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감염
아이들을 데려온 지 삼년 반, 그동안 나도 감기와 코로나로 아팠던 때가 있었고 고양이도 생명이니 건강이 좋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둘을 들쳐메고 병원에 갔던 것은 데려온 지 두, 세 달 정도 됐을 때였다.
그날따라 일이 힘들어서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치킨을 포장해서 왔다. 거실에 불을 켰는데 거실과 부엌 사이 누군가 토해 놓은 것이 보였다. 토사물을 닦으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대부분 액체인 토사물 중간에 2-3cm 정도 되어보이는 가늘고 긴 선충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기겁을 하고 한 발 물러났다. 아무리 봐도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은 이미 죽은 것인지 미동이 없었다. 둘 다 길바닥 생활을 했으니 기생충이 있는 게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토할 정도면 몸 속에 바글바글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됐다. 믿기지가 않았다. 이렇게 털이 복실복실하고 꼬리가 탐스러운 귀여운 녀석들이 이런 에일리언같은 걸 토했다고? 그리고 이 징그러운 게 더 있을 수도 있다고? 오마이갓. 이미 시간이 늦어 동네 병원은 문을 닫았고, 멀리 있는 24시간 동물병원에 가야하는데 혼자서 두 마리를 다 짊어지고 갈 자신이 없었다. 급히 차량을 보유한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다. 동생이 오는 데에 한 시간 정도 걸린대서 이왕 기다리는 거 저녁을 먹으며 기다렸다. 갓 튀겨서 뜨겁고 바삭한 치킨이 이렇게 맛이 없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사촌동생이 도착하고 나는 동생에게 한 번 더 확인을 받았다. "아무리 봐도 기생충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인터넷으로 찾은 사진들도 보여줬다. 사촌동생도 기생충같다고 했다. 용감한 동생이 기생충의 사체를 치워주었다. 아직 고양이들을 이동장에 넣는 일이 익숙지 않아서 먼저 방문을 다 닫아 숨을 곳을 없앴다. 토끼처럼 도망다니는 녀석들을 늙은 사냥개처럼 헉헉대며 어렵사리 붙잡아 이동장에 넣었다. 출발도 하기 전에 벌써 지쳤다. 나는 등으로 메는 이동장을 메고 힘이 센 동생은 손으로 드는 이동장을 들고 차에 탔다.
야간 근무를 하고 계신 수의사 선생님은 젊고 힘이 세보이는 분이셨다. 진료실로 들어간 아이들이 집에서와는 다르게 날카롭게 애옹댔다. 피검사 때문에 바늘을 찔러서 그런지 크게 냑 하는 소리가 났고 그게 더더욱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두 마리 다 심장사상충 검사를 받고 구충제를 처방받았다. 야간 진료비가 8만원인가, 아무튼 비쌌다. 심장사상충은 다행히 둘 다 음성이 나왔다. 의사선생님께서는 구충제를 먹이면 죽은 충의 사체가 배설될 수 있다고 하셨다. 또 기생충을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병원은 어떻게든 가면되고 병원비는 카드로 내면 되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누군가 대신 해 줄 수 없고 내가 오롯이 마주해야하는 문제였다. 병원에서 추천해준 필건도 비싼 돈을 주고 사왔는데 쉽지 않았다. 학교에 다닐 때 실험쥐에게 바늘이 없는 주사기로 약을 먹였던 시간이 떠올랐다. 2인 1조였는데 내가 계속 실패해서 내 짝이 해냈다. 내 짝은 남자여서 힘이 세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에 아주 무자비하게 한 손으로 쥐를 꽉 잡고 다른 손으로 거의 주사기를 식도로 다이렉트로 꽂아서 약을 줬다. 쥐도 당연히 반항한다. 두 손으로 주사기를 밀쳐내는 작은 동작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쥐한테도 못한 걸 고양이한테 하라니. 고양이에게 약을 먹이는 유튜브 영상을 여러 번 보고, 아이를 어떻게든 힘주어 잡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잘 잡았다고 생각해도 뒷발로 나를 차며 버둥대면 털이 매끄러워서 순식간에 놓치게 되었다. 게다가 입에 약을 들이밀기도 힘든데 겨우 성공했다 싶으면 입안에 약을 숨겨놓고 먹은 척 해놓고 다른 곳에 뱉어놓거나 거품토를 하거나 해서 내 수고를 도루묵으로 만들어놓았다.
무릎담요로 돌돌 말아서 내 다리사이에 아이를 꽉 끼우고 자유로운 양손을 이용해 고개를 잡고 약을 먹이는 수법으로 해냈다. 이렇게 하기까지가 너무 힘이 들고 지치고 아이들이 너무 싫어해서 내가 얘네를 살리자고 하는 일인지 얘네를 괴롭히는 일인지 혼란이 왔다. 나중에, 정말 많이 시간이 지나서 얘네 병수발은 어떻게 들지...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중간에 실패한 한 두알이 있었던 것 같지만 어찌저찌 약을 먹였고 다행히 변으로 배출된 기생충 사체는 마주할 일이 없었다. 변에 파묻혀서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지레 겁먹어서 일주일 가량을 최대한 변을 보지 않으며 치워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 후로 매달 바르는 구충제를 여름마다 꾸준히 발라주고 있다. 바르는 약도 상당히 싫어하는데 먹는 약보다 열 배, 스무 배는 쉽게 해치울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