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올 것 같다. 웨스 크레이븐이 그리워진다.
요즘 날씨가 많이 풀렸다. 롱패딩과 코트 대신, 후드와 점퍼를 입고 다닌다. 뉴스를 보니 올해 여름은 4월부터 11월까지라고 한다. 7개월 동안 땀을 흘릴 생각에 나는 최근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여름이 싫다.
단 한 가지 여름이 좋은 이유가 있다면 그건 공포 영화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고어 영화든, 스플래터 영화든, 스릴러 영화든 그 세부 장르의 국경을 가로질러 질주한다. 누군가 만약 공포 영화 한 편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음, <마터스 : 천국을 보는 눈>이나 <호스텔> 그리고 <유전> 등도 좋지만 가장 클래식하게 대답하고 싶을 땐 웨스 크레이븐의 영화를 다 보라고 말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독의 이름 대신 영화 제목으로 그것의 창작자를 기억하기 마련이니 영화명으로 대답해 보자. 웨스 크레이븐의 대표작은 <스크림>과 <나이트메어>다. 두 시리즈 모두 공포 영화 장르에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조금 더 웨스 크레이븐 영화의 원형을 말하자면 그건 <왼편 마지막 집>이다.
- 영화는 잔인하게, 촬영은 즐겁게 <왼편 마지막 집> -
컷, 소리가 들렸다. 3주 동안의 촬영이 끝나는 순간이다. 웨스 크레이븐은 디렉팅 사항이 빼곡히 적힌 각본을 내려놓고 박수를 쳤다. 촬영 장소는 <13일의 금요일>(1980)의 숀 커닝햄이 살고 있는 집 뒷마당이었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했다. 약쟁이들이 두 소녀를 범하고 소녀의 부모가 복수를 한다. 잔인한 영화 내용과는 달리 촬영장은 화기애애했다. 모두가 얼른 근사한 제목을 정하자며 들떴다. 개봉 전 날, 영화의 편집본은 시사회에서 <복수의 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상영되었다. 하지만 웨스 크레이븐과 숀 커닝햄은 이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영화 홍보 담당자가 참여했고 3개의 수정된 타이틀이 나왔다. 그중 가장 평이 좋았던 제목이 결정되었다. 그것이 <왼편 마지막 집>(1972)였다.
당시 웨스 크레이븐은 초짜 감독이었다. 그는 대학교 시간제 강사로 일하다가 뉴욕 클락슨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중 16mm 카메라 한 대를 구매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현실 대신 꿈을 선택했다. 덕분에 아내와 두 딸이 자신을 떠났지만 그는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낮에는 영화사에서 편집을 했고 밤에는 택시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 숀 커닝햄의 포르노 영화 <투게더>를 편집하고 있는데 숀 커닝햄이 등 뒤에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영화의 줄거리를 대략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두 소녀가 록스타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시내로 나선다. 도중에 어느 약쟁이에게 마약을 구매하려 그를 따라가지만, 되려 약쟁이들에게 감금당한다. 약쟁이들은 소녀들을 차 트렁크레 실어 숲에 데려가 강간한 뒤 총으로 살해한다. 그리고 밤을 보내기 위해 낯선 집을 찾아가 숙박을 요청한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 집은 자신들이 살해한 소녀 중 한 명의 집이었다. 물론 약쟁이들이 이 사실을 알리 없다. 소녀의 아버지는 약쟁이들이 찾아온 날 밤 그들의 짐에서 딸의 장식품, 그들 옷에 묻는 핏자국을 보고 직감한다. 저 새끼들이 내 딸을 죽였구나. 그렇게 복수가 시작된다.
<왼편 마지막 집>은 많은 과정에서 보이는 사소한 부분만 제외하면 잉그마르 베리만 주연의 <처녀의 샘>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처녀의 숲>에서 주인공이 가전 교회가 <왼편 마지막 집>에서는 록스타 콘서트로 바뀌고, 복수 방식이 살짝 수정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포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칭송을 받는 것은, <처녀의 샘>과는 달리 진지함을 부정하고 관객을 영화 스토리 속에 참여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아류작으로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1978)이 제작되기도 했다.
