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am sessi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지 Oct 31. 2023

릴리안 라르센

Stranger than Fiction


4년 전 겨울이었다. 내가 릴리안과 우연히 만났던 그날은.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역 근처에 있던 어느 바에서였다. 그날 나는 톰이 퇴근하기 전까지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다. 아, 톰은 내가 나흘간 머물기로 되어 있던 에어비앤비 주인 이름이었다. 그는 내게 예약 확정 메일을 보내주며 말했었다. 자기는 일터에서 오후 6시경이면 돌아온다고, 그러니 그 전에 도착하게 되면 미안하지만 다른 곳에서 대기해줘야 할지 모른다고.


샤를로텐부르크 역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3시 반이었다. 숙소는 샤를로텐부르크 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톰의 집을 찾아가 벨을 눌러 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쿠담 거리. 자전거가 세워진 노란 건물의 1층이 톰의 집이다. (사진: 연지 / 2020년 1월)


나는 뜬 시간을 어디서 보낼까 잠시 고민했다.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니기엔 조금 피곤했다. 공항에서 DB를 타고 베를린 중앙역으로, 중앙역에서 S-Bahn을 타고 샤를로텐부르크 역으로 케리어를 끌고 오면서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그날은 정말 추웠다. 특히 독일 날씨는 뼛속까지 으슬으슬하게 만드는 특유의 기분 나쁜 싸늘함이 있었다.


추위에 떨며 케리어를 끌고 두 블록 정도 더 걷다 보니 마침 괜찮은 곳이 보였다. ‘Charlottenburg Bar & Restaurant’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이었다. 내가 릴리안 라르센을 만났던 바로 그 바였다.




묵직한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자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는 주황빛 조명 아래 근사하게 번쩍이는 각종 맥주병들이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입구 쪽 스탠딩 바 자리 뒤편으론 넓은 테이블 구역이 자리했는데, 열댓 개 넘는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손님들은 고작 서넛뿐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잠시 몸을 녹이기로 결정했다. 일단 붐비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Hotel California>와 비슷한 느낌의 알 수 없는 음악도 왠지 좋았다.


짐을 끌고 테이블 구역의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앉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해보니 그날 먹은 거라곤 베를린 중앙역에서 빵 하나를 사 먹은 게 전부였다. 나는 메뉴판을 뒤적이다 프렌치프라이를 곁들인 커리부어스트와 베를리너 병맥주를 주문했다. 음식을 먹으며 숨을 돌리다 보니 서서히 긴장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모처럼 잠시 기분 좋게 휴식을 취했다. 노트를 펴고 앞으로 할 일들을 적어보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괴팅엔에서 기차를 타고 올 성혜 언니를 마중나가러 베를린 중앙역으로 다시 가야 했다. 그다음 일정부터는 완전한 자유 여행이었다. 당시 나는 하던 일을 관두고 문창과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던 것도 같다. 물론 그 시간을 전혀 후회하진 않는다. 살면서 내가 가장 나다운 순간으로 보냈던, 충만했던 2년이었으므로. 하지만 그 시작은 참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베를린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새학기가 시작되기도 전 코로나로 전세계는 재앙 아닌 재앙을 맞이했으므로. 줌 수업의 일상화로 동기들도 화면을 통해 만나야 했다. 잠시 이야기가 샛길로 샜는데, 어쨌든 나는 바에 앉아 있던 그 잠시 뜬 시간 동안 귀국 후 펼쳐질 나날들은 감히 상상도 못한 채 나흘간의 베를린에서의 자유 시간을 기대하며 잔뜩 설레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홀로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나와 함께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나라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요.”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말을 걸어오면 바쁘다고 하며 자리를 피했을 텐데, 여행지에서의 나는 이상하게도 늘 더 용감하고 여유로웠다. 그날도 그랬다. 무엇보다 그 사람은 무해해 보였다. 그래서 그녀가 “내가 그쪽으로 가도 되고, 괜찮다면 당신이 내 테이블로 와도 돼요” 하고 다시 한번 물었을 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사실 나도 의도치 않게 이따금 그녀를 힐끗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고개를 들 때마다 신문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그녀가 보였기에. 기사를 읽고 있진 않은 듯했다. 펜을 들고 하얗고 검은 칸들로 가득한 표 안에 뭔가를 열심히 써 넣고 있었다. (수도쿠 아니면 십자낱말풀이 같아 보였는데, 합석하면서 다시 보니 수도쿠였다.)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의 나이대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깔끔하게 뒤로 묶은 금발 머리하며 청바지에 남색 후드티 옷차림, 옆자리에 놓여 있던 회색 노트북 가방 등을 보면 꼭 늦깎이 학생 같기도 했으므로.


