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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원 Jun 30. 2024

심장이 두근두근, 고양이 입양 신청

나는 고양이 가족 중 엄마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무작정 입양했다 일어나는 잦은 파양과 혹시모를 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신청 절차가 까다롭고 신청서 질문 내역도 어렵다고 들었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지금까지 쌓아온 터질듯한 애정과 앞으로의 다짐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 혼자만의 결심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약속이라고 생각하니 마치 결혼을 하는 것처럼 입양이라는 주제가 무겁게 다가왔다. 입양신청서에는 고양이를 입양하고자 하는 이유, 입양으로 내가 꿈꾸는 삶,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양이와 함께 하게 될 수 없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쓰게 되어 있었다. 고양이가 있는 공간의 공기는 느낌이 다르다는 걸, 그 폭닥하고 나른한 느낌을 분명 이 사람들도 알 거라 생각하며 내 진솔한 마음을 담아 신중하게 써내려갔다. 


나의 퇴근길을 졸졸 따라와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왔던 '래미'의 이야기는 일부러 쓰지 않았다. '저를 간택해준 고양이와 똑 닮아서 마음이 가네요.' 마치 '제 첫사랑과 닮으셨네요.'라는 고전적인 레파토리처럼, 이렇게 쓰면 좋은 사연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여러 입양신청자들 중에 나를 돋보이게 할 이야기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믿고 의지해서 따라와준 래미를 다시 밖으로 보내야 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마음을 아프게 찔렀고 그 이야기는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특별한 이야기 없이, 순전히 내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고양이들을 사랑해왔고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줘왔는가를 단순하게 표현했다. 임시보호를 하며 느낀 점들도 썼다. 근무가 없는 날의 낮 시간, 거실 통창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 아래 잠든 고양이를 바라볼 때의 그 평온함이 정말 좋았다고, 또 그런 시간을 누리고 싶다고. 집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테이블 밑으로 내 다리를 쓸고 지나가는 작은 존재를 느끼고 싶다고. 설거지를 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거실 어딘가에 작은 털뭉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물론 임시보호를 경험하며 겪었던 어려움도 썼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태어난지 두 달이 갓 넘은 아기 고양이는 새벽 세 시, 네 시 가리지 않고 밤중에도 심심할 때면 나의 머리카락을 물어뜯고 팔뚝을 할퀴었다. 아기라서 그런가 우는 소리는 병아리처럼 삐약댔는데 아무리 잠에 취해 있어도 애처로운 그 소리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무는 힘을 조절할 줄 몰라서 함께 장난을 치다가도 급작스레 너무 세게 물려서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면 녀석도 놀라서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지곤 했다. 간식을 급히 먹다가 도로 토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뭘 한 건지 모래를 온 방에 흩어놓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 모든 책임을 온전히 내가 지며, 녀석에게 깨끗한 집과 영양가 있는 밥, 다양한 장난감으로 놀이를 제공하고 그 댓가로 이 부드럽고 따뜻한 털뭉치와 가족이 되는 것. 때로는 아옹다옹 때로는 아껴주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서는 전화 면접이 있었다. 그 때 알게 되었다. 신청자가 스무 명 넘게 있었다는 걸. 아이가 건강한데다 털이 희고 예뻐서 인기가 많은 편이라고 했다. 보호센터 담당자님께서는 가장 좋은 집에 입양을 보내기 위해 이렇게 꼼꼼히 체크를 하고 있다며 양해를 구하셨다. 나는 당연한 일이라며 적극 동의했다. 나의 직업, 생활 패턴, 주거 형태, 가족 관계, 결혼 여부와 결혼 계획 등 개인적이고 조금은 민감할 수 있는 사항들을 물어보셨지만 나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어떤 의도로 물어보는 건지 알기 때문이었다. 나를 어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양이를 위해서니까, 고양이를 위해서라면 나에 대해서 다 말씀드려도 괜찮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아이를 잘 돌볼 여력이 될 테고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근방에 살아야 내가 갑자기 사고가 나거나 휴가를 가게 되어도 아이가 방치되지 않을 테니까.


여러 질문들이 이어진 끝에 담당자님께서 조심스럽게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혹시 엄마 고양이와 아들 고양이를 함께 동반입양하는 것은 어떠냐는 질문이었다. 입양글에 아들 고양이는 엄마 고양이에 비해 조금 내성적이고 친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라고 써 있어서 나는 그 때문에 아들 고양이는 입양 문의가 없는건가 싶었다. "아기가 입양 문의가 없나요? 그럼 제가 둘이 같이 데려올 수 있어요." 담당자님께서는 입양 문의가 없는 것은 아닌데 아들 고양이가 소심하고 엄마 고양이에게 의존도가 커서 이왕이면 같이 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내가 흔쾌히 둘 다 데려가겠다고 답하니 굉장히 기뻐하셨다. 이 마지막 질문에 다른 신청자들은 모두 두 마리는 어렵다, 힘들다고 거절을 했다고 한다. 


내 동생이 혼자 살며 남매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나에게는 그 모습이 익숙하다. 두 마리의 고양이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줄 수 있는 기쁨의 두 배 이상을 준다. 자기들끼리 우루루 뛰어다니고 서로 그루밍을 해주고 등을 꼭 붙이고 함께 낮잠을 자는 등, 인간이 줄 수 없는 종류의 교감을 나눈다. 그리고 저들끼리 교감을 나누는 그 모습이 사람 눈에 무척 예뻐보이기도 한다. 둘이 꼭 끌어안고 있으면 괜히 나도 끼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들이밀어보는데 절대 안 반겨준다. 치사하지만 웃기고 귀엽다. 한 마리도 키워본 적이 없어서 선뜻 두 마리 모두 입양 신청을 할 수 없었을 뿐, 나도 사실 가족 전부를 데려오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전화 면접이 끝나고 하루 이틀 쯤 뒤에 나에게 입양이 되기로 결정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호센터에서는 엄마와 아들을 함께 보낼 수 있는데다, 두 마리가 생활해도 괜찮을 집 크기와 어디가서 굶지는 않을 나의 직업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나는 정말 기뻤다. 그리고 설렜다. 드디어 나에게도 가족이 생기는구나! 눈, 코, 입은 물론 중성화 표식이 있는 귀, 풍성한 꼬리 어디든 다 예쁠 내 아기들, 내 새끼들이 생기는구나. 동생네 고양이들이 내게 낯을 가리는 것처럼 내 새끼들은 나 빼고 다른 사람들에게 낯을 가리겠지. 이처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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