사실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이전에 없었던 복수방법, 즉 대사 한 마디와 한 번의 공격으로 가해자를 응징하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 가해자를 천천히 고문하며 죽이는, 당시에는 혁신적인 연출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흥행에서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당시 극장에서는 소녀의 부모가 약쟁이들을 고문하는 장면을 보고 경악하며 극장 커튼을 찢고 고함을 질러대기도 했다. 너무 잔인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웨스 크레이븐은 비슷한 이야기와 더욱 세련된 버전으로 제작한 <공포의 휴갓길>(1977)을 통해 흥행과 평가 모두 좋은 반응을 받았다.
- 지겨운 악몽 <나이트메어>, 새로운 전성기 <스크림> -
웨스 크레이븐을 설명하면서 이 영화를 언급하지 않는 건,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엘름 가의 악몽, <나이트메어>(1984) 말이다. 웨스 크레이븐은 신문에 난 기사 한 줄에 주목했다. 킬링 필드에서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온 캄보디아인들이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죽었다는 기사였다. 해당 기사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꿈과 악몽에 시달리다 죽는 사람들,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의 이름, 그리고 자신이 공중화장실에서 목격했던 전신화상을 입은 노숙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살인을 저지르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는 그렇게 탄생했다.
<13일의 금요일>(1980)에 제이슨이 있고, <핼러윈>(1978)에 마이클 마이어스가 있으며,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사건>(1974)에 레더페이스가 있다면, <나이트메어>에는 프레디 크루거가 있다. 각자의 개성이 매우 뚜렷함과 동시에 호러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사랑받은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유일하게 가면을 쓰지 않고 압도적 등장 대신 생존자들과 끝까지 치고받으며 쫓아오는 공포를 심어주는 건 프레디 크루거가 유일하다.
프레디 크루거는 그야말로 악몽이다. 스무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유괴하고 죽여 동네 이웃들에 의해 보일러실에서 불태워져 죽었지만 모종의 계약으로 미성년자들의 꿈에 나타나 그들을 살해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캐릭터다. 이는 그가 어릴 적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학대당했던 트라우마 탓이다. 절대로 잠을 자선 안되며, 잠을 자는 순간 프레디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죽으면 실제 삶에서도 죽게 된다. <나이트메어>로 웨스 크레이븐은 의식과 무의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웨스 크레이븐은 도망치고 싶었다. 제작사 ‘뉴 라인 시네마”가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5편까지 제작하고자 제안했고 이를 통해 총 1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그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후속작 <공포의 휴갓길 2>(1985), <악령의 관>(1988), <영혼의 목걸이>(1989)를 포함한 그의 필모그래피가 공포 장르의 테두리를 거의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걸 고려한다면 <나이트메어>는 웨스 크레이븐에게 악몽과도 같은 필연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뉴 나이트메어>(1994)로 드디어 프레디 크루거를 무덤에 보낸 웨스 크레이븐은 이번엔 <스크림>(1996)을 제작해 공포영화감독으로서 자기 성찰에 이르렀다. ‘나이트메어’ 시리즈 이후 영 빛을 보지 못했던 그에게 <스크림>은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이 영화가 공포 장르의 관습을 모조리 파괴하고 재창조했다는 사실은 텍스트보다는 영화를 직접 보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전 <나이트메어>는 1편만 자신이 직접 감독했던 것과는 달리 <스크림>은 3편까지 전편을 제작하였고 <스크림 4G>(2011)로 감독 커리어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20세기말 잠깐의 장르적 외도를 제외하면 그는 그 자체로 호러 영화일 수밖에 없는 사내였다.
웨스 크레이븐은 10년 전 사망했다. 그는 조지 로메로처럼 기성세대의 억압, 전쟁, 인종 갈등, 빈부 격차, 의사소통의 부재, 독재와 종교, 대중매체 중독과 중산층의 몰락 등 현실적 문제를 영화에 담아왔다. 그리고 우리의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주었던 존재였다. 이번 여름 그가 보고 싶어질 것 같다.
최근 글이 올리지 않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지식과 필력이 많이 부족하더라구요. 차마 그 얕은 앎과 얇디 얇은 글쓰기 근육으로 감히 글을 쓰기 부끄러웠습니다. 하물며 6년 전에 썼던 글을 보고 감탄하다니. 명백히 퇴보했다는 신호입니다.
때문에 최근 다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책을 한 권 읽고 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의 영화>(톰 채리티 지음. 안지은 옮김)입니다. 광고 아니구요. 그동안 몰랐던 영화사와 영화문법에 대해서 다시 학습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책은 대체 언제 낼 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반성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원문 :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55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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