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련나무 May 09. 2024

6. 라디오를 들어요

간간히 듣는 라디오 방송으로 그 시간을 헤엄쳐 나가는 순간들

요새는 간간히 라디오를 듣는다.


완전 매일 꼬박꼬박 챙겨 듣는 매니아는 아니다. 특히 많이 듣는 때는 운전할 때이다. 요새는 유튜브를 보던데, 멀티가 잘 안 되는 나는 라디오가 귀만 열어도 돼서 편하다.


청각에 시각까지 사로잡는데, 유튜브를 틀고 화장을 하는 내 주변 아가씨들을 보면 신기하다. 그 와중에도 잘 그리는 아이라인은 뭔가. 라디오만 들어도 삐뚤게 선을 그리는 미술을 못하는 나도 있는데.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이더라도, 내 라디오 취향을 오픈해 본다. 나는 107.7 파워 FM을 주로 듣고, 그중에 특별히 더 좋아하는 방송은- 7시의 김영철의 철가루가 듣는 철파엠, 9시의 김창완 아저씨가 가고 봉쥬르 봉태규가 하는 아름다운 이 아침, 12시의 최화정의 파워 타임, 4시 황제성의 황제 파워, 6시 소현의 러브 게임, 8시 권은비의 영스트리트-이다.


리스트 보면 알겠지만, 거의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취향이란 게 있는 걸까. ㅎㅎ


얼마 전, 봉쥬르 봉태규 방송을 듣는데, 오프닝 곡으로 "아이유의 드라마"라는 곡을 처음 들었다. 가사에 지금의 내가 들어 있었다. 멜로디는 명랑한데- 가사가 그랬다. 가사를 조금 옮겨 본다.


" 나도 한때는 그이의 손을 잡고

내가 온 세상 주인공이 된 듯

꽃송이의 꽃잎 하나하나까지

모두 날 위해 피어났지


올림픽대로 뚝섬 유원지

서촌 골목골목 예쁜 식당

나를 휘청거리게 만든 주옥같은 대사들


다시 누군가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다는 말 들을 수 있을까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죽을힘을 다해 빛나리


언제부턴가 급격하게

단조로 바뀌던 배경음악... (이하 생략)"


운전을 하다 이 노래를 듣는데, 내가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생략한 가사부터는 그 드라마에서 내려온 주인공의 마음이 들어있다. 그 뒤의 가사 속에도 내가 녹아있었다.


남편이 가고, 벚꽃이 휘이- 부는 바람에 꽃비처럼 내리던 어느 날. 그 벚꽃마저도 서글프던, 다른 사람의 행복인 듯한 느낌이 들던- 그 날의 기억이 났다. 남편이 사라지면, 그 어여쁜 벚꽃은 그 어여쁜 벚꽃이 아니었던 걸까.  


남편은 선비 같은 사람이었다. 가끔 옛스러운 말을 하는데, 나에게도 예쁘다는 말 대신 곱다는 말을 종종 쓰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남편의 주옥같은 대사는 "고운 사람"이라는 그 말이 아니었을까. 이제. 그 사람이 해줘서 정말 진짜 그런 것 같았던 "예쁘다"는 그 말.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남편의 핸드폰을 보면, 내 사진도 동영상도 참 많이 있다. 남편 핸드폰 속 사진을 보며- 내 모습을 보는데, 내 모습이 아니라 그 사진을, 그 동영상을 찍는 남편을 나는 생각해 본다. 내 모습을 보는데, 내가 아닌 남편이 보여서 보고 나면- 또 눈물을 쏟는다. 그래도 그리워서 보고 또 본다.  


라디오 방송 속에는 다른 누군가가 선곡한 음악이, 다른 누군가가 보내온 사연이 나온다. 들으면서 꼭 내 취향을 맞추지 않았어도 귀에 들리는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미혼일 때도, 지금 남편을 보내고도 생각하는 것이지만, 최화정의 파워 타임을 들으며, 남편을 보내고 혼자인 내가 최화정 씨 같은 사람이고 싶을 때가 있다.


