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의 산책
나는 개를 키우기만 하면 저절로 살이 빠질 줄 알았다. 하루에 100보쯤 걷는 내가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살이 저절로 쑥 쑥 빠지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을까?! 원랜 우울증 때문이었지만 강아지를 입양하기 결심한 데는 운동부족도 컸다. -뭐 어차피 같은 결이기는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축축 늘어지는 엉덩이는 강아지만 오면 다시 스르륵 올라갈 줄 알았는데 막상 2개월이 갓 넘은 토토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그게 나의 대착각임을 깨달았다. 2개월 된 강아지는 집 주변 마당 외에는 산책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예방 접종이 마무리되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너무 어린 강아지는 멀리 나가는 걸 두려워한다고 유툽이 친절하게 가르쳐 줬다. 모르면 모를까 알고 나서는 이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한 달은 집 앞뒤에 마당만 거닐어야 한다. 그건 귀찮고 지루할 뿐 나의 광합성과 힙업에는 아무 도움이 되질 않았다. 한 달 뒤 접종이 끝나고 나서도 이 작은 -나이만 작은- 강아지는 도무지 나를 걷게 하지 않았다. 한 시간을 걸어도 내가 걷는 시간보다 -똥-냄새 맡는 강아지를 기다리는 시간, 강아지가 다리 사이로 들어가 버린 줄을 푸는 시간이 더 길었다. 10월에 들인 강아지는 우리와 함께 겨울을 맞았고 독일의 겨울은 강아지 산책에는 많이 혹독했다. 늘 분무기처럼 분사되는 비와 한점 햇빛도 찾을 수 없는 흐린 하늘, 그리고 습하고 앙칼진 추위는 즐거운 산책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꾸역꾸역 하루에 한 시간씩 두 번은 나갔지만 그 두 번도 모자란 듯한 에너자이저 강아지에게 미안한 마음과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라는 마음이 매일 공존했다. 제일 괴로웠던 지점은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지렁이라는데 있었다. 처음엔 산책을 포기하고 남편에게 도저히 못 나가겠다고 했지만, 재택근무하는 남편은 토토를 오전에 데리고 나갈 수 없어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토토를 데리고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토토가 지렁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토토가 그것까지 먹었다면 나는 정말 비 오는 날 밖에 못 나갔을 것 같다. 내 지인네 강아지는 그렇게 매일 마당을 파서 먹는다고 ㅎㄷㄷ;;; 남들에게는 그게 뭐 무섭냐고 하겠지만 나로서는 시체가 끝없이 펼쳐진, 혹은 바퀴벌레가 바닷가 모래알처럼 쌓인, 비둘기 사체가 도로를 점령한 길을 걷는 기분이다. 미술치료를 배우며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도대체 극복되지 않던 그 공포는 결국 아이를 낳고 쥐똥만큼, 토토를 산책시키며 토끼똥만큼 극복됐다. 이제 죽은 녀석들은 대담하게 지나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신선한 녀석들은 아직도 눈을 거의 감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최대한 돌아서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토토는 씩씩하게 나를 리드한다. 우리 집 큰 강아지 토토는 산책하는 내내 열심히 다른 강아지들의 똥을 거의 들이킬 정도로 가까이에서 냄새를 맡으며 그들의 안부를 확인한다. 아마 그들만의 똥냄새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싶은데 내가 인스타그램 하는 느낌일까? 누군가는 그게 독서 내지는 유툽 시청 정도에 비유하기도 하던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조금 머릿속이 선선해지고 풍성해진다.
벌써 삼월이 왔건만 아직도 독일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시월즈음부터 시작된 겨울의 냄새는 아직도 짙어서 도통 봄으로 바뀔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길어진 해가 그래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고 알려주고 토토는 오늘도 나와 걷는다. 토토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긴 겨울을 이불속에서 어둡고 흐리게 보냈을 것이다. 너무 나가기 싫고 추워도 꿋꿋하게 나간 데는 오로지 토토의 배변활동이, 토토의 기쁨이 다였지만 결국 그게 나를 걷게 하고 하루를 또 살게 했다. 비록 1킬로도 빠지지는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