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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May 20. 2023

‘밀양강에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들아, 며늘아’

나이가 들어도 이색 체험은 어린이처럼 즐겁다

  재작년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연등행사를 하느니 마느니, 날짜를 조정해서 연기하느니 마느니 말이 많았었는데 코로나 시국 이전이었다면 우리 식구들은 집 근처에 있는 절에 가서 법회도 듣고 연등도 달고 맛있는 산채비빔밥도 한 그릇하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머니는 기저질환도 있고 면역력 약한 어르신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모시고 가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어머니와 남편, 딸 이렇게 온 가족이 다 집에 있는 공휴일에 집에만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어디 나가려고 하자니 다양한 연령대가 모두 만족할 만한 장소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과 근교의 어디든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점심이라도 한 그릇 사 먹고 오자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았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생각 끝에 코로나 이전에 밀양에 사는 친구들이 점심 대접한다고 초대해 준 식당이 생각났다. 이 식당은 쌈밥집인데 조용하고 맛, 가격, 서비스 모두 내 마음에 들었던 곳으로 다음 기회에 식구들과 다시 한번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게다가 가까이에 영남루도 있고 밀양시장도 있어서 가볍게 둘러보고 구경하면서 시간 좀 보내다가 적당히 배가 고플 때 식사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밀양으로 출발했다.  

   

  영남루는 진주의 촉성루와 함께 영남의 2대 누각에 속한다고 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 드는 영남루 누각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니 밀양시내와 잔잔하게 흐르는 밀양강, 한가로이 밀양강에 동동 떠 있는 오리배도 보였다. 밀양아리랑 기념비도 있어서 그 옆의 버튼을 한 번 눌러봤더니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 노랫소리가 흘러나왔고, 아랑 낭자의 넋을 위로하는 아랑각도 둘러보았다. 

    

  갑자기 딸아이가 밀양강에 떠 있는 오리배를 한 번 타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영남루 반대편에 있는 오리배 타는 곳으로 이동해서 각자 구명조끼를 지급받아서 착용하고 주의사항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 듣고 차례차례 탑승하게 되었다. 오리배가 물 위에 떠 있다 보니까 흔들림이 있어서 어머니는 좁은 오리배에 몸을 숙이고 탑승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었지만 힘차게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딸아이와 남편은 앞 좌석에서 열심히 운전하고, 나와 어머니는 뒷좌석에 앉아서 그야말로 무임승차하면서 주변의 풍경을 감상했다. 밀양교 아래에서 배를 타고 올려다보는 영남루는 아까와는 다른 웅장한 모습이었다. 약간 무더운 날씨였지만 솔솔 강바람이 불고, 물살이 일으키는 바람에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오리배를 타고 영남루 아래에서 밀양교를 지나 저쪽 남천교 사이에 경계를 표시한 부표가 세워진 곳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구경하다 보니 약속한 대여시간 30분은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다. 

오리배를 처음으로 타 보신 어머니도 이런 이색 체험을 하신 것이 기분이 좋았는지 연신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곳저곳 구경하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지난번에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던 그때 그 쌈밥집을 찾아서 갔는데 이런...  어렵사리 재방문했건만 무슨 사연에서인지 가게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런 날벼락같은 일이...’ 하는 수 없이 메뉴 선정을 변경해야만 했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이미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평소보다 많이 걸어서 어머니는 조금 피곤 한 기색이었다. 하는 수 없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다 잘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세상살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만족스러운 완벽한 하루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위안을 삼으며 그나마 어머니가 밀양강 오리배 체험을 아주 흡족해하시고 좋아하셔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뜬금없이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이야, 벗님네야.’ 하는 노래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우리 상황에 맞게 가사를 바꾸면 ‘밀양강에 오리배 띄워라~ 오리배 띄워라~ 아들아, 며늘아’. 피식 웃음이 났다. 치매가 있는 우리 어머니는 오리배 체험을 기억하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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