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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현 Mar 11. 2023

수유리우동

수유리우동

또 백수가 되었다. 백수로 있던 어느 날, 뭐 할 일 없을까 하고 있는데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생은 수유리에 있는 복지센터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자폐아 대상 미술수업에서 보조로 도와주면 맛있는 우동을 사준다는 것이었다.

 

“우동! 가야지.”

 

백수 친구랑 둘이 갔다. 일이 끝나고 우동을 얻어먹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젊은 사장 부부에게 부탁을 했다. ‘우동 만드는 법 가르쳐주면 우리 애들 먹여 살릴 수 있겠는데 가르쳐 주면 안 되겠나요?’ 같이 간 동생과 간사들도 그렇게 해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그러나 사장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8번을 찾아갔다. 친구가 내가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은 처음 본다며 놀랐다. 나도 내게 이런 모습이 있는 것에 놀랐다. 제갈공명을 작전참모로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갔다던 유비보다 몇 배 더 찾아간 것인데, 좀처럼 문이 열리지 않았고 나도 무안해지기 시작했다. 무리였나 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고 안되면 그만하자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그때 들어주었다. 당시 사장의 부인이 임신 8개월째였고, 음식 냄새가 싫어진 대다 내가 사촌오빠같이 느껴져 가르쳐보라고 했다는 소리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사장 어머님 왈, 원래 우리 아들이 몇 백 씩 받고 가르쳐 주는데 나를 잘 본 듯하다며, 나중에 주방에서 친해진 후에는, 당신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신다. 어찌 되었든, 이 기쁜 소식을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내가 우동을 배우러 간다니까 일본이라도 가는 줄 알았는데, 수유리로 간다니 재미있어하기도 하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4개월 동안 전철로 한 시간 거리를 매일같이 서서 다녔지만, 우동 만들 체질이었는지 하루도 출근길이 기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 점심이 내가 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실습 시간이었다. 뭘 먹을까? 김밥, 잔치국수, 비빔국수, 짜장, 우동 중 늘 갈등하다 결국 우동만 먹었다. 내가 원래부터 우유부단했다. 평소에도 중국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결심했다. 오늘은 꼭 짬뽕 먹겠다고! 하나 서빙이 주문하러 와서 뭐 먹겠냐고 물어오면 진짜 뭘 먹어야 될지 늘 갈등이었고 나도 모르게 시켰다.

 

”자장이요.”

 

먹을 때마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그렇듯 여기서는 우동만 먹었다. 사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갈등하다 우동만 먹었다는 것이 배우는 기본자세가 안된 거였다. 배우려 거든 그때마다 다른 것으로 다양하게 먹어봐야 하는 것이 맞는 자세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김밥은 하루 두 개를 썰어볼 수 있었다. 삐뚤빼뚤. 검은 봉지에 그걸 넣어와서 기도모임에 내놓으면 다들 슬퍼도 하고 그냥 봐주기도 했다. 왜 이 따위로 밖에 못 썰었냐고 야단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더디게 우동을 연마하다 보니 벌써 아내와 이야기했던 4개월이 지났다. 대기만성형이라 일 년이 지나도 못 배울 것을 안 아내가 4 개월만 배우라고 허락했기에 지킬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아직 배운 것이 없어서 안된다고 말렸지만 돈을 벌어야지 마냥 배우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못내 아쉬웠다. 그 뒤로 칠 년 간 명절 때마다 선물을 들고 우동집을 찾아갔다. 사장님도, 어머님도, 이젠 그냥 빈손으로 오라고 했지만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그는 최근 회장이 되어 체인사업을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내가 사는 동네에 생겨 그 뒤로는 수유리까지 안 가도 그 우동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체인점이 점점 늘어 갔을 것이다. 불경기라 싸고 맛있는 음식점이 살아남는데, 내가 보기엔 그 집이 참 싸고 맛있었기에 그리 생각된다. 그런데 주님은 왜 이걸 배우라 하신 후에 산나물집으로 나를 인도하셨을까? 그와의 인연은 소용없는 것일까? 아니면 나중에 쓰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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