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왈로비 Dec 03. 2023

인간의 악함은 어디서 오는가

영화 <라쇼몽>과 인간행동의 본성

인간의 기억에 관한 대표적인 영화는 <라쇼몽> 일 것입니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영화제목이죠.


'라쇼몽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해석해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라쇼몽>에 대해 같은 일을 겪더라도 사람들은 다르게 기억한다는 점을 주요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저도 라쇼몽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만 알았습니다.


라쇼몽은 자신의 아내와 수풀을 거닐던 남편이 아내를 노리는 도적과 마주치고, 이내 남편이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되며, 이 사건에 얽힌 사람들이 모두 각자 다른 진술을 하여, 점차 진실이 미궁 속으로 빠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1) 도적, 2) 남편, 3) 아내 입니다.


1) 도적은 아내를 쟁취하기 위해 남편과 떳떳이 대결하고 승리한 후 남편을 죽였다고 주장합니다.

2) 남편은 자신을 배신하고 도적의 여자가 되기로 한 아내가 원망스러워 스스로 자결했다고 주장합니다.

3) 아내는 도적의 여자가 되기로 착각하고 자신을 경멸스럽게 보는 남편을 참을 수 없어 죽였다고 주장합니다.


셋 모두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멀티버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분명 단 하나의 '진실'이 존재할 텐데, 셋의 증언은 왜 모두 다른 것일까요?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중 <라쇼몽>에서 배경을, <덤불 속>에서 이야기를 가져와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로 제작한 것입니다.


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폐허가 된 라쇼몽 밑에서 승려와 나무꾼이 살인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시작합니다. 승려와 나무꾼 모두 살인사건의 참고인으로 증언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비를 피하기 위하여 라쇼몽 밑으로 들어간 한 행인이 둘로부터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구조입니다.


소설에서는 라쇼몽 밑에서 이야기하는 승려, 나무꾼 및 비를 피하는 행인이 없습니다. 감독이 만들어낸 것이지요. 감독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이 셋의 대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나무꾼은 남편이 죽어있던 것을 발견한 최초의 목격자일 뿐이라고 증언하였지만, 라쇼몽 밑에서 이야기할 때는 본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도적, 남편 및 아내의 진술을 보고 "인간은 다 이기적이야, 모두 변명뿐이지"라고 말하죠.


여기에 감독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사건에서는 하나의 진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으나, 경험하는 사람의 진술이 달라지는 것은 바로 그 사건에 대해 진술함에 있어 자기에게 이익이 되도록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익은 '단순히 금전, 물품 기타의 재산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람의 수요·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족한 일체의 유형·무형의 이익'을 포함하여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행동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결론 내려지지 않는, 그래서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학 난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인간의 본성(本性)은 선(善)하다는 '성선설(性善說)'

  - 인간의 본성(本性)은 악(惡)하다는 '성악설(性惡說)'


그러나, 인간은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고 변명하는데, 그것이 타인에게 이익이 되면 선한 행동으로 평가되고 타인에게 해가 되면 악한 행동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악이 평범할 수도, 보편적일 수도 있는 이유가 이익에 따라 행동한 결과가 이해관계를 통해 선과 악이라는 가치로 평가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국 인간행동의 본성은 선도 악도 아닌 '이기심(利己心, Selfishness)'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고 본다면 1) 도적, 2) 남편, 3) 아내의 주장은

1) 도적은 아내를 강간하고 책임지지 않는 파렴치한으로 보이지 않도록 자신의 허세와 명예를 위해 변명한 것이고,

2) 남편은 아내가 도적에게 당하였지만 이를 복수하기 위해 도적에게 덤비는 것이 두려운 감정인 수치심을 숨기기 위해 아내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유가 있다고 변명한 것이고,

3)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도적을 따라가려고 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변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모두는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건을 재구성하여 거짓으로 증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라쇼몽>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보았다는 나무꾼의 진술조차도 거짓이었습니다. 나무꾼은 귀찮은 일에 휘말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여 법정 진술에서는 사건을 전부 보았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죽어있는 남자를 최초로 목격했다고만 이야기하였습니다. 또한, 아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지니고 있었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아주 값비싼 단도를 본인이 훔쳤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죠.


그 점을 간파한 행인은 나무꾼에게 이야기합니다.

"진짜 이기적인 건 바로 너야!"


행인은 나무꾼 당신 또한 인간이고, 인간이면 당연히 이기적으로 행동하는데, 왜 당신은 선한 척하는 것이냐며, 위선자(僞善者) 행세를 하며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더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라쇼몽뿐만 아니라,

① 재건축조합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투면서 공사를 몇 년씩 지연시키는 것도,

②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펼치지 않는 정치·정당에 반감을 갖는 것도,

③ 부모가 돌아가고 유산을 두고 다투는 상속인들도,

④ 회사로부터 더 받아내고자 하는 노조와 직원들에게 더 주지 않으려는 회사도,

⑤ 자신을 이성에게 더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허세를 떠는 자 등

많은 경우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에는 거짓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지요. 인간행동의 본성인 이기심을 통해 본다면 사람들의 이와 같은 행동들은 이해가 됩니다.




