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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했어, 벤

by 김영원

벤과 드디어 헤어졌다. '드디어' 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우리 사이에 정말 기나긴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기를 기다렸고 사랑한다는 말을 기다렸고 결혼을 기다렸다. 우리는 셀레나 고메즈와 저스틴 비버가 그랬던 것처럼 몇 번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깨졌다가 붙었다가, 그런 깨붙을 반복하며 이번에는 정말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으리라고 벤은 믿었을 것이다.


처음 우리가 만난 건 한창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이던 2020년 겨울이었다. 벤은 키가 나와 비슷하고 마른 편이어서 소년같았다. 적당히 컬이 있는 카키빛이 도는 풍성한 갈색머리, 선한 눈매에 높고 늘씬한 콧선, 날렵한 턱선 때문에 한국에서는 디카프리오를 닮았네, 브래트 피트를 닮았네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본인은 그게 인종차별같다고 싫어했다. 자신과 그 배우들의 닮은 점은 피부색과 눈 색깔 뿐이라고. 내 생각에도 별로 그들을 닮지는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벤은 잘생겼다. 그보다도 애처롭달까, 큰 눈망울에 눈꼬리가 처진 동그란 눈매가 초식동물의 것처럼 슬퍼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손에 내가 들고 있던 손난로를 쥐어주었을 정도로 왜인지 모르게 그냥 챙겨주고 싶고, 잘 해주고 싶었다.


벤은 아버지가 요리사로 일을 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요리와 베이킹을 아주 잘 했다. 솔직히 그게 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살림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요리가 얼마나 정성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지 알 것이다. 저녁을 해주겠다고 나를 집에 초대하면 항상 이렇다. 벤네 집에 주말 정오쯤 도착해서 낮 동안 함께 차를 마시며 떠들고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며 놀다가 오후 4-5시가 되면 이제 저녁을 준비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고기가 재워진 보울을 꺼낸다. 내가 오기 전, 오전 시간에 장을 봐서 직접 소스를 만들어 고기를 재워놓은 것이다. 벤은 늘 말했다. 시간이 들어가는만큼 요리가 맛있어진다고. 그렇게 미리 재워놓은 고기를 가지고 요리하는 데에도 한 시간이 걸리도록 품을 들였다. 내가 돕겠다고 하지 않으면 나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애정을 느꼈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여름이면 직접 아이스티 농축액을 만들어 냉장고에 저장하고, 겨울이면 핫초코를 마시며 뜨개질을 하는 본인만의 계절 루틴도 있었다. 한국에 있는 자기 형이나 형수의 생일이면 시나몬롤을 굽고 크리스마스에는 파테를 만드는 등 내가 보기에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너무나 예쁘고 따뜻하게 신경써줬다. 요리도 어찌나 다양하게 할 줄 아는지 타코, 오코노미야끼, 닭갈비, 칠리... 내가 한식을 밖에서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외국 음식을 많이 해줬지만 찌개류도 만들 줄 알고 세상의 모든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미적 감각이 있어서 집은 항상 잘 꾸며져 있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준 그림이나 카드, 향초들이 거실에 늘 보기좋게 세워져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트리도 꺼내어 꾸미고 가족들에게서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표지가 보이도록 창가에 세워 둔다. 벤의 집은 딱 내가 살고 싶은 집이었다. 벤네 집에 놀러가면 마음이 편하고 아무 곳에나 드러눕고 싶었고 향초 때문이든 음식 때문이든 좋은 향이 났다.