짐을 챙겨 그녀의 테이블로 갔다. 그녀는 악수를 청하며 정식으로 다시 인사했다.

 

“제 이름은 릴리안 라르센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릴리안은 얼굴에 주름이 제법 선명했다. 새파란 눈동자와 함께 자잘한 눈가 주름들이 보였고, 볼살은 나이 탓인지 영 탄력이 없었다. 물론 피부색만큼은 나보다 더 하얬지만.


내가 캐리어를 눕혀두느라 잠시 허리를 숙인 사이, 릴리안은 발랄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혹시 유학생이세요?”


“아뇨, 전 관광객이에요. 하던 일을 잠시 관두고 쉬던 중에 여행 온 거예요. 내일부터 독일에 있는 친구와 만나서 같이 여행할 거예요.”


릴리안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얼마 전 직장을 나왔다고, 40년간 해왔던 일을 이제 완전히 끝마쳤다고 했다. 무슨 일을 했었냐고 묻자 그녀는 여러 직업들을 나열했다. 건축회사 어시스턴트, 여행 가이드, 대안학교 선생님 등. 릴리안은 자신이 거쳐 온 직업들을 언급할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나갔다.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젠 그 모든 일에서 해방이 되어 정말 홀가분하답니다.”


그러더니 병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내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자신은 67세라고 하면서. 나는 만 나이를 말할까 고민하다 그냥 1988년생이라고 답했고, 그러자 그녀는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신문 <Berliner Zeitung> 한쪽 여백에 내가 앉은 방향으로 숫자가 똑바로 보이게끔 거꾸로 숫자를 끄적였다. 처음엔 1954를, 그 윗줄에 1988을 쓰곤 뺄셈을 했다.


 “내가 당신보다 서른 살이 넘게 나이가 많군요!”


그녀는 34라고 쓴 숫자를 팬 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외국에선 나이 질문은 잘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릴리안은 예외였나 보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바 안은 조금씩 붐비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전 들어온 단체 노인 손님들을 곁눈질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톰이 퇴근하려면 아직 한참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때 릴리안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참, 나는 덴마크 사람이에요.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반평생 넘게 살았죠. 남편은 독일 사람이거든요.”


그때 나는 잠시 놀랐다. 릴리안이 당연히 독일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곳은 베를린 한복판이었고, 그녀의 영어엔 독일 악센트가 잔뜩 배어 있었으니까. 물론 난 덴마크인과 독일인을 외모만으론 단번에 구별하지 못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중국 일본 사람을 서로 잘 구별하지 못하듯, 그건 내겐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거나 나로선 반가운 소식이었다. 릴리안이 덴마크인이라면 독일에선 그녀도 나처럼 외국인이라는 말이었으니까. 우리는 둘 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왜 하필 독일에 왔냐고 물었다. 나는 우연찮게 내가 독일과 맺은 이전의 인연들, 파더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이야기를 간단히 얘기해줬다. 그러자 릴리안은 반가운 표정으로 갑자기 영어에서 독어로 언어를 바꿔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년이나 있었으면 독일어는 웬만큼 할 줄 알겠네요. 우리 독어로 대화해도 되지 않나요?”


나는 눈치껏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긴 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재빨리 손을 내저어야 했다.




