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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use Feb 01. 2024

넋두리

그건 사랑이었을까

혼기가 찬 30대 여성에게 소개팅 제의가 들어오는 것은 점점 가뭄의 단비 같은 현상이 될 것이니 있을 때 받으라는 지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2024년 연초부터 원치 않는 소개팅을 했다. 자가 소유에 세를 내주고 있는 집주인이며,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다는 등 주선자는 나에게 그의 경제적인 정보를 물심양면 제공해 주며 당사자보다 더 적극적인 어필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 조건들이 없는 것보다야 나으니 물론 플러스 요인은 되었겠다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 티키타카가 잘 되느냐와 내가 이성적인 감정이 생겨날지에 대한 부분은 만나봐야 아는 것이기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약 2주간 카톡을 주고받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첫 약속을 잡았다.


서로의 교차점인 7호선 라인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나를 데려다줄 심산으로 대중교통이 아닌 차를 가져온 그는 결국 함박눈으로 인한 교통 체증에 못 이겨 지각을 하고 말았다. 나의 못된 심보는 여기서부터 발동되었다. 이미 한차례 약속날짜를 딜레이 한 그에게 속으로 마이너스를 매긴 상황에서 약속시간까지 늦었으니 또 한 번의 마이너스 점수를 매긴 것이었다.


원치 않는 소개팅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 남자에게 거절할 구실들만 잔뜩 준비해 놓은 사람처럼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카톡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우리는 안면을 텄고, 원래 가기로 한 카페에 사람이 많아서 30분을 배회하다가 다른 카페로 행선지를 옮겼다.


사람은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끌림은 없었다.


이 소개팅남과는 한번 더 만남을 가졌지만, 겨우 두 번째 만남에 훅 들어온 고백공격에 그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만남을 정리했다. 내가 지금까지 연애를 안 했던 것이 ‘주변에 남자가 없어서’라고만 생각해 왔었는데, 결국 내 마음에 차야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여태껏 못해온 것이었다.


또한 지금 이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서 비로소 내 심리 상태도 잘 알게 되었다. 내 앞에 소개팅남을 두고서도 나는 최근에 내가 호감을 가진 사람을 부러 잊으려 노력했던 것이었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호감인지 호기심인지도 모른 채, 이 혼합되어 있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정답을 내리지 못하고 나는 또 하나의 인연을 놓치고 말았다.


이 또한 운명이 아니었겠지 하고 애써 단념해 보지만 이렇게 운명론자의 길을 택해놓고 나는 또다시 혼자만의 넋두리를 하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이다.


사랑이라는 게 처음부터
빠지는 건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버릴 수
있는 건지는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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