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건축, 그 사이 10년의 시간

엄마의 집짓기

by 귤껍질

“두 번째 집은 내 손으로 짓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


천안에는 지금 지어지고 있는 집을 포함해 두 채의 집이 있다. 구축이라고 부르는 현재 부모님이 생활하고 있는 집은 1층 열 평, 2층 다섯 평의 주말농장에 걸맞은 동화 같은 집이다. 갈색 벽돌에 노란색으로 페인트칠된 내부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햇살을 받은 천안집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지만 머리와 마음속 귀촌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던 아빠에게, 지인이 소개해 준 광덕산의 땅은 최적의 장소였다. 주변에 온 맘으로 아끼는 막냇동생까지 살고 있으니, 천안이라는 지역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300평 정도 부지의, 경치가 제일 잘 보이는 가장 앞쪽 땅을 구매한 아빠는 마음의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서울살이에서 오는 피로를 풀어낼 곳이 필요했던 아빠에게 단비 같은 공간이었다.

여름 광덕산 뷰

여기에 별장까지 짓게 된 이유에는 현실과 욕망 두 가지가 맞닿아 있다. 현실적으로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땅을 적절히 활용해야 했고, 시골 생활의 낭만을 가지고 있던 아빠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땅을 구입하고 얼마 뒤 아빠의 친구의 형부라는 건축가분의 집에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그 집과, 연결된 어린이집이 그분이 아내를 위해 지은 건축물이었다. 직접 가서 보니 디자인적 감각이 부모님 마음에 쏙 들어서 그분께 주말농장에서 쉼터가 될 작은 별장 건축을 부탁하기로 했다.

가을, 천안집 가는 길

구축이 지어졌던 과정은 신축과는 사뭇 달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길 필요 없이 종합건설사의 건축사 아저씨와만 커뮤니케이션하며 진행 상황을 체크하면 되었다.


엄마는 신축은 직영 방식, 구축은 턴키 방식이라고 했다. 직영은 말 그대로 주인이 직접 모든 단계를 수행하는 것이고, 턴키는 종합건설사에서 집을 다 지어주고 주인은 최종적으로 키만 수령하는 걸 말한다. 턴키라니, 건축에는 은근히 재밌는 용어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였다.


직영방식은 종합건설사 비용이 들지 않아 비교적 저렴하고, 턴키는 완성된 집에 입주만 하면 되어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방식을 다 경험해 본 엄마는 막상 집을 직접 짓다 보면 욕심이 생겨서 더 좋은 벽돌 쓰고 좀 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찾다 보면 오히려 더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결국 비용은 비슷하고, 내가 해보고 싶은 걸 선택하면 되는 거야. 나는 건축 탐구 집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내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그래서 신축은 직영 방식을 선택했지”라는 엄마의 말에서 그동안 매번 집을 짓다 보니 돈 생각을 못 하고 눈만 높아져 힘들다며 하소연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구축 내부 노란 벽과 찹쌀떡 같은 호

구축이 지어지는 틈틈이 천안에 내려왔었는데 당시에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아직 인테리어가 덜 된 집이 낯설고 불편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우리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게 하려고 천안 갈 때 웬만하면 함께 가려고 했었다. 그 덕분에 천안 호두마을의 사계절을 경험하며 점점 애정이 생겼던 것 같다.

폭설이 온 광덕산에서 추위를 이기고 만든 토토로

우리 집이 1등으로, 그다음에는 뒷집이, 그다음으로는 옆집 뚝딱이 아저씨네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웃이 생기니 할 일 없던 시골 생활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서로 그림과 한자를 가르쳐주고, 날이 선선하면 테라스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옛날 선비들처럼 유유자적하는 생활에 푹 빠져버렸다.


아빠 같은 성향의 사람만 시골살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나도 좋았다. 특히 가을에 내려가면 아빠가 잠자리채 같은 걸 개조한 긴 막대로 감을 따주는 건 진짜 재밌는 콘텐츠였다.

감따는 중!
아빠와 수확한 감들

그뿐만 아니라 머루랑 다래랑 먹자는 노랫말 속 다래도 처음 먹어보았고, 닭이 갓 나은 달걀에 구멍을 뚫어서 먹는 방법, 제멋대로 자란 과일들이 내는 어딘가 일 퍼센트 모자라지만 색다른 맛도 천안집이 없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달고 맛있는 다래
갓 낳은 달걀

첫 집은 그렇게 우리 가족을 광덕산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집을 중심으로 부모님에게는 제2의 삶을, 나에게는 시골 생활의 매력을 담뿍 느끼게 해 준 시간이 있었다.

밤에 본 실내 풍경, 구석에 숨어 있는 호

구축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는 10년가량의 시간 동안 천안도 우리 가족들도 많이 변했다. 부모님은 30년 정도 근속한 회사에서 퇴직하고, 나와 동생은 직장인과 대학교 졸업 학년이 되었다. 이 시간 동안 천안집은 서울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들로 삶의 밀도를 올려주었다. 모쪼록 새롭게 짓고 있는 집에서도 다채로운 경험들로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밤에 본 천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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