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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현 Mar 08. 2023

우유


2003년 즈음.

20년 전의 얘기가 머릿속에 단순 명료하게 떠올랐다.

설렁탕집을 하다가 건물주가 바뀌며 쫓겨 나오게 됐는데 난감했다. 아내는 우리 집을 꾸려가려면 한 달에 250은 벌어와야 된다며 가장으로서 보여주길 원했으나 난 그럴만한 실력이 없었다. 축구 농구는 잘한다고 칭찬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주저앉았다. 아내가 보험일을 눈물로 시작했다. 난 한심해서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지금도 죽음은 두려운데 죽지 않고 어찌 버텼을까?

아내가 나가면 혼자 있는 게 같이 있기보다 견딜만했다. 당신은 내가 일하니 살림을 맡아요하며 분담할 상태가 아니고 당신은 알아서 하라는 듯 내버려 두었다. 세탁기 돌리는 것부터 밥준비까지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 있는 것이 힘들었다. 아내가 돌아오면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티비도 미안해 많이 못 보고 숨기에 바빴으나 아내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한 달쯤 가니 도저히 집에 있는 게 견딜 수 없어서 돈을 250 못벌더라도 뭔가를 하고 싶었다 생애 처음 노가다 인력시장에 전화를 걸었다 껐다 하다 새벽에 나갔다. 춥고 육체는 힘들지만 집에 있는 것보다  나았다. 잠시겠지만.  그러나 제대로 할 줄 모르니 오래 못한다. 주위서 우유배달을 추천한다. 해 보기로 했다. 구역모임서 한 자매님이 하게 되면 우유 하나 시키겠다고도 하며 격려했다. 아무래도 택시운전보다 그게 나을 것 같았다. 배고플 때 먹으라며 나폴레옹 빵을 한자매는 사줬다. 새벽 4시에 홀로 깜깜한 밤 남의 주차장공터에서 프라이드 타고 연세우유와 나폴레옹 빵을 먹다가 웃었다. 내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우유배달은 돈도 안되고 명예도 없지만 생각할수록 행복한 시간이었다. 벼룩시장을 보고 전화해 찾아가 소장을 면접하는데 우유소장은 베테랑이었다. 척 보면 다 안다. 날 보고 왜 뽑았을까? 완전초보라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꼴에 조건을 내세웠다. 여름에 한 열흘정도 전도여행을 가야 되니 그때 보내주면 하겠다했다. 전도여행 갈 돈도 없는데 그랬다. 오토바이도 못 타면서 그랬다. 들어준다며 인수인계를 사모님 통해 했다. 그리고 시작했다. 며칠 후

큰딸이 아빠가 걱정돼서 하루 밤새 같이 다녔고 또 며칠 후 나의 일대일 제자 세현형제가 하루를 같이 다녔다. 그리고 고생은 되나 해볼 만하다 생각이 들었던가 뭐라 판단을 못하겠던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아무 말 못 했다. 새삼 관심을 가져준 게 고맙게 생각이 난다. 지나고 보니 그 일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부상당하거나 사기당하거나 그런 게 없었다. 대신 조폭들은 우유 먹은 돈 달라면 돈을 안 준다. 우유 넣게 걸어놓은 주머니 대신 딴 주머니가 걸려있다 녹즙인가.  매일 내일 준다는데 목소리에 힘이 있어 달래기도 두렵다. 못 받을걸 생각하니 화가 났다. 어찌할까? 돌 던져 창문 깨고 도망가면 잡혀 감옥 가겠지. 너 나와! 하기엔 맞을 것 같고 말도 잘 못하니 말하기도 두렵고 진퇴양난이다. 좌우간 몇 번 말해도 안 들으니 외상값 못 받은 걸로 남아있는다. 치사한 놈! 어떤 아주머니는 이사 가면서 치사하게 우유값 떼먹으면 벌 받지 오죽하면 밤에 배달하겠냐며 옆 세탁소에 우유외상값 맡기고 이사 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자세 때문에 사람을 다 욕하진 못하겠다. 심성이 좋은 사람도 있구나 감동한다. 어떤 아주머니는 신랑이 회사는 다니는데 월급을 몇 달째 못 받는다며 애들 우유는 끊지 말아 달래니 어쩌랴. 예수 믿으라 책 한 권을 주며 입장이 바뀐 경우다. 배달 주제에 책 사주며 전도한다고 될까 의심도 했지만 그랬다. 나중에 돈 받았는지는 기억에 없다만 그런 사람은 미워하진 않았다.