다만 벤과의 첫 번째 연애에서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벤이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가 개인적이고 예민하며 마음을 터놓고 모든 걸 말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느꼈다. 스킨십도 많지 않고 내가 이것저것 데이트 제안을 하면 '노'라는 대답이 많았다. 한복입고 경복궁에 가는 것도, 놀이공원에 가는 것도, 전통시장에 가는 것도 다 '노'였다. 이유가 합리적이긴 했다. 코로나에 걸리기 싫다, 어린이들과 함께 일하는 데 다른 선생님들이 그렇게 나다니는 걸 보면 책임감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 많은 곳은 피곤하다... 심지어 함께 주말을 보내면 아침에 늘 먼저 일어나서는 커피를 내리러 주방으로 가곤 했는데 먼저 일어났음에도 나를 안아주거나 하는 터치가 일절 없었다. 커피 머신 소리 때문에 잠이 깨어도 일부러 벤이 나를 깨울 때까지 기다려본 적도 있는데, 그냥 말로만 깨우거나 다리를 흔드는 게 다였다. 무정했다. 어떨 땐 정말 극단적으로 얘는 장점이 얼굴밖에 없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일 년 만나고 내가 헤어지자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헤어지자고 해놓고 벤의 기분이 너무나 신경이 쓰여서 뉴질랜드 초콜릿을 종류별로 사서 예쁜 캔들과 함께 담아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택배로 보냈다. 물론 익명으로 보냈지만 나인걸 바로 알았을 것이다.


두 번째 연애는 좀 짧았다. 헤어지고 난 다음 추석 즈음에 벤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시 내 부모님께서 지내던 도시에 물난리가 나서 뉴스에 나왔는데 우리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메세지였다. 그렇게 우린 다시 만났다. 여전히 그의 평화로운 삶은 매력적이었다. 나는 다시 벤과 잘 만나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진지하게. 나는 벤을 아꼈고 좋아했고 뭐든 해주고 싶었고 같이 있고 싶었다. 우리는 성격이 비슷했고 좋아하는 것들도 비슷했다. 책을 읽고, 빵을 굽고, 그림을 그리고, 뜨개질을 하고. 그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무척 즐거웠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봄이 되자 벤이 사라져 버렸다. 연락이 안 됐다. 4월 초, 벤의 생일에 다시 한 번 연락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연락이 안 됐고 나는 답장이 없는 그를 더이상은 찾지 않았다. 나중에 본인에게 물어보니 우울증 때문에 혼자 있고 싶었다고 했다.


가을이 되어 벤이 다시 나타났다. 터키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는데 거기서 본 고양이들이 무척 귀여웠다며 내게 사진을 보내왔다. 그렇지만 우리 집 고양이들이 더 귀엽다며 애들을 보고싶어 했다. 나는 이번에는 벤과 다시 만나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로 지낼 의향은 있었다. 여전히 배울 점이 많고 나와 취향이 비슷하며 똑똑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반 년을 넘게 친구로 지냈다. 한 달에 두어 번, 같이 전시회를 가거나 우리 집에서 고양이와 놀거나 벤의 집에서 갓 구운 빵을 함께 먹었다. 낮에 만나서 밤이 되기 전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아주 조금씩 벤이 나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것저것 주는 게 많아졌다. 크리스마스에는 진주 챰이 달린 초커를 받았는데 얘가 나한테 마음이 있나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여전히 우린 그냥 친구였다. 언젠가는 내가 푸딩을 좋아하니까 직접 푸딩 몰드를 사서 여섯 가지 맛의 푸딩을 만들어서 보냉백에 담아 우리 집까지 가져왔다. (그 중의 하나가 장미 오일을 넣은 장미맛이었는데, 장미맛 터키시 딜라이트와 똑같은 향이 났다! 장미맛 푸딩 먹어보신 분?) 밖에 나다니는 걸 싫어하던 그가 나랑 가려고 맛집들과 카페들을 지도에 표시해 놨다. 다음 주에는 연극 볼래? 발레 보러 갈래? 합정에 맛있는 피자집이 있대.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가 책 원작인데 이거 볼까? 여름에 바다 보러 갈까?