릴리안은 자기도 러시아에서 교환학생을 지낸 적이 있다고, 러시아 외에도 멕시코에서 3개월을, 미국에서 반년가량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스페인에도 가족이 있다고, 남편의 전 부인이 스페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기 남편과 남편의 전 부인 사이에 장성한 딸과 아들이 있는데, 자신은 그들도 자기 가족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앨범을 열었다.


“잠깐만, 우리 남편과 아이들을 보여줄게요. 가끔은 사진이 더 많은 걸 말해주곤 하죠.”


사진 속엔 갈색 곱슬머리를 한 어린 손자와 놀아주는 자상한 할아버지가 보였다. 뒤이어 보여준 사진 속엔 남편의 전 부인의 어머니와 남편의 딸, 그 딸의 아들이 함께 있었다. 딸은 스페인 계열답게 황갈색 머리와 건강한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릴리안은 살면서 자기가 낳은 자식들은 한 명도 없다고, 그건 첫 번째와 두 번째 결혼 모두에서 그랬다고, 그래도 내겐 자식이 이미 여럿인 셈이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내겐 여러 국적의 친자식 같은 아이들이 제법 된답니다.”




그녀는 유쾌하고 발랄했지만 무언가 어색할 정도로 밝은 척을 하는 듯 보였다. 뭐랄까, 애써 말을 멈추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분명 꾸며낸 것처럼 들리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릴리안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그녀는 내게 본인이 읽고 있던 <Berliner Zeitung>을 선물로 주었다. 신문 위로 릴리언이 이야기하면서 남겼던 글씨들이 보인다.


릴리안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을 때, 나는 얼른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톰이 집에 오려면 아직 30분 넘게 남아 있었다.


“우리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그녀는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내 대답은 원래부터 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듯 또다시 쉬지 않고 말했다. 남편은 선생님으로 일할 때 만났어요, 우리는 학교에서 각국의 역사와 문화, 외국어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어요. 그녀는 지칠 줄 몰랐다. 처음 만난 동양 여자에게 오늘 자신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들려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했다.


“한 반에 베트남, 브라질, 이란, 한국 등 국적이 서로 다른 학생 스무 명을 가르친 적도 있답니다. 혈기 왕성한 십 대 친구들은 관리가 무척 어렵지요.”


그녀는 가슴과 머리에 열 손가락을 모아 가져갔다가 공중에 폭죽이라도 터뜨리듯 활짝 펼치며 입으로 푸푸 소리 냈다.


“아주, 골치 아프게 굴기 일쑤였지요. 맥주 한 병 더 안 마실래요? 예버 필스너 맛이 참 괜찮은데. 난 지금 하나 더 시킬 참이에요.”


순간 나는 갈증이 일어 대뜸 물었다.


“정말 시켜도 돼요? 사주신다는 거죠?”


솔직히 말해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 대가로라도 뭔가 얻어먹고 싶었다. 릴리안은 턱을 약간 추켜올린 자세로 내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걱정 마요, 당신보다 내가 돈이 더 많아요.”


그녀는 비교급을 즐겨 썼다. 내가 돈이 더 많아요,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더 많아요, 내가 가본 나라들이 더 많아요. 물론 의도치 않은 표현일지도 몰랐다. 영어는 우리 둘 다에게 모국어가 아니었고, 우리 중 그 누구도 영어로 자신의 심정을 세련되게, 그리고 자세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예버 필스너는 뒷맛이 깔끔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맥주병에 붙은 로고가 잘 보이게끔 사진을 찍었다. 릴리안은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바에 와서 맥주를 마시는 것도 내 취미지요. 벌써 이 맥주 다섯 병째예요.”


그러고 보니 릴리안의 양 볼엔 붉은 기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냐고 묻자 그녀는 갑자기 왼팔을 불끈 들어 보이며 씩씩하게 말했다.


“우리 덴마크 사람들에겐 바이킹족의 피가 흘러 알코올 분해가 잘 된답니다. 이 정도로는 취하지도 않아요.”


