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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Feb 18. 2023

"엄마, 할머니한테 망고 주스 좀 드려야겠어"


초등학생인 딸이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나에게 달려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할머니가 조금 이상해. 나한테 누구냐고 물어봐."

"할머니, 손녀잖아요. 손녀요"라고 대답을 해도 할머니는 자기가 손녀인 줄 못 알아보는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 혹시 저혈당 와서 헛소리 하는 건지도 모르니까 "엄마, 할머니한테 망고 주스 좀 드려야겠어"라고 하는 것이다.

할머니한테 저혈당 증상이 왔을 때 엄마, 아빠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 모습을 곁에서 다 지켜봐 와서 그런지 초등학생 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 상태를 살피러 가 봤는데 며느리도 못 알아보시고 손님 대하듯이 날 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셨다. 다행히 저혈당은 아니고 지금은 치매 증상이 나타난 것뿐이었다. 우리 딸이 할머니께 주스 갖다 드려야겠다고 말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평소처럼 아침에 날이 밝아서 어머니가 일어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그날따라 전혀 어머니가 기척이 없길래 나는 아침식사 하시라고 어머니를 깨우러 갔다. 어머니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몸이 축 늘어지면서 자꾸 잠을 주무시려고 했다. 억지로 부르고 깨우면 말대답은 하지만 침대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의식은 있지만 저혈당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을 나는 얼른 알아차리고 달콤한 망고 주스를 마시도록 한 컵 가져다 드렸다. 몸이 처지고 기운이 없어서 빨대를 빨아 당기는 힘마저 없어서 주스가 빨대 안에서 맴돌았고, 주스가 컵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할 수 없이 주사기로 입에 주스를 쏘아 드렸다. 이렇게 주스 한 컵을 다 드시고 나서 기운이 나는지 몸을 천천히 움직이셨다.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는 입맛이 없어서 도저히 밥을 못 먹겠다고 하신다. 그럴 때는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입맛 돋우는 약을 1일~2일 정도 복용하게 한다. 우리가 처방받은 약은 식사 1시간 전에 먹는 액상형으로 이 약을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밥을 잘 드신다. 우리 어머니처럼 당뇨 있는 사람이 식사를 제대로 잘 안 챙겨드시면 저혈당이 와서 의식이 없어지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까지 된다. 그래서 식사량이 평상시와 같은지 다른지 확인을 잘해야 하고, 입 맛이 없다고 할 때는 본인이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인데도 잘 안 드시면 단순한 밥투정,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이라고 가볍게 넘겨짚어 생각하지 말고 꼭 병원이나 약국에 문의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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