한편,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증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선서를 하여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156조(증인의 선서) 증인에게는 신문 전에 선서하게 하여야 한다. 단, 법률에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형사소송법 제157조(선서의 방식)

① 선서는 선서서(宣誓書)에 따라 하여야 한다.

②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③ 재판장은 증인에게 선서서를 낭독하고 기명날인하거나 서명하게 하여야 한다. 다만, 증인이 선서서를 낭독하지 못하거나 서명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참여한 법원사무관등이 대행한다.

④ 선서는 일어서서 엄숙하게 하여야 한다.


어찌 보면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만 말하는 것은 인간본성인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이기심에 반하는 것이므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증언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 형법상 위증죄로 강력하게 처벌해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형법 제152조(위증, 모해위증) ①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하여 피고인, 피의자 또는 징계혐의자를 모해할 목적으로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최근 제 차의 범퍼가 상대방 차량의 뒷바퀴 휠과 부딪히는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부딪혔는지 조차 애매한 길가에 돌이 튄 것과 같은 가벼운 사고였습니다. 사고로 인해 제 차는 물론이고, 상대방 차에 어떠한 부위가 긁혔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습니다.


보험사에 맡기고 출근을 하는 길에 보험사에서 연락이 오더니 상대방 측에서 병원에서 검사라도 받고 싶다고 대인접수를 해달라고 한다더군요. 이런 사고로 다칠 수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상대방이 양심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대인접수를 해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상대방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차는 휠 전체를 변경하고 관련 안전검사 비용 등으로 약 160만 원이나 청구하였다는 것입니다.


보험사에 연락하여 제대로 확인을 해보았냐고 물어보았으나, 귀찮은 듯이 규정대로 지급했다고 하였습니다. 본 사고로 인해 망가진 곳이 어디인지, 망가진 곳에 대한 수리가 맞는지, 과다하게 수리를 한 것은 아닌지, 사고로 인해 다친 부분이 있는지, 다쳤으면 치료는 과다한 것이 아닌지 등을 따져보아야 할 것만 같았으나, 보험사는 그렇게 면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후 이번에는 보험사의 대인담당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상대방은 사고로 허리와 무릎을 다쳤다고 주장하며, 한의원에 가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합의금으로 통상 요구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300만원을 요구했다며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도저히 충격이 가해져 다칠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사고의 발생으로 인해 다쳤는지 인과관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병원에서 발급하는 의사의 염좌 등 소견만으로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 자동차보험 조를 악용한 사례인 것입니다. 


최근 대법원(2020도1370) 장기간 과다하게 통원치료를 받은 후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이 보험회사에 대한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본 판례에 따라, 상대방은 사고로 인해 다치지 않았음에도 보험사를 속여 치료비 등을 보험사에 청구하였으므로 사기죄로 처벌될 수 있고, 만약 다친 곳이 없는 것을 알았음에도 보험사로부터 치료비를 받을 목적으로 염좌 등 거짓으로 소견을 제시한 의사 역시 사기죄의 방조범으로 처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리비와 치료비 등은 1년에 몇 십만 원의 보험비만을 지급하는 제가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지급의무가 있는 보험사가 책임지는 것도 아닙니다. 보험은 그 보험을 가입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 피해를 나누어서 분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보험가입자 모두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실수를 기화로 보험사의 정치(精緻) 하지 않은 규정을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상대방 차주가 경멸스러웠고, 나아가 인간에 대한 믿음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라쇼몽에서 배운 인간행동의 본성인 '이기심'을 통해 본 사고를 바라보니, 경멸(輕蔑)과 실망(失望)은 이해(理解)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사고 당사자는 병원비 및 위자료와 차량의 부품 교체 이익을, 정비소는 차량수리비의 이익을, 병원은 치료비의 이익을, 보험사는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아도 되는 이익을 얻었습니다. 아주 가벼운 접촉사고를 기화로 모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행동했고, 그것이 인간사회가 돌아가는 원리였던 것 같습니다.


한편,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행동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경멸스럽게 바라보는 저의 모습은 마치 나무꾼과 같은 위선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 상대방의 입장이었다면 괜찮다고 넘어갔을까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라쇼몽의 마지막 장면에는 부모가 버린 아이가 라쇼몽 아래에서 울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에서 행인은 보통의 인간처럼 아이의 부모가 아이와 함께 둔 옷을 훔쳐가서 이득을 얻으려 하지만, 나무꾼은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을 반성하며 버려진 아이를 집에 데리고 가서 기르기로 결심합니다. 나무꾼이 마지막에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깨닫고 반성한 것처럼,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이익으로 환산하여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려 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염치(廉恥)를 가지는 마음가짐이 깃든 인간본성에 반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을 읽지 않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