시계를 보니 어느덧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새로 주문한 병맥주를 비우면 이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릴리안이 갑자기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말했다. 조금 전보다 낮고 차분해진 톤으로.


“나는 평화를 위해 싸워왔어요. 나는 전쟁이 싫고, 환경을 파괴하는 모든 것들이 싫어요. 인간은 너무 많은 걸 파괴하고 있어요. 당신네 나라도 분단과 전쟁을 겪었지요? 나는 역사에 관심이 아주 많아요.”


그 말을 듣자 릴리안이 처음 내게 접근했을 때 했던 말(“당신의 나라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요”)이 문득 떠올랐다.


“네이팜탄은 정말 끔찍한 무기였죠. 고엽제로 인한 피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요. 그런 무기들 때문에 기형아가 나오고 각종 암이 생기는 거라고요.”


“베트남전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요, 당신네 나라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정말 슬픈 역사이지요.”


“저는 베트남이 아니라 한국에서 왔어요. 처음 소개할 때 말했을 텐데요.”


나는 대답과 동시에 테이블 위에 있던 예버 필스너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미안해요. 착각했어요. 내가 선생님일 때 베트남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는데 당신과 분위기가 비슷했던 게 기억나 그만.”


그녀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급히 사과했다. 그러더니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내게 내일부터 어디를 여행할 예정이냐고 물었다.


“모르겠는데요.”


나는 피곤과 짜증이 뒤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갈 곳은 정말 많아요. 현지인으로서 ‘슈톨퍼슈타인’을 보러 가는 것도 추천해요. 내가 남편과 함께 가장 열심히 기부한 프로젝트랍니다.”


<Berliner Zeitung> 위에 펜으로 Stolperstein이라고 쓴 릴리안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냐고 묻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핸드폰으로 구글 창에 Stolperstein을 직접 검색해 보여줬다. 구글 이미지 목록에는 가로, 세로 10센티미터 크기의 금색 네모 동판이 땅에 박혀 있는 사진들이 여러 장 떠 있었다.


“나치에게 희생된 사람이 살았던 장소에 설치되는 추모비죠. 돌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살해된 날이 새겨져 있답니다. 귄터 뎀니히라는 예술가의 아이디어로 1992년부터 진행되어 온 프로젝트지요. 그는 남편과 절친한 사이였어요.”


우리가 있던 바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거리에도 이 비석이 박힌 장소가 있다며 그녀는 신문 여백에 약도를 그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찡긋 윙크해 보이며 말했다.


“이 신문은 당신에게 줄 선물이랍니다.”


그녀는 내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아쉽지만 이제 헤어져야 할 것 같아요. 숙소 주인이 이제 집에 와 있을 시간이거든요.”


나의 말에 릴리안은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더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기념으로 같이 사진이라도 찍자고 말했다. 나는 릴리안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것도 나름 인연이었으니까.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동무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우리의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내게 핸드폰 번호와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자기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진을 자기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릴리안은 핸드폰에 내 번호와 메일 주소를 저장했고, 나도 그녀의 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저장했다.


 작별 인사를 나누며 나는 말했다.


 “It was really nice to meet you by accident.“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릴리안은 큰소리로 웃었다.


“아, 그럴 땐 by accident가 아니라 by chance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죠.”


그러더니 내가 뭐라고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 말했다.


“에어비앤비 주인이 남자라고 했지요? 남자 혼자 있는 집에 머무는 건 위험할 수 있어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내 번호로 전화해요. 그럼 내가 달려갈 테니. 알겠죠?”




