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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Apr 05. 2024

봄날을 올곧이 느끼기 위해서는,

목표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삶

완연한 봄날입니다.


올해는 다소 추운 3월을 보냈지만, 4월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한 봄바람이 살랑거렸습니다.


겨울 내 한컷 웅크려서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피고, 

온몸으로 봄날을 올곧이 느껴보고자,

베란다 한편에 먼지를 가득 머금고 존재감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자전거를 꺼냈습니다.


자전거는 먼지를 닦고 기름칠을 하니 그럴듯한 자태를 뽐냈습니다.

그렇게 얼마 전부터 다시 자전거 출근을 시작하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새벽 내내 차가워졌던 공기가 코끝을 살짝 찌르며 정신을 깨우고,

페달을 열심히 구르면 약간의 땀과 함께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기분이 업(mood boost)되고,


자전거를 타거나, 뛰거나, 책을 하는 사람들,

마음의 준비 없이 튀어나오는 너구리, 뱀, 족제비, 두루미 같은 동물친구들,

자전거 길을 머금고 있는 기다랗고 시원한 하천과

이름 모를 다양한 풀들과 꽃들이 어우러진 경이로운 자연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지금과 같이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봄날에는, 겨울 동안 앙상히 꼿꼿하게만 서 있던 커다란 나무들이 솜사탕처럼 하얗고 체리의 속살처럼 분홍빛의 곱디고운 벚꽃을 활짝 피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그러한 경치에 황홀하게 됩니다.




제가 회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회사에서 복지로 제공하는 "아침식사"입니다.

몇 천 원의 적은 금액으로 호텔처럼 근사한 아침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침식사는 뷔페를 고를 수 있는데,

상추, 양배추, 파프리카 등 싱싱한 채소가 어우러진 샐러드와

계란프라이, 에그스크램블, 베이컨 등 날마다 달라지는 요리와

단호박, 머쉬룸 등 매일 바뀌는 고소한 수프와

식빵, 크로와상 등 토스트 해서 먹는 빵과

밍밍하지만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따뜻한 커피

그리고 토핑 가득한 요거트까지 맛볼 수 있습니다.




집에서 회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약 20km 정도이고, 1시간 20분가량 걸립니다.


자출을 하는 날은 아침부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덕분에 회사의 아침밥이 더욱 맛있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아침식사는 아쉽게도 오전 9시까지만 제공을 하여, 늦게 도착하는 날에는 아침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날은 집에서 출발할 때는 9시 이전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신호도 바로 바뀌고 컨디션도 좋아서, 조금만 더 무리해서 달리면 9시 전에 간당간당하게 도착하여 맛있는 아침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9시 전 도착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목표를 정한 순간부터 쉬지 않고 정말 열심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한편, 9시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그토록 봄이 되기를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인 벚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전까지 상쾌하게 불던 봄바람도 몹시 거슬렸고, 자전거를 타며 보았던 풍경들도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은 거리와 풍경은 그저 9시 전 도착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치고 나아가야 할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습니다.

목표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순간 과정의 즐거움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9시까지 도착해야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였습니다.

이제야 다시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벚꽃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늘 인생을 목표지향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시험 성적을 잘 받아 소위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낙엽만 굴러가도 꺄르르 웃음이 나는 10대에만 가질 수 있는 어린 날의 순박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애써 외면하고 소홀히 하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점을 잘 받고,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한 목표에만 몰두하였습니다.

그렇게 열정과 패기와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20대에만 할 수 있었던

학교와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친구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겹겹이 추억을 쌓고,

음대수업 등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교양수업을 들으며 학문의 깊이와 폭을 넓히고,

'유튜버 빠니보틀'처럼 때로는 무모해 보일지도 모를 곳으로 과감히 여행을 떠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등

현재 내 옆에 과정으로 존재하는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지 못하고,

목표를 이루지 못할까 전전긍긍하였습니다.




대학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을 때,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할까요?


목표를 이루고 난 뒤의 기쁨과 안도감을 포함하더라도 "찰나"의 순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찰나의 목표가 마치 우리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우리의 나머지 인생에 행복한 날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목표 지향적인 삶은, 우리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정의 기쁨을 차단해 버립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만이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을요.

소중한 사람과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고, 어디로 갈지, 일정은 어떻게 할지를 이야기하고, 여행 날 아침 목적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재잘대며 이야기하는 순간도, 길을 잃고 헤매서 때로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었던 순간조차도 모두가 즐거웠던 경험을 우리 모두는 한 반쯤 해 보았기 때문이죠.


이처럼 우리 인생도 목표를 달성하는 그 순간만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도 즐거운 여행인 것입니다.


저는 목표를 이루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목표로 향해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벚꽃이 지고 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목표 지향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과, 대학생 때, 사회초년생일 때,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면서 소홀히 대했던 소중한 과정들이 많이 그립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흩날리는 벚꽃처럼,

봄날의 햇살처럼,

그 순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습니다.


부디 저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마시길,

목표지향적인 삶이 아닌,

과정지향적인 삶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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