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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승 Jan 05. 2024

유럽의 고향 시칠리아(9)

2,000년 타임머신 여행의 섬, 오르티지아

드디어 오후에는 기대했던 오르티지아 투어다. 쿠킹클라스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자 현지인 가이드가 선생님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시칠리아 여행 일정을 짜면서 예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태리 친구로 부터 오르티지아 투어는 놀라운 시간 여행이 될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Isola di Ortigia라고도 알려진 오르티지아는 시칠리아 동부 해안 도시이며 고대 그리스 시절에 강력한 폴리스 중 하나였던 시라쿠사Siracusa의 역사적인 중심지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수정처럼 맑은 바닷물로 둘러싸인 해안선을 가진 이 섬에는 작은 해변과 바위 절벽이 곳곳에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은 아름다운 전망과 고요한 분위기로 유명한 칼라로사Cala Rossa이다. 잘 보존된 자연의 풍광과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며 꼭 가보아야 할 곳이다. 전반적으로 오르티지아는 풍부한 고대 역사, 건축학적 아름다움, 해안의 매력이 어우러져 다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르티지아의 면적은 1평방 킬로미터 정도인데 다리로 시칠리아 본토와 연결되어 있다. 이 섬의 거리는 그리스, 로마, 비잔틴, 노르만, 고딕, 바로크 양식의 문화가 혼합되어 다양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거리 곳곳에 자리잡은 유적지와 건물사이로 난 좁은 길, 그리고 그림 같은 광장이 곳곳에 있다. 비교적 작은 면적의 마을이지만 2,000년 역사를 타임머신을 타고 들러 보는 것처럼 굉장히 흥미롭다. 성당과 같이 큰 길가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바로크 스타일로 중세 시대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현재의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넓은 길은 중세를 지나면서 새로 만들어 졌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지는 좁은 골목길과 미로를 지나다 보면 많이 만나게 된다. 더러는 이들 유적지와 연결되어 지어진 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유적의 기초나 기둥을 그대로 사용하면 건축비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는 유적의 대리석이나 벽돌을 뜯어 와 집을 지은 경우도 있다. 가파른 언덕 골목사이를 숨가쁘게 올라가던 최사장님이 한마디 던진다.


“도굴품으로 집을 지었네.”


아무튼 이 거리에 펼쳐진 고대유적, 유서 깊은 바로크 건물, 전통적인 시칠리아 주택 등의 다채로운 외관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두오모 광장은 오르티지아의 중앙 광장으로 섬의 중심이다. 시러큐스 대성당은 이곳에 있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건물이다. 역사적으로, 건축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 대성당은 고대 그리스의 여신 Athena에게 바쳐진 신전 자리에 지어졌다. 정복자가 바뀔 때마다 허물지 않고 뼈대는 그대로 두고 개조되고 수정되는 바람에 여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신전 기둥이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을 떠 받치고 있는 것이 놀랍다. 

고대 그리스 아테나 신전 자리에 지어진 시라쿠스 대성당. 바깥 기둥사이에 벽을 막은 것이 보인다

통상 그리스 신전은 황금비율로 세워진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는 구조이고 기둥 훨씬 안쪽에 사방을 벽으로 막아 안에 신들을 모셨다. 그래서 지붕아래 실내건물벽과 기둥사이의 실외 공간은 실내공간보다 훨씬 넓다. 중세 이후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이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기둥을 벽으로 막았다. 정복자가 바뀔 때마다 건물의 외관은 부분적으로 노르만, 고딕,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었는데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대 그리스 때 신을 모시던 실내 공간은 바로크 양식의 장식으로 치장되어 미사를 드리는 공간으로 개조되었다. 바깥의 기둥을 벽으로 막아 사이에 생긴 실내 공간은 다른 용도의 방으로 쓰고 있다. 복잡하고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건물 외부와 호화로운 건물 내부의 장식은 바로크시대 이후 더 이상의 개조는 없었음을 알게 한다. 지붕은 그만한 세월을 견디지 못한 탓일까, 고대 그리스 시대의 지붕은 남아 있지 않았다. 지붕 바깥은 고딕양식으로 그리고 지붕 내부는 목재 노르만 양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도리아 양식에서, 로마네스크, 노르만, 고딕, 바로크 등 2,000년에 걸친 서양의 건축양식이 이 한 건물에 압축되어 있다.


시라쿠사 대성당과 함께 팔라소 베네벤타노 델보스코Palazzo Beneventano del Bosco 및 팔라소 뮤니시팔레Palazzo Municipale과 같은 우아한 궁전이 듀오모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중앙 광장에서 위로 300미터 쯤 올라가면 기원전 6세기 경에 지어진 고대 그리스 신전인 아폴로 신전이 있는데 이 도시의 랜드마크다.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일까, 길가의 다른 건물들 옆에 무심하게 있는 이 곳은 섬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중 하나다. 

주택가 바로 옆에 있는 아폴로 신전

무성한 초목으로 둘러싸인 천연 담수 샘인 아레투사 분수Fountain of Arethusa도 꼭 둘러야 할 인기 명소이다. 이외 노르만족이 지은 중세 요새인 마니아스 성(Maniace Castle)은 오르티지아(Ortigia)의 동쪽 끝에 서 있어 주변 바다를 내려다 보는 탁 트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오르티지아의 두 주요 거리는 비아카보Via Cavour와 비아로마Via Roma인데 이곳에는 상점, 카페, 레스토랑이 즐비해 있다. 또한 수많은 미술관, 박물관, 극장이 섬 곳곳에 있어 일년 내내 다양한 행사와 축제를 개최하여 지역 전통, 음악 및 요리를 선보인다. 오르티지아 시내를 들러 본 후 광장에서 젤라또를 먹으면서 쉬기로 했다. 마을 크기는 작지만 오르티지아만 제대로 살펴 볼려면 하루는 족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위해 차량이 도착했다.  


시칠리아는 한때 아테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만큼 강력한 고대 그리스 폴리스 중의 하나였다. 이후 카르타고, 로마, 게르만, 사라센, 노르만 등 무수한 정복자의 지배를 받았던 이 섬에 2,000년 유럽의 역사가 박물관처럼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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