톰은 릴리안과 달리 과하지 않은 미소와 함께 꼭 필요한 말만 건넸다. 다행히도 그는 위험한 인물처럼 보이진 않았다. 사진에서 본 것 같이 머리가 반쯤 벗겨져 있었고, 활짝 웃을 땐 보거스를 닮은 다정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톰은 숙소의 이곳저곳을 안내해준 뒤 조용히 복도 끝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톰이 숙박객에게 제공했던 방. 벽 한쪽이 책으로 가득했다. 책장 쪽 침대는 다음날 함께 여행했던 언니가 맡았다. (사진: 연지)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친 뒤, 잠들기 전 그날 릴리안과 찍은 사진을 열어봤다. 사진의 왼쪽엔 검정 단발머리에 기다랗고 멋스러운 귀걸이를 늘어뜨린 채 어색한 표정을 한 내가, 오른쪽엔 금발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려 묶은 릴리안이 보였다.


사실 사진을 찍은 직후, 그러니까 릴리안이 나의 말—by accident—을 고쳐주기 바로 전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나는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릴리안은 내 귀걸이에 눈길을 던지면서 말했었다.

 

“귀걸이나 액세서리 같은 장신구도 필요 없어요. 다 짐이에요.”


그러더니 그녀는 구석에서 시끄럽게 웃으며 떠들고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바의 한쪽 구석엔 여러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정신없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릴리안이 앉아 있던 자리 뒷편, 바의 한쪽에 자리 잡은 할아버지 할머니 단체 손님 (사진: 연지)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에요.”


릴리안은 웬일인지 그 말과 동시에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먼 곳으로 가 있었다. 순식간에 자기 내면으로 눈길을 돌린 듯했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그녀는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어제 내 남편을 묻었어요(I buried my husband yesterday).”


“네?”


“남편이 너무 그리워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buried라는 단어를 듣고 순간 너무 놀라 다시 물었다.


“방금 당신 남편이 돌아가셨다고 말한 건가요? 내게 아까 사진으로 보여줬던 그 자상한 할아버지가?”


나는 pass away며, die, death 등 내가 알고 있는 죽음이라는 의미의 단어들을 두서없이 내뱉으며 거듭 물었다.


“네, 죽었다고요. 어제가 장례식이었어요. 그는 지금 추모공원 땅 아래에 누워있지요.”


릴리안의 눈엔 순식간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눈물이 볼 위로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애써 괜찮은 척하며 몸을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 난 그 상황이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애도의 말을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갑작스레 각성의 순간을 마주한 사람처럼 무언가를 깨달았다. 릴리안의 말과 행동이 어째서 그토록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는지. 어째서 그토록 지나치게 밝았는지.


릴리안은 남편이 2년 넘게 암 투병을 했었다고, 자신이 그간 곁에서 병간호를 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젠 그와 함께 살던 정원이 딸린 넓은 집엔 자기 혼자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인간이 전쟁을 하고 환경을 파괴하니 암 같은 병도 생기는 거라고. 정말 원망스럽다고.


“이 옷도 30년 넘게 입고 있는 친환경 소재 울이에요.”


릴리안은 입고 있던 남색 후드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죽은 남편을 위해서라도 평화를 위한 운동을 계속할 거라고 했다.


“나는 자동차도 여태껏 몰아본 적이 없어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왔어요, 샤를로텐부르크 역에 세워두고 이곳까진 걸어왔죠, 자전거 타고 집에까지 가려면 40분은 걸려요.”




나의 폰에는 그녀와 찍은 사진이 아직 저장되어 있다. 나는 가끔 그 사진을 찾아본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사진 속 릴리안의 얼굴을 다시 바라본다. 지금 보니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한없이 슬퍼 보인다.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 사진을 보내주지 못했다.  




릴리안과의 일화를 소설로 각색해 그간 여러 버전을 써보았었지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그녀와 나눈 대화 내용들을 거의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가져다 썼기에 죄책감도 들었다. 그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써나간 것이었으므로.


어떤 이야기는 소설화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다. 내겐 릴리안과 보낸 시간이 그렇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녀가 내게 준 <Berliner Zeitung> 신문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잘 가지고 있다. 함께 찍은 사진도 핸드폰에 무사히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사진을 끝내 그녀에게 보내주지 못할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자꾸 그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