돈은 칠십만 원 정도 한 달에 번 것 같은데 번다기보다 내 시간 까먹은 건가? 수금이 일정치 않아 조각으로 들어와 어디 어떻게 썼는지 목돈이 안 됐다. 애들 과자나 약값에 쓴 기억이 난다. 아내는 제일 본인이 하기 싫어했지만 보험 일로 나 대신 가정을 꾸려나갔다. 난 소꿉장난 같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엄청 좋은 시간이 될 줄이야 진정 난 몰랐었다.

돈도 안되고 명예롭지도 않고 고생도 심한데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 왜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까? 그것은 주님 때문이었다.

밤 12시부터 아침해가 뜨는 6시까지 우유를 백 군데 정도? 배달한다. 소장부인과 인수인계를 하는데 우유종류도 안 보고 척! 주소도 안 보고 척! 다음집으로 척척 찾는다. 나보다 학력도 낮을 것 같고 머리나 운동신경도 내가 꿀리지 않으니 나도 자동되는 줄 알았다만. 척척하기까지 몇 달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복하다 보니 결국 척척됨을 보며 영어공부의 원리도 깨닫는다. 어떤 때는 아침 해가 떠 밝아오는데 아직도 어두운 밤을 헤매고 있었다 아직 배달할 집이 남았는데.. 짜증과 한숨이 났다. 나중에 관둘 때쯤 안 것은 첫배달집과 마지막집이 옆집이었는데 그걸 모른 게 화났었다. 깜깜하고 길눈이 어둡고.. 그리고 난 밤에 두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우유가 손에 들려있다는 것이 무섭지도 않고 상대도 날 우습게 봤다. 건물도 아파트도 까다로운 검열 없이 통과다.

거기까지 그리고 이제 소장이 안 나와도 나 혼자 보급소에 열쇠 따고 들어가 우유 체크해서 척척 실고 나가는 경지에 오른다. 열쇠를 주었다. 긴장이 많이 풀리고 주위 사람들도 편해졌다. 어떤 때는 어떤 교회에 유명한 목사가 새로 왔다고 새벽기도에 몇천 명 몰려 줄을 설 때면 난 유리했다 한번 참석했다. 그날은 뛰어야 했으나 신나고 발에 힘이 붙었다. 은혜랄까? 그날 은혜받고 뛰는데 룸살롱 아가씨들과 술 취한 젊은이들이 싸우는 게 보였다. 졔네들보다 내가 더 나아 보였다. 은혜란 이런 건가? 밤낮 바뀐 삶이 익숙해지니 심심함이 찾아왔다. 적응기간 간장할 때는 몰랐는데. 새벽 4시에 공터에 프라이드차를 세워놓고 빵과 우유를 먹는다. 쉬 는 어둠 속 아무 데나 싼다. 화장실보다 자연 속에서 적당히. 이제 다됐나? 바로 이럴 때가 주님 찾아오실 때인가 보다. 무기력하고 한심하고 처량할 때였다.

답이 안 나오니 내가 한심하다.