그런 얘길 전혀 안 하던 그인데, 나에게 예쁘다고 했다.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보길래 왜 그러냐고 물으면, admiring한다고 했다. 결국 내 생일이 있던 주말에 우리는 다시 연인이 되었다. 내가 정말 갖고 싶어하던 귀걸이가 있었는데, 벤에게 말한 적도, 보여준 적도 없는데 그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귀걸이를 선물로 주어서 깜짝 놀랐다. 확실히 벤은 보는 눈이 있다. 금장으로 커버가 예쁘게 꾸며진 프랑켄슈타인 책과 수제 초콜릿도 주었다. 생일 당일에는 내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푸딩 두 개와 커피를 보내주었다. 벤은 이제야 마음이 열린 것이다. 나에게 정말이지 죽도록 다정했다. 명절에 기차를 타야 할 때면 기차에서 먹으라고 쇼핑백 가득 간식을 넣어 건네주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밤에 잘 때, 아침에 일어날 때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내 옆에 꼭 붙어 있고 싶어했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자기도 소파에, 내가 바닥에 앉으면 자기도 바닥에 따라 앉았다.


그런데 이번의 문제는 나였다. 전처럼 벤이 막 좋지가 않았다. 전에는 벤이 이렇게 해주길, 내가 그에게 하는것만큼만 해주길 너무나도 간절하게 바랐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 그런 감정도 다 지나있었다. 만나면 좋긴 한데... 그런데 그냥 우리가 함께 하는 미래를 그릴 수가 없는 것이다. 벤과 세 번째 연애를 하면서도 나는 벤에게서 벽을 느꼈다. 벤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벤이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나와 같이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 심지어 벤은 나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새해 카운트다운을 나와 함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퇴근이 늦고 자기는 매일 10시에 자야 하니까. 내가 우리 집으로 와달라고 했으면, 같이 카운트다운을 하자고 했으면 해줬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상대방도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지난 달에 벤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헤어지고 싶은 이유는 소소하지만 여러가지였다. 매사에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작지만 나를 서운하게 한 것들, 그리고 나의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런 말이 너에게 잘 안나온다는 것(네가 예민하고 부정적이니까 어떤 얘기든 그렇게 받아들일까봐), 너의 가족을 소개시켜 주지 않는 것. 장장 3년을 만나면서도 아직도 벤의 형을 만나보지 못했다. 벤의 형은 한국 여자와 결혼해서 얼마 전에 아기를 낳았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굉장히 남일처럼 느껴졌다. 벤의 형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선물은 커녕 축하 메세지를 보낼 수도 없고 아기를 보러갈 수도 없고. 그쪽도 우리와 같은 국제커플이니 만나면 할 얘기도 많을텐데. 다른 이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왜 지금껏 형 소개를 안 했을까? 나는 벤에게 우리 엄마도 보여주려고 했고(벤이 거절했지만) 내 가장 친한 친구도 보여줬는데.


