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짓기
"카눈이 안 왔으면 수억짜리 물탱크를 지을 뻔했어."
광복절을 맞아 하루라도 엄마 밥 먹으면서 쉬려고 퇴근하고 바로 천안집으로 갔다. "우리 집에 대한 글을 쓸 거니까 나 인터뷰 좀 해줘"라고 하니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조금 고민하시더니 방수 작업 후기를 알려주셨다.
"큰일 날 뻔했잖아"로 시작하는 엄마의 말에 물음표 가득한 표정으로 기다리니, "카눈이 와서 다행이었어." 하신다. "왜 태풍 때 무슨 일 있었어?" 하니 카눈이 왔을 때 집에 물이 새서 벽돌 쌓기를 중단하고 방수 작업을 더 했다는 거다.
차수가 있고, 방수가 있는데 차수는 창문 쪽 방수를 말하는 거고 방수는 바닥 쪽이다. 이 둘을 각기 다른 팀에서 해주셨다고 하셨다. 엄마는 각각 대전팀, 왕십리 아저씨라고 불렀다. 저번에 내가 왔을 때 작업해 주신 분은 왕십리 아저씨로 바닥 방수를 해주셨고, 이번에 문제가 된 건 차수를 했던 대전팀이란다. 차수를 다 한 이후인데 창문 벽과 창틀 사이 틈으로 비가 그대로 다 들어와 버린 거다.
집을 지을 때 가장 골치인 작업이 물을 막는 것이다. 바늘구멍만 한 물 샐 틈이 있어도, 거기로 물이 계속 들어오면 결국 물 새는 집이 된다. 아무리 작아도 집을 짓고 난 후에 그 출처를 잡으려면 천장이든 바닥이든 전체를 드러내서 봐야 하니 대공사가 된다.
작업해 주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꼼꼼히 한다고 했고, 방수 작업을 하는 걸 처음 보는 부모님은 그저 고마웠다고 한다. 그런데 태풍 한 번에 물바다가 되는 집이라니, 수억짜리 물탱크를 지을 뻔했다는 생각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고 했다. 절대 돌려주지 않겠지만, 지인 소개로 우리 집을 작업해 주시는 만큼 고마운 마음에 선불로 일시납 했던 공사비 300만 원가량 중 손해 비용을 환불해 달라고도 해봤다고 했다.
"너도 알겠지만, 엄마·아빠가 웬만하면 잘한다고 하는 편이잖니, 그리고 우리는 보이는 대로 믿는 거지. 여기저기 작업 흔적이 있어서 꼼꼼히 해준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엉망이었던 거야. 만약 카눈이 아니라 보슬비 정도 왔다면 잘 됐다 하고 넘어갔겠지. 그래서 카눈이 진짜 고마워."라는 엄마의 말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공들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긴 집이 지어놓고 보니 물이 새면 비용도 비용이고, 정말 두고두고 너무 속이 상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카눈의 후폭풍 덕분에 바닥 방수를 해주셨던 분이 차수까지 꼼꼼하게 다시 봐주신 상황이고, 다시 벽돌 쌓기도 시작했다.
그 뒤로도 물밀듯이 집 짓기의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다. "돌아보면 초등학생이 수능장에 던져진 거나 마찬가지였어. 처음 보는 어려운 문제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니."라며 하나둘 풀어준 에피소드들은 직접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것이 뭔지 간접 체험하게 해 주었다.
설계사무소에서 그려준 설계도는 대학교 전공책처럼 두꺼운데, 거기서 부모님이 이해할 수 있는 건 3, 4페이지의 설계도면 그림이 전부였다. 너무나 다행하게도 동생과 내가 뚝딱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옆집 아저씨가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면서 건축 현장을 감사하는 감리 업무를 하신 경험이 있어, 이해할 수 없는 설계 문서를 같이 해독해 주셨다.
이어진 뚝딱이 아저씨의 활약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웠다.
공방과 갤러리 두 구역으로 나뉜 집인데 토대를 만들면서 공방 부분에 단열재를 빼먹었다고 한다. 산인만큼 겨울이 되면 추위가 제일 걱정이라 단열이 아주 중요한 집인데, 다른 곳 건축하듯이 그냥 하다가 빼먹었는지, 아니면 비용을 줄이려 그랬는지 아무튼 이걸 설계도를 볼 줄 아는 뚝딱이 아저씨가 발견했다고 했다.
넣으려면 바닥을 다 뜯어내야 한다며 우는소리를 하는 아저씨들 말에, 엄마가 악역을 자처하고 곧장 가서 “단열재 넣어주세요, 설계도 그대로 해주세요. 저희는 설계도를 못 봐도 옆집에 감리로 오래 근무하신 분이 계시거든요. 그분이 다 봐주고 계세요.”라고, 아주 깐깐한 주인장처럼 요구했다고 한다. 은연중에 뚝딱이 아저씨의 존재를 어필했더니 작업해 주시는 분들이 순간 긴장했단다. 엄마는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간 듯 손도 열심히 사용하고 말투도 흉내 내며 열정적으로 묘사해 줬다.
단열 사건으로 뚝딱이 아저씨의 존재가 알려진 날, 골자를 만들기 위한 H빔 자제 중 빼놓은 것을 밤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며, “모든 집은 설계도대로 만들면 문제가 없는데, 그걸 비용 좀 이득 보겠다고 자제를 빼돌리고 그러면서 설계도대로 안 해서 문제인 거야.”라고 옆에서 듣던 아빠가 덧붙여 줬다.
건축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부모님이라서, 어떻게 짓고 있나 궁금했는데 왕도가 있는 건 역시 아니었나 보다. 어려워도 내 집이니까, 내 책임이니까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도움을 구하면서 매 순간 헤쳐나가신 거였다.
엄마와 한참을 이야기하던 중에 벽돌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아빠가 ‘영농 쌓기(얼기설기 벽돌 사이 공간을 두는 디자인적인 쌓기 방식) 전에 방수 작업 해주시겠대 “ 했다.
그러니 엄마가 ”진짜? 너무 잘됐다! “해서 그건 또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벽돌을 쌓는 방식을 영농 쌓기로 바꾸려면 한 번 더 방수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바닥 방수 아저씨는 실내 방수 전문이라 잘 모르고 벽돌 사이 방수를 해줄 사람을 따로 구하기도 번거로워 부모님이 직접 하려 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뚝딱이 아저씨, 골조를 쌓아준 외삼촌, 벽돌 사장님까지 여기저기 다 방법을 물어봤는데 벽돌 사장님이 가장 잘 아셨다. 그분이 알려준 방법대로 두 분이 직접 하려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벽돌 사장님이 벽돌 작업하며 같이 해주시겠다고 하셨단 거다.
“돕는 자가 항상 있는 거야. 엄마가 집을 지어보니 더 느껴.”라는 엄마의 말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함께 그 돕는 자들을 만나기까지 부모님이 얼마나 물어보고, 알아보고 다녔을지가 그려졌다.
글을 안 썼으면, 인터뷰하겠다고 각 잡고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수도 있을 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