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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Jan 08. 2024

신생아 특례 대출의 문제점

억대 연봉의 배신

대한민국에서 내 집 장만은 모든 사람들의 꿈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어 이사를 갈 때,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 대해 아이가 느꼈던 불안감과 새로운 전셋집으로 옮겨 적응에 힘들어하며 더 이상 이사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집을 사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11년 4.5억 원에서 2023년 13억 원으로 약 3배 이상 올랐고, 연 소득 대비 주택구매가격 비율(PIP, Price Income Ration)도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을 모아야 살 수 있는 가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에게 집을 사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죠.


그러나 2024년 부동산 정책에서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생아 특례 대출이었습니다.


신생아 특례 대출은 저출산 극복을 위한 주거안정 방안으로 대출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한 무주택 가구에 대하여, 부부합산 연소득 1.3억 원 이하 및 순자산 4.69억 원 이하 등 요건을 갖추면 최저 1.6% 금리로 최대 5억 원까지 주택 구입자금 대출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지원대상 요건을 자세히 살펴보니 "부부합산 연소득 1.3억 원 이하"라는 문구가 보였습니다.


왜 연소득으로 대출을 제한하는 것일까요? 그것에 공정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2024년 기준 연봉별 월급실수령액은 아래와 같습니다.

연봉 1.3억 원 A : 7,748,553원

연봉 1.5억 원 B : 8,645,980원 (+897,427원)


연봉 1.3억 원인 A와 연봉 1.5억 원인 B의 차이는 2천만 원이지만 실제 1.5억 원인 B가 실제로 수령하는 연봉은 세금을 제외해야 하기 때문에 1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연봉 1.5억 원인 B는 신생아 특례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일반 주택담보로 대출을 받고, 연봉 1.3억 원인 A는 신생아 특례 대출을 받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대 5억 원 대출 시]

연봉 1.3억 원 A의 이율 및 월이자(연이자) : 1.6%, 66.6만 원(800만 원)

연봉 1.5억 원 B의 이율 및 월이자(연이자) : 6.0%, 250만 원(3,000만 원)


연봉이 1.5억 원인 B는 한 달에 연봉이 1.3억 원이 A보다 90만 원을 더 받지만 이자로 183만 원을 더 지출해야 하므로, 결국 연봉이 1.5억 원인 B는 연봉이 1.3억 원인 A보다 월급이 93만 원이 적어지게 되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연봉은 안정된 사회의 구조 아래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되어 결정되는 것이지만, 원칙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봉은 나의 능력과 노력에 대한 "보상"의 개념입니다.


더 많은 보상을 위해 사람들은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에서도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지요.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기도 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노력할수록 사회는 더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더 노력한 사람보다 덜 노력한 사람이 더 나은 대우를 받는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현명한 사람이라면 더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력한다 한들 보상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겠지요.

공산주의나 복지국가에서 흔히 부작용으로 일컫는 사례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연봉이 1.5억 원인 B는 주택담보대출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주택담보대출은 부부합산 연소득 1억 원 이하 등 소득제한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연봉 1.5억 원인 B는 집을 사기 위한 대출을 받을 기회조차 없는 것이지요.


연봉이 1.5억 원인데 돈을 모아서 집을 사면 그만인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월급이 많다고 하더라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고정비용이 들어가므로 월급에서 실제 가용한 금액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4인가족 기준 표준생계비(2022년 기준)의 경우 6,693,436원입니다.


그렇다면 B는 월급 8,645,980원에서 표준생계비 6,693,436원을 제외한 1,952,544원이 남게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여행도 가야 하고, 경조사비도 내야 하고, 병원비도 지출해야 하므로 남는 금액은 더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게 아껴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저축을 하면 1년에 1200만 원이 쌓이고, 10년을 모아야 1.2억 원의 돈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집 값은 1.2억보다 더 오르게 될 것이고, B는 영원히 집을 소유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남들보다 노력하여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열심히 일한 결과입니다. B와 그의 아이들은 평생 집을 소유하지 못한 채 2년마다 전셋집을 전전하며 떠도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아니면 이러한 불평등을 피하기 위해 B는 현재의 직장을 포기하고 연봉이 더 낮은 회사로 이직을 하거나, 다니는 회사에 연봉을 내려달라는 요구를 하는 등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러한 소득에 따른 차별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헌법재판소 판례(2004헌마914)을 보면, 신생아 특례 대출을 통해 연봉 1.3억 원인 A와 연봉 1.5억 원인 B를 차별했다고 하여 위헌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재산권에 관계되는 시혜적인 입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재산권의 침해가 생기는 것은 아니고, 또 시혜적 입법이 적용될 경우 얻을 수 있는 재산상 이익의 기대가 성취되지 않았다고 하여도, 그러한 단순한 재산상 이익의 기대는 헌법이 보호하는 재산권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혜적인 법률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과는 달리 입법자에게 보다 광범위한 입법형성의 자유가 인정되므로, 입법자는 그 입법의 목적, 수혜자의 상황, 국가예산 등 제반사항을 고려하여 그에 합당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내용의 입법을 할 권한이 있다 할 것이고, 그렇게 하여 제정된 법률의 내용이 현저하게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이지 아니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시혜적인 입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보호받는 재산권의 영역이 아니고, 시혜적인 법률에 입법자의 광범위한 입법형성의 자유가 인정되어 위헌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과 사회의 작동 원리를 무시하면 안 될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는 서핑하는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은 새우깡의 힘을 빌려 자신이 원하는 행동(서핑)을 단계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우선 개가 물가로 오면 새우깡을 주고, 그다음엔 물에 발을 담그면 준다. 여기까지 숙련되면 개가 서핑보드에 올라와야 새우깡을 주고, 마지막으로 그 위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준다. 결국 개는 서핑을 하게 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새우깡의 절대적 역할이다. 이렇게 특정 반응(서핑에 필요한 단계적 행동들)을 증강시키는 자극(새우깡)을 심리학에서는 '강화물'이라고 부른다. 새우깡이라는 이 강력한 강화물이 없다면 개의 서핑 묘기는 탄생할 수 없다.




강아지에게 새우깡이라는 보상으로 서핑이라는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이끌었듯이, 사회에서도 연봉이라는 보상을 통해 사람들이 대단하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연봉은 강화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시혜적인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보상의 원칙에 위배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를 고려하여 연봉에 따른 누진세율은 연봉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세율을 부과하지만, 연봉이 많은 사람이 연봉이 적은 사람보다 실수령 월급이 더 적어지는 역전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생아 특례 대출이 개입되는 순간 '일하지 않는 사람의 소득이 일하는 사람의 소득보다 많으면 안 된다'는 복지사회의 보상원칙이 붕괴될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한 B의 연봉이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기를 수 있는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저출산 극복을 위한 주거안정 방안이라는 목적에 부합되도록, 신생아 특례 대출에서 만큼은 적어도 대상자격을 '연소득 1.3억 원 이하'가 아니라 보상체계에 입각하여 더욱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으로 다시 정해야 할 것입니다.


노력을 제한하는 사회에 발전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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