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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Aug 30. 2024

힘들어도 재밌으면 하는 거야

#1 아이의 말

점심시간에 아이와 전화 통화를 하였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점심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며 물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지금 뭐 해?

나: 점심 먹고 잠깐 산책하고 있어.

아이: 자전거는 안타?


아빠가 자전거를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자전거 그림도 자주 그려주곤 한 아이였습니다.

이틀 연속 자출을 하였더니 몸이 뻐근해서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오지 않았습니다.


나: 아빠는 오늘 힘들어서 자전거 안 타고 왔어

아이: 그래? 나라면 자전거 타고 갔을 텐데. 재미있잖아. 그러면 힘들어도 하는 거야.


이 말을 듣고 순간 멍했습니다.

나이가 들고부터 힘들면 재밌음을 포기하고 편함을 택하는 제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로스쿨 재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설악산 1,708m 정상인 대청봉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겨울의 설악산은 뽀얀 눈으로 뒤덮여 백색의 고운 자태를 뽐냈지만,

그로 인해 아이젠을 차고 스패츠를 해야만 했고, 발걸음은 더욱 무거웠습니다.

처음에는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이 힘들었고,

숨도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힘듦을 참고, 눈 쌓인 등산로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습니다.

걸으며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몽쉘통통 등 행동식도 먹고,

대피소에서 얼큰한 라면과 햇반도 먹고,

물을 끓여 따뜻하고 고소한 커피도 마셨습니다.


그렇게 잠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다시 힘겹게 대청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대청봉 바로 밑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군대 막사와 같은 형태의 그리 편하지 않은 장소였지만,

등산의 고단함으로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 되었을 때

우리는 마지막 목적지인 대청봉을 향하여 올라갔습니다.


폐를 찌르는 듯한 차가운 공기와

전날의 활동으로 몸은 무거웠지만,

설악산 최정상의 대청봉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설악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었지만,

정상을 맞이했을 때의 감격과 전율은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만약 설악산 정상을 케이블카나 헬기를 통해 올라갔다면 몸은 편했겠지만 수많은 걸음의 끝에 힘겹게 정상에 도달했을 때보다 감동도 즐거움 덜했을 것입니다.


힘들지만, 재미있다면 한다는 아이의 말은

편하게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제 안일한 마음에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힘듦과 재밌음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힘듦은 재밌음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것입니다.


재밌는 일은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쉽게 한다면 그것은 재밌는 일이 아닌 순간의 쾌락일 확률이 높습니다.

참고 인내하며 힘듦을 받아들일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즐거움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생을 윤택하고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는

힘듦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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