나는 그저 나의 세상을 남자친구와 공유하고 그의 세상을 공유받고 싶었다. 벤은 정말 울면서 매달렸다. 자기에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동안 내가 이런 점들을 말하지 않고 속에만 담아둬서 자기는 몰랐다고 했다. 타당했다. 그래서 기회를 주기로 했다. 벤은 한 쪽 귀가 선천적으로 들리지 않아서 전화통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통화를 하면 귀가 쉽게 피로해진다고 한다. 첫 연애 때 전화를 건 적이 있는데 벤이 받지 않았다. 그 후로 3년을 주구장창 메시지만 주고받았다. 그런데 3월 이후로 벤이 먼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신선한 변화였다. 말로 하니까 더 자연스럽고 빠르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대화의 양과 질이 좋아졌다. 전화로 떠들며 함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이러저러한 일들로 우울하다고 하니까 다음날 갑자기 꽃다발을 보냈다. 퇴근을 하고 8시에 집에 도착했는데 거대한 박스에 어마어마하게 큰 꽃다발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걸 받고 나는 짜증이 났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벤은 회사로 커피랑 디저트 보내줄까? 하고 물어본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커피는 내가 필요할 때 스스로 사 먹을 수 있다. 내가 그에게서 원하는 건 혼자서 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함께 멀리 떠나서 바다를 보며 멍 때린다던가, 친구를 같이 만난다던가, 새로운 장소에 가본다던가... 거대한 상자에서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꽃다발을 낑낑대며 꺼내면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벤에게 짜증을 내지 못한다. 나 기분좋으라고 십 몇 만원짜리 꽃다발을 보낸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니까. 퇴근해서 지친 몸으로 꽃을 꺼내고 벤에게 보낼 인증샷을 찍고 고양이들이 꽃을 뜯어먹지 못하게 막으며 정리정돈을 하면서 너무 피곤하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4월 중순, 태어난 아기를 보러 벤의 부모님, 이모, 남동생, 남동생의 여자친구가 한국을 방문했다. 2주 조금 넘게 머무를 예정이라고 했다. 일요일에 가족과 점심을 먹기 전, 벤이 우리 집에 잠깐 들렀다. 나에게 물었다. 조만간 우리 가족 한 번 만나볼래? 부담스러우면 우리 부모님만이라도.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왜 그걸 이제 물어봐? 이게 얼마나 오래 전에 예정되어있던 일인데. 벤은 내가 부정적인 대답을 할 것만 같아서 물어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럴거면 계속 묻지 말던지... 우리 둘 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꺼내는 걸 왜 이렇게 못하는지 너무나 답답했다. 나는 벤을 상처줄까봐 말을 못하고 벤은 자기가 상처받을까봐 말을 못하고.


그런건 내가 자기랑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 전에 물어봤어야지. 진작에 나에게 형도 소개해줬어야지. 내가 자기를 사랑했을 때 그 때 나를 사랑했어야지. 벤과의 관계에서 드는 생각은 전부 과거에 묶여있다. 지금의 나는 그만큼 벤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더 좋아지지 않고 답답한 마음만 드니까.


언젠가 애칭 얘기를 하다가 닮은 동물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벤에게 말했다. "너는 다람쥐 같아. 숲에 불이 나서 자기 집이 다 탔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한테 와서 묻는 거지. '혹시 우리 집 어딘지 알아?' 그럼 나는 절대 사실대로 말을 못해, 너네 집 불나서 없어졌다고. 그래서 이렇게 말해. '미안해, 몰라.'" 벤은 내가 돌고래를 닮았다고 했는데 딱히 뒷배경이 있는 돌고래는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벤의 울퉁불퉁한 뒷통수를 놀린답시고 벤을 '감자', 벤은 늘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나를 '말썽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는 점점 감자를 부르지 않게 되었고 벤은 점점 말썽쟁이 대신 '내 말썽쟁이'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결국 나는 또다시 이별을 고했다. 결단코 최후의 이별이다. 벤은 설날에 나에게 고백했다. 사랑한다고. 서양 문화에서 사랑 고백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건지 알 사람들은 알 거다. 나는 같은 답을 해주지 못했다. 벤은 내가 같은 답을 해주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내가 끝내 내놓은 답은 이별이었다. 조금은 후회된다. 이미 지나버린 연애지만, 그 때는 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를 사랑했을 때 나도 용기내어 말할 걸.


사랑한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어봤지만 이렇게 진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싶어한 사람은 벤이 유일했다.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우리의 타이밍이 이렇게 어긋났다는 게, 지나간 내 감정을 내 마음대로 되돌려놓을 수 없다는 게 슬프다. 벤은 관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에 서툴렀고, 나를 다른 사람들과 다같이 만나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다음 연애에서는 더 잘 할 것이다. 벤은 사랑받을 사람이고 그것도 듬뿍, 넘치게 받을 사람이다. 벤이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헤어져서 정말 다행이다. 많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제는 나를 잊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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