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시아에서 가장 이혼율이 높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기사를 보았을 때 나와는 상관 없는 수치에 사람들이 입에도 올리기 두려운 일을 참 잘도 한다 싶었다.
그땐 그게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당해 뜻밖에 내 자신의 이혼 소식을 들으면서 아 그들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뒤늦은 동병상련을 느낀 기억이 있다.
최근 조심스레 이혼을 언급하는 지인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정말 이혼이라는 것이 보편화 되어 간다는 것을 실감하는 게 나 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혼의 선배로서 지인들에게 말해준다.
“이혼해도 행복해.”
어차피 우리가 삶을 살기 위한 목적이 행복이라면 이혼해도 행복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혼하지 않는 게 좋아.”
이혼을 하면서 매몰된 그 막대한 비용과 소모된 감정들.
이혼 후에 우리 앞에 놓여질 수 많은 난관들을 생각하면 이혼을 고려하는 지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가능하면 예전에 사랑했던 사소한 감정이라도 끄집어 내어 곱씹고 개선할 여지를 찾아 보라고.
하지만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이혼해도’ 행복해가 아니라 ‘이혼하면’ 행복한 사정이란 것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겨진 생애를 행복하고 즐겁자고 한 결혼인데 시종일관 코너에 몰린 채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혼이라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게 절망적인 상황을 역전 시킬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만으로 이혼을 해?’
대한민국 사회를 무르게 보아도 너무 무르게 본 것이다.
치기어린 감정과 절망적인 상황에 밀려 이혼을 하면 오히려 이혼하기 전보다 더 코너에 밀릴 수도 있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이른바 귀하신 이혼을 누추한 내가 해도 될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단순히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경제적인 문제나 가족과의 관계 뿐이 아니다.
이혼 후에도 충분히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복안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혼은 돌이킬 수 있는 코너에서 돌이킬 수 없는 코너로 옮겨질 뿐인 우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행복할 자신이 없는 누추한 ‘나’에게 이혼 후 행복한 라이프는 있을 수 없다.
불가피하게 준비가 되기도 전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누추하지 않은 ‘나’를 만들기는 이혼 전에도 이혼 후에도 늦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