팔을 착지하려고 희한하게 꺾은 고통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치고 간 분이 괜찮냐고 다가왔는데, 그분의 손에 든 봉지에는 대용량 약국 봉투와 간단한 간식이 있었다. 약국 봉투에 그분의 삶을 그냥 알 것만 같았다. 그냥 괜찮다고 가시라고 했다. 그분은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셨지만, 그 상황에 내가 아픈 걸 낫는 것 외에는 해결책도 없어서 그냥 가시라 했다.


내가 이만큼 제정신이 아닌 것도 알겠고. 내가 그 부딪히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했다. 동생이 부축을 해주고 이러고저러고 말을 시키며 근처 벤치에 앉았다. 동생이 같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동생도 동생이지만. 이런 일이 나 혼자 있었을 때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그제야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건강히 살아있었다면, 아마 조금은 열받은 목소리로 그러나 밝은 목소리로 내가 이렇게 부딪혔다. 톡도 보내고 전화도 해봤을 것 같다.


그러면 남편은 아마도 내 걱정을 하는 여러 말을 해줬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부주의한 나에게 주의를 주는 야단 같은 말도 했을 것이다. 근데. 전화번호에 남편 번호가 살아있는데, 카카오톡에 아직도 남편 계정이 있는데. 나는 연락할 수가 없었다. 연락을 해도 답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게 내가 남겨진 현실이었다. 여러 일을 처리하는데, 남편이 있었다면 가벼웠고 겁이 덜 났을 일들이. 나는 나이 40살을 넘은 성인인데도 이 일들이 가볍지가 않고, 겁이 난다. 남편도 사람이라 완벽한 울타리는 아니지만- 내게 있던 그 작지만 포근한 그 울타리가 사라졌다.


수화기 너머 듣던 남편의 목소리가. 내 이름을 자주 불러주던 남편의 목소리가. 나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던 그 손길이. 같이 옆에만 앉아있어도 뭔가 안정감을 주던 남편의 존재가. 모두 빈 공간이 되어 남았다.


남편의 물건을 정리하다 남편이 말해주지 않은 과거 연애사를 조금 알게 되었다. 남편은 망자인데도, 왠지 그 사실이 나를 초라하게 했다. 지난 연인은, 지난 마음의 사랑하던 존재는, 내가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존재다.


아마 인생을 통틀어 산뜻하고 깨끗하게 연애하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시행착오를 겪어 결혼을 하고, 나도 그러한 사람 중 하나다. 초라한 나 뒤에는 그 연애를 감당한 남편이 안쓰러웠다. 인연이 아니니 헤어졌겠지만. 남편도 그 사람도 힘들지 않았겠는가.


남편의 아픈 상처가 남편의 그때는 최선을 다했었을 그 마음을 생각하니. 그냥 안쓰럽고 내가 모르던 그 삶마저도 보듬어 안아줘야겠다 싶었다. 근데, 내가 나보다 더 멋져 보이는 그 여자분 앞에서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나와 남편이 만나고 결혼하고 함께한 시간을- 내가 듣고 본 그대로 믿어주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엎어지고 나서. 동생에게 나의 다짐을 들려주었다. 동생에게 하는 나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사실 삶이 무의미해 보이고, 그 어떤 것도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남편의 병과 사망을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어갔던 것 같다.


사실 죽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든다. 나도 남편이 있는 천국에 가서 슬픔도, 고통도, 눈물도 다 없어지고, 이 지상에서의 모든 걸 다 잊고 싶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부모님이 계시고, 동생이 있다. 내가 지킬 수 있는 약속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내가 부모님과 동생을 앞세우고 먼저 세상을 하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내가 부모님도 동생도 간병하고 케어하고 보내고,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부모님과 동생에 대한 보답이고, 내가 바란다면 나는 내가 슬플지언정 나머지 가족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가 슬픔을 감당하고, 나는 혼자된 삶 감당하고, 그 후 그 마지막에 하직하는 게 그냥 내가 살아가야 할 도리. 내가 가진 책임감. 목표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살겠다"고 말했다.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매일 도대체 몇 번을 예상도 못하게 눈물이 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고. 그 무엇에도 마음이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못하는 지금의 삶이 - 격하게 말해서. 그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김창옥쇼를 보는데, 18년간 둘째 딸이 실종된 모녀가 나왔다. 엄마와 언니가 나왔다. 사연을 듣는데, 나보다 더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아낸 그분들이 있었다. 김창옥 씨가 말했다. 이런 사연을 들을 때는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한다고.


그 일 앞에서 해결자는 아무도 없었고, 다들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어도 그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간에는- 사람을 앞서 보낸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그런 슬픈 일이 있는데 웃을 수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말도 나왔다. 내가 그렇다. 웃어도 100%의 웃음이 되지도 않고, 혹여 웃고 떠들고 난 뒤의 죄책감이 무슨 말을 들어도 난다.


김창옥 씨는 자신이 죽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라는 말을 하면서.. 요약하면 남겨진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그럼에도 그 사람들이 그 사실로 인해 너무 슬퍼하며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내 남편의 마음도 같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90% 이상 들었다. 아마 그렇겠지.


남편의 유언 중에 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겼다. 그 부분은 하필 남편이 가장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나에게 남편의 마지막 힘을 짜내면서 설명하고 설득한 부분이 있었다. 정말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있다.


처음엔 남편은 죽었으니 내가 생각하는 대로 처리해도 남편이 이해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과 살면서.. 그 사람은 나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생전 선택은 돌이켜 보면, 앞을 내다본 듯- 몇 년을 지나서 맞는 안목을 가진 경우가 많았기에 나는 비난을 받고, 이기적이게 보이고, 감당이 잘 안 되더라도 남편의 유언을 따르기로 했다.


그게 내가 그 사람을 끝까지 존중하는 일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고, 그 사람이 내가 혼자 남더라도 잘 일어서서 행복하게 살아내길 바라기에 어렵게 선택해준 일이라 믿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물부터 난다. 꿈에서 아직도 말도 안 되는 남편과 관련된 꿈을 매일 꾸고, 일어나서 집 안을 걸으면 같이 있던 흔적들이 떠오르기에 어떻게 되지 않는다. 이사를 가도.. 빈자리가 여전히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일어나면 양치를 하고 정신과 약부터 먹어야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남편과의 사진을 본다. 내가 남편의 기억과 공존하고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난 지금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요즘에 사람들을 불가피하게 만나고 돌아오면- 왜 그렇게 나는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왔을까. 결국 나와의 만남은 슬픔과 부담감뿐인가. 나는 나도 어쩌지 못하는데 타인까지 생각하면서. 결국 아무 소용이 없구나. 싶으면서도.


이게 어쩌면 내가 처한 현실에서 이제 내가 부딪혀야 하는 일에 맛보기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한다.


난 지금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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