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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구리 Feb 20. 2023

ADHD 엄마가 ADHD아이를 키우는 법 1

Adhd 엄마로 살기

아들은 늘 행복해해서 만 2살 어린이집 시절부터 ”해피보이“로 불렸다. 제법 그늘진 엄마와 불같은 아빠 사이에서 어떻게 저렇게 늘 행복한지 모르겠지만 8살 생일을 앞둔 지금까지도 항상 행복해하니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어릴 적 제법 얌전한 편이었던 나는 어디서나 깨발랄하고 개구진 아들이 신기하고 힘에 부친다고, 그저 나와는 다르다고만 느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이 아이가 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특징들은 너무나 확실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것은 adhd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좀 특이한 인간이려니 하고 살아왔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산업화 이후에는 질병이라 일컬어진 어떤 특징을 지닌 인간이었던 것이다. 소아 adhd였을 나는 이제 성인 adhd환자인 것이고, 내 아들은 아마도 유전자에 새겨진 대로 일정 부분 나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약간 있다면 나는 이 아이를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고, 슬프다고 말할 만한 것은 이 아이도 내가 겪은 어려움들을 겪어야만 할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10년을 독일에서 살았지만 독일어는 한마디도 배우지 못했다. 남편은 처음엔 돌고래도 너보다 나을 거라며  의지가 없는 인간이라고 나를 비난했다. 독일어는 어느 교장선생님의 말마따나 콩나물시루에 부은 물처럼 나로부터 흘러나갔다. 마치 물 위에 글씨를 쓰는 것 같았다.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단순한 문장도 외울 수 없었다. 인간이라면 매일 듣는 말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기억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 것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당연히도 독일에서의 내 삶은 엉망진창이었다. 영어도 독일어도 하지 못하는 외국인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친구도 사귈 수 없다. 한인사회는 너무 좁다. 게다가 나는 남편의 회사 인근에 주변이 들판과 풍력발전기뿐인 시골에 살고 있다. 만날 사람이 없고 병원조차 남편에게 사정해서 같이 가야 하고 치맛바람은커녕 학부모들과 기본적인 정보를 나누기조차 버겁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남편과 아이는 이곳에서 들풀처럼 뿌리내렸다. 그들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더러 뽑혀져서 다시 한국에 가자고 할 염치도, 남편이 나를 위해 한국으로 가 줄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없다. 때때로 숨이 막히고 내 감정을 조절하기가 힘들어지고 점점 기억력이 나빠졌다. 하루에 몇 번씩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잘 보이는 곳에 둔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전에는 단순히 건망증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내가 어린 시절 4번이나 수면마취를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게 됐다. 그게 adhd의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을, 어떤 날은 4시에 데려와야 할 아이를 2시에 데려와 버려서 학교에서 애가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고 어떤 날은 아이와 한글학교에 가면서 집에서 가방 없이 몸만 나갔다. 매번 하나씩 중요한 것이 없거나 중요한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방금 전에 인지하던 것이 바로 뒤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통째로 잘라낸 것처럼,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끝없는 우울과 절망이 밀려왔다. 남편은 가방 좀 두고 갔다고 그게 그렇게 통탄할 일이냐고 했지만 나의 깊은 슬픔은 지구의 핵까지 파고들어 갈 판이었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으면 좀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독일어 한마디 못하는 외국인 아닌가! 당연히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을 수도 약을 처방받을 수도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 감기로 한번 같이 가자는 말도 못 해서 병원 가는 빈도보다 응급실 가는 빈도가 훨씬 많은 내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내 해피보이가 나처럼 사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내가 걸어가는 걸음이 아이에게 길로 날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머리와 손톱을 쥐어뜯으며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내딛으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어떤 날은 풀썩 엎어져서 영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다음날은 일어나서 허리라도 한번 펴보고자 한다. 그게 내 해피보이를 지키는 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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