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삶의 해장
삶의 해장은 해롭던 이롭던 삶을 살아나가는 힘을 준다.
밥은 먹어야 하는데, 라면의 나트륨을 가뜩 압축해 먹고 싶은 욕망이 솟구칠 때가 있다.
어떻게 하면 라면의 나트륨을 가뜩 압축하는가. 여러 방법이 있지만, 내가 오랜 세월 애용하는 방법을 대공개 한다.
아무에게도 알려준 적이 없으니 오늘 처음 대공개! 짠!
냄비에 물을 250ml 정도 넣는다. 사나이 울린다는 *라면의 모든 재료를 다 넣는다. 그리고 가스 불을 켜고 기다린다. 이렇게 물이 끓기도 전에 면을 넣으면 꼬들면을 잘 만날 수 있다.
타이밍을 놓쳐 물이 너무 졸아들면 면이 바닥에 눌어붙으니 잘 지켜본다. 물이 수저로 한 두 수저 정도 남을 정도로 졸아들면 얼른 접시에 라면을 담고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에서 케첩을 꺼내서 라면 위에 지그재그로 뿌린다. 그러면 케첩의 감칠맛 & 나트륨과 라면 스프의 나트륨이 만나 강력한 나트륨 라면을 먹게 된다.
여기에 일말에 내 몸에 대한 양심이 있다면, 라면 스프를 조금 덜 넣거나, 케첩을 조금만 뿌리는 눈 가리고 아웅을 해볼 수 있다. 여기에 치즈까지 얹으면 나트륨의 트리플 콤보가 된다.
해보기를 굳이 권하지는 않는다. 왜 인지는 다 알 것이라 생각하며.
답답한 일이 있거나 괜히 좀 스트레스가 쌓이면 나는 이 라면으로 마음을 달랜다. 그리고 난 역으로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그 어떤 고급 음식보다 이 라면이 그 기쁨에 따라온, 꼭 만나야 할 친구여야만 한다.
참 가성비 좋은 '삶의 해장'이다.
난 이외에도 가성비 좋은 삶의 해장 카드를 몇 개 더 가지고 있다. 모든 카드 중 우리 엄마의 떡볶이는 만능 치트키 그 이상이다. 그래서 아껴서 쓴다. 해장도 하다 보면 중독된다.
이렇게 라면으로 힘든 날 좋은 날 보내면 정말 라면으로 365일을 날 것만 같아 요 근래 묵은지가 있어서 찾은 방법은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밥 그리고 조미김이다. 여기에 들기름 묵은지 볶음까지 얹으면- 라면이 아닌 나트륨 식사이다. 먹고 나서는 그래도 건강히 살아보겠다며 생야채를 먹기도 한다.
직전 브런치 스토리 글로 소설 쓰기에 대한 꿈을 썼었다. 남편 생각이 나는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어느 날, 쓰고 싶은 글감이 하나 떠올랐다.
나와 짧은 생을 같이한 남편이지만, 그 남편의 삶을, 남편의 마음을 이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온전히 남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나의 프레임 씌워지고, 상상력이 덧붙여진 이야기 일 테니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소재는 아니지만, 그냥 그 글은 내가- 나이기에- 나로서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는 아무래도 웹적인 요소가 있어서 책 같이 글을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이번 원고는 혼자 별도로 작업해 보고 그 후에 내가 만족할 수 있으면 편집을 거쳐 브런치 스토리에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작법서를 읽고, 작법서 아닌 여러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아가며 이 소설의 작업을 해보고 있다.
나는 보통 글을 쓱- 주저 없이 쓰는 편인데, 이번 소설 쓰기는 첫 문장부터 꽤 어려웠다. 처음으로 플롯이라는 것과 씬, 그리고 가공의 인물들을 설정해 만들어 보는데 이런 진지한 작업을 여태껏 외면하고 글을 썼다는 게 창피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토 픽션(auto novel = 자서전 + 허구)에서 되도록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설정하다 보니- 내가 그 인물이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행동과 말을 했을까, 그 사람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자라왔을까. 어떤 결말이 해답이 될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세수를 했는데, 양치를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나고, 설거지를 하다 이 그릇은 세제를 묻힌 건지 아닌지도 기억을 못 한다.
혼자 머릿속에서 여러 개의 공을 가지고 저글링을 한다. 퍽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인물들을 오해하고 싶지 않기도 한 신중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마 글이 완성되는 데는 몇 달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연습용 단편 소설인데 말이다.
더 생각하다 보면, 내가 남편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내 생각을 전달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그리고 글을 썼는데, 읽는 사람의 반응을 생각해 보면.. 괜히 글을 쓰는 걸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의 한계와 무력함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글쓰기도 내 삶의 해장 중 하나였는데, 이제 그 해장이 다른 삶의 해장을 불러와야 하는 상황에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뭐가 되든 완성하면, 뿌듯해지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떡볶이를 먹으며, 라면을 먹으며 그렇게 버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요 근래는 이래저래 외출을 좀 했었는데, 순간순간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음에 와닿아 그게 글의 형태로 마음에 차곡차곡 남았다.
예를 들면, 어제 만난 친구에게 얘기를 하다- 전혀 울 줄 몰랐는데, 눈물이 눈에 차올랐던 일 같은 거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앞이 안보였다.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야 하는데, 가방 안이 안 보여서 손을 휘적휘적하던 순간의 내 눈, 눈물, 그리고 가방 안을 휘적이던 내 손짓. 어딘가 그렇게 작은 가방 안에 꼭꼭 숨은 티슈까지.
결국 얼굴 메이크업 위로 눈물방울이 흐르고 나서야 티슈를 찾을 수 있다. 왜 그런 걸까. 왜 이런 상황이 나에게 생기는 걸까.
인기가 있던 없던, 인정을 받던 아니던, 나는 그 글감을 토대로 내 안의 따뜻한 남편의 마음을 기억하고 녹여서 글로 남길 생각이다.
그래서 브런치 스토리의 작가소개에 썼던 것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담은 글을 쓰고 그 글에 아름다운 인생의 봄이 피어나도록 하고 싶다.
지금도 여러 마음과 현실을 죄고 있는 일들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 삶의 해장을 하며 오늘도 살아내 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삶의 해장이 있기를. 그리고 그게 건강을, 삶을 많이 해치게 하지는 않기를 바래본다.
이상 술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시지만 해장국은 좋아하는 목련나무였습니다.
(* 남편은 저의 글쓰기를 처음부터 응원하고 지지해주던- 팬이라기엔 더 큰 존재의 사람이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제 꿈,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제 바램을 놓고 기도해주던 사람이던 만큼, 저는 제가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그 남편의 응원을 마음에 가득 담고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