목소리만 들어도 사람이 활기와 에너지가 있다. 나이가 들어도 나이가 들은 듯 안 들은 듯 한 그 사람- 그 자체의 청춘이. 젊음이. 늘 그 사람에게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주변과 따뜻이 지내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 것 같은 최화정 씨의 삶을 목소리를 통해 느껴본다. 얼굴만 봐도 오늘 찌푸린 얼굴을 펴야 할 것 같으니- 그런 모습을 닮고 싶다는 바램은 좋은 바램이겠지.


어제는 유퀴즈 차은우 인터뷰를 보았다. 같은 그룹 멤버를 하늘로 보내고,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마음을 조금은 알아서 눈물이 많이 났었다.


자신이 이렇게 예능에 나오면, - 괜찮아 보이기도 싫고, 괜찮지 않아 보이기도 싫어 - 예능에 나오는 게 망설여졌다는 말을 들으며, 그게 내 마음 같았다. 나도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러니까.  


남겨진 사람이 겪는 세상은 그런 세상인 것 같다. 웃고 와도 내가 정말 웃어도 되는 걸까 싶고,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을 먹으면 이걸 먹어도 될까 싶고, 부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주 생각하는 건 - 이건 무슨 유형의 지옥일까-이다.


이제야 드라마 '눈물의 여왕' 11편을 보고 있다.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면, 사람이 세상을 떠난 얘기나 암투병 하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거나 들으면 괜찮냐고 걱정한다. 괜찮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본다.


왜냐면- 이건 나만 겪는 얘기가 아니고, 나는 이 세상에 떠다니는 이 슬픔의 얘기들을 듣고 헤쳐가야 하기 때문이다. 적응이 언젠가 되겠지 생각하며 그냥 그 스토리에 내 마음을 던진다.


근데 눈물의 여왕에서는 부러운 게 있었다. 결국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주인공이 결국 산다는 것. 그런 신기술이 있다는 것. 드라마라 가능한 얘기겠지.


드라마를 보면서 한켠으로 더 생각한 건, 남편의 짐이었다. 해인이도 시한부 삶을 알고 겪어야 했던 육체적, 심리적 짐이 있다. 남편도..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고 아팠을까. 근데도 티 내지 않고 견뎌낸 남편은 참 존경스럽지만, 그래도 그걸 많이 헤아려주고 덜어주지 못한 그 순간의 나에게 죄책감이 든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죄책감이 아직도 그 시간에 남아있다.


해인이가 아프자 가족들이 하나씩 자신 때문에 아픈 거 아니냐며 자책을 한다. 나도 뭔가 하나씩 하다가, 문득 이래서 남편이 아프게 된 건 아닐까- 나를 자책하는 순간이 온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왠지 내가 나쁜 무언가를 한 건 아닐까. 내가 뭔가 부족하게 한 건 아닐까. 싶다.


드라마에서 아빠들끼리 칼국수 집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해인이 아빠를 위로하면서, 현우 아빠가 떠나보낸 아버지를 생각하며, 하는 말이 있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든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오면,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부모는 그런 존재라고.


부모도 그러한데, 나에게 남편도 그러하다. 전에도 썼었지만, 이 일 후에 힘든 일 중에 하나는 선택할 일들이 갑자기 쏟아지는데 선택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남편이 있었다면, 쉽게 선택했을 일들이 그렇지가 않아 졌다. 남편이 현명한 선택을 내렸을 거라는 생각보다- 그냥 같이 그 선택을 했을 거라는 그 사실이. 어떤 결과든 같이 겪어내고 서로 응원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힘이 되는 것이다.


가끔씩 라디오를 들으며, 지금을 헤엄쳐 나간다. 나도 그 사람들도 살고 있는 이 시간 속을 헤엄쳐 나간다. 언젠가 다다를 나도 모를 그곳을 향해.  


* 사진은 남편이 충전해 준 스타벅스 카드로 마지막으로 산 커피.


매거진의 이전글 5. 미리, 알았더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