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병승 Feb 10. 2024

유럽의 고향 시칠리아(13)

베두라 리조트에서의 휴식

저녁 늦은 시간에 체크인 하는 바람에 어제는 리조트 전경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보니 천국이 따로 없다. 


베두라 리조트는 시아카 마을 근처 수십만평 가량의 부지에 자리잡고 있다. 2km의 해안선을 끼고 올리브 숲, 오렌지, 레몬 나무로 둘러 싸여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아름다운 이 리조트에 특별함을 더 한다. 두개의 18홀 골프코스, 테니스코트와 스포츠 시설을 포함하여 전용 해변, 스파 등 손님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져 있다. 우리 일행이 묵고 있는 모든 룸은 고급 방갈로 스타일로 골프장의 페어웨이를 사이에 두고 해변과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다.

베두라 리조트 빌라
베두라 리조트 골프코스

휴가 여행 일정을 짤 때 패키지 여행처럼 전일정을 관광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고 휴양만을 위한 일정으로 짤 수도 있다. 후자는 유럽사람들에게 익숙한 휴가 문화인데 이들은 휴가철에 태국 등 동남아에 와서 한군데만 오래 머물다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숨쉴 틈 없는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자신을 위한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그래서 유럽사람들은 몇 주간의 휴가를 위해 일 년간 열심히 일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내가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영국 계열사에서 신축하는 발전소에 공급한 설비가 고장 나는 바람에 시험가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시험가동을 할 수 없으면 상업 운전이 연기되어 하루에 수천만 원씩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영국 계열사는 서비스 엔지니어를 보내려면 몇 주를 기다려야 한다고 통보했다. 담당 서비스 엔지니어가 가족들과 함께 일년전에 짠 휴가계획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들은 그해 휴가가 끝나면 곧바로 내년 계획을 짜는데 한번 일정을 정해지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바꾸기 힘들다. 그것만 바라보고 일년동안 열심히 일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아무리 위급한 일이 있어도 양보하지 않는다. 아니 회사에서도 아예 부탁하거나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상사도 입장이 바뀌면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아무튼 이들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나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행도 예전에 세계를 누비며 다니던 관광 일색인 패턴에서 점차 휴양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칠리아는 관광만 하기에는 너무 좋은 휴양지이고 휴양만 하기는 흥미로운 관광 유적이 너무 많다. 이곳 베두라에서 사흘간 머물도록 일정을 짠 것은 관광과 휴양의 적절한 배분을 위해서였다. 그동안 빡빡한 일정을 쫓아 바쁘게 움직인 탓에 모두 힘들었는데 여기에서 사흘간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10시에 티업, 그리고 오후 일정은 따로 잡지 않았다. 일부러 시간을 넉넉하게 비워 두었다. 베두라 리조트의 골프코스는 아름다운 주변의 자연 풍경과 잘 어울리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페어웨이와 그린은 완벽하게 유지 관리되어 있었다. 짙은 녹색 페어웨이를 걸으면서 모두 느긋하게 평온함을 즐겼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해안에 부딪히는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의 소리, 피부에 와닿는 온화한 태양의 온기, 그리고 지중해의 속삭임을 싣고 부드럽게 얼굴을 감싸는 바람, 이 모든 것은 이 순간 우리를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게 하였다. 인간이 자연속에서 일체가 되면서 느끼는 신비감, 그 속에서 골프라는 스포츠를 통해 얻는 자연과의 유대감,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느끼게 하는 이국적인 풍경, 그래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 이 모든 것을 만끽하면서 꿈을 꾸는 듯 푹 빠질 수 있었다. 마법과 같은 경험이었다. 라운딩 후에는 진종일 리조트에만 있었는데 온전한 휴식이란 이런 게 아닐까?

 

라운딩 후 박사장님 부부가 스파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우리 부부는 룸에서 쉬기로 했다. 아내와 베란다로 나와 비치 체어에 누어 있다 잠이 들었다. 라운딩 후 클럽하우스에서 점심식사 때 마셨던 화이트 와인 취기 때문인가보다. 삼십 분 정도 잤을까 깨어 보니 눈앞 페어웨이에는 두 마리의 갈매기가 연신 무언가를 쪼아대고 있다. 누군가 라운딩을 하면서 흘린 샌드위치 조각이다. 아니면 골프 카트에 있는 것을 훔쳐왔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골프장의 까마귀처럼.


저녁식사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아 남아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빌려 해안가 끝에서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 넓은 리조트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시설을 둘러보고 싶어서 였다. 이 리조트에는 해변가에 네 개의 레스토랑과 캐주얼한 식사가 가능한 바가 두 개 있다. 레스토랑은 포멀, 씨푸드, 로컬식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데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자전거를 타기로 한 것은 우리가 예약하지 않은 다른 레스토랑은 어떤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식사는 출발전에 미리 예약을 해 놓았는데 씨푸드 레스토랑이다. 내일 저녁식사는 바에서 캐주얼하게 할 요량으로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았다. 성수기가 지난 9월이라 만에 하나 바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레스토랑을 당일 예약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서 였다. 해변가를 따라 자전거를 달리자 골프 라운딩 때와는 또 다른 자유로움이 밀려온다. 


라운딩을 마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레스토랑으로 가기 위해 로비에 모였다. 거리가 제법 멀어 컨시어즈에 부탁하자 카트로 데려다 준다.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입구에는 수족관이 있었는데 직접 보고 주문하는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좌석을 안내 받았는데 웨이터가 굉장히 친절하다. 와인을 먼저 시키고 식사는 조금 있다 주문하겠다고 했다. 웨이터는 웃으면서 메뉴를 자세히 보고 천천히 주문해도 된다고 하면서 물어볼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 달라고 한다. 또 생선을 직접 보고 싶으면 수족관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겠다고 한다. 


오늘도 와인은 카리칸테다. 스타트는 구운 문어, 굴, 토마도와 아보카드에 부라타 치즈를 얹은 카프레제를 시켰다. 그리고 웨이터와 같이 수족관에 가니 달고기(John Dory), 쏨뱅이, 농어, 도미, 부시리, 랑구스틴Langustine, 숭어, 서대, 바다가재 등 다양한 생선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종류는 빼고 달고기, 쏨벵이, 랑구스틴을 주문하고 파스트와 함께 쉐어하기로 했다. 랑구스틴은 지중해에서 나는 가시발이 길게 달린 새우인데 여기에서는 맛이 좋아 고급 해산물로 친다. 비싼 가격에 2인분을 시켰는데도 양이 적어 별로 먹을게 없없다. 맛은 우리나라의 딱새우와 비슷하다.  


드디어 지중해에서 건져 올린 신선한 해산물 요리가 나왔을 때 모두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어둠이 짙게 내린 지중해를 바라보며 와인잔을 들었다.


'즐거운 남은 일정을 위하여 살루테Salute!'   




작가의 이전글 유럽의 고향 시칠리아(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