250 벌어야 가족이 먹고사는데 70을 버는 것도 힘들다. 정말 이렇게 버는데 이렇게 무능할 수 있나? 생각해 봐도 뾰족한 답이 없다. 내 동생 들은 잘 버는데.. 힘이 쪽 빠지는데 누군가 등뒤에서 나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었다. 강도도 아니고 그러나 섬칫하기보다 감동이 온다. 위로받을만한 주제도 못되지만 지쳤을 때 누가 찾아와 준다는 게 힘을 준다. 그게 사람은 아니고 주님이라 느꼈다. 성경 속에 들었던 적이 있다. 주님이 어인일로 초라한 날 만지시나? 눈물이 났다. 그리고 힘이 났다. 그날 그 후 배달하는데 힘들지가 않았고 발이 가볍고 기분이 상쾌하다. 이런 일 처음인 듯 뿌듯하며 충분한 위로와 힘이 되었다.

어느 날 새벽 빵과 우유를 먹는데 김밥이 먹고 싶었다. 웃었다. 조금 나아지니 욕심이 들어오나 보다. 저기 보이는 저 아파트는 내가 다니는 지역서 조금 벗어나 있는데 우유 달랑 한 개 맨 꼭대기층에서 시키고 있었다. 저 집은 끊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쓰인다. 경비에게 배달가요!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지하 2층서 올라오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데 아줌마 손에 김밥이 한 줄 들려 있었다. 아마 일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김밥을 경비 아저씨 주려나 보다. 내가 김밥을 쳐다보니 드실래요? 묻는다. 네! 주님이 생각났다. 닭 울기전 베드로가 주님 생각났듯이. 오늘은 김밥이 먹고 싶니 하고 말도 안 돼 쑥스러워한 그 소리를 들으시고 엮으신듯하니 어찌 감동이 안 오겠나! 이렇게 주님이 또 내게 오셨다. 희한하면서 주님 만난 기쁨에 힘이 났다. 누구든 이 기쁨을 만나면 얘기하고 싶었다. 쑥스럽지만.

어느 날 밤 12시가 가까이 되는데 춥고 떨리고 오한이 오고 이불 덮었는데도 몸이 떨렸다 어쩌나. 우유를 하루 배달 못하고 다음날 두배로 주면 짜증 낼 텐데. 소장님! 못 나가겠어요 하고 전화를 했다. 일단 나오세요 반 내가 도울게요. 화난다 이런데 어찌 나오라는가! 나갔다. 우유를 싣고 출발하려는데 다 나았다. 큰 병보다 작은 감기로 주님을 경험함도 좋았다. 병을 고치시는구나. 앉은뱅이 일으키시고 귀머거리 듣게 하시는 것을 아는데. 정말 우유배달하며 주님을 비록 자질구래하나 많이 만난다. 나만의 기쁨이 컸다.

드디어 여름이 오고 말았다. 전도여행 10일 보내주기로 약속한 시간이 왔다. 소장님은 아무 말 없이 보내 주었다. 미안했다만 전도여행 가고 싶었다. 요번엔 이스라엘과 이집트였다. 시내산에서 신라면도 새벽에  먹고 찬양도 하고 잘 다녀오며 소장님께 미안한 맘이 있었다. 선물은 살 줄 몰랐다. 그 장면서 주님을 만난다. 난 해외서 잘 쉬다 왔는데 정작 주님이 내 대신 한국서 일을 하고 계셨다. 딸 알바 근무하는데서 간식으로  우유 300개 주문을 딸이 따낸 것이다. 나는 비록 저기에 가 있었으나 주님이 대신하셔서 소장께 미안함을 갚게 하시는구나 하며 또 주께 감동을 받는다. 정말 우유배달이  돈도 안되고 명예도 떨어지나 주님 만남으로 은혜가 넘쳤으니 고난이 축복임을  깨닫는다. 감사하며.

처음에 우유배달하며 돈도 벌고 강남의 음란한 땅을 배달하며 돌며 기도하면 음란이 떠나가면 일석이조라 하고 싶었다 마치 내가 할 일이라며 그리고 했다. 그러나 더욱 예쁜 청년들이 밤에 넘쳐나며 기도에 힘을 잃고 졌다.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 경험이 주님 만나는 시간이 되어서 좋았다. 주님이 이렇게 날 찾아오셨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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