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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빛꿈 Feb 13. 2024

나는 경계병이다, 그리고...

야간근무

                                                 고빛꿈

천지 흔드는 두드림에

깨어나기를 어제처럼,

황망히 시계를 바라보면

야속하게도 삼십 분을

딱 맞게 건넌다

이부자리는 늪

털어봐야 먼지만 나건만

새벽녘에는 모조리

천근처럼 달라붙는다

떼쓰는 아이 눈물처럼

점점이 자국 난 갑주 입고

칼 든 바람에 맞서는 병정

걸음 걸음 걸어

앞발을 뻗는 게 아니라

뒷발의 재촉에 도망이란다

그렇게 마른 풀처럼 서서

그리운 곳

환상의 노래

침전된 영감을 긁어모으면

어느새 앞발이 앞질러 도착한

내 육신의 초가(草家)



    나는 현재 대한민국 육군에서 경계병으로 복무하고 있는 현역 병사이다. 나의 임무는 맡은 초소를 경계하여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접근하면 출입을 통제하고, 근처에 특이사항이 없는지 감시하여 보고하는 것이다.


    이 임무의 특징이라면 매일 반복되는 삶, 매일 똑같은 풍경, 그리고 매일 이루어지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당연히 국가 안보를 위하여 군사 시설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또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도 맞다. 하지만 모든 근무에서 100% 경계에만 집중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그 답은 '아니오'다. 


    어떤 위협이 언제 쳐들어올지는 모르지만 사건이 발생하는 날보다 발생하지 않는 날이 더 많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자신의 피로에 찌든 육체와 싸우게 된다. '근무에만 집중해야지'하고 눈 앞의 풍경에만 집중해버리면 육체의 피곤에 깜빡 잠이 들 수도 있다. 그것은 경계병으로서 큰 참사이기 때문에, 나는 머릿속에서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으로 나와의 싸움에 임했다. 


    할 일이든, 글감이든, 시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든...... 근무 중에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 아이디어의 끝을 붙잡고 정신을 다잡았다. 이것은 근무와 내 일상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생각을 계속한 덕에 나는 잠을 자지 않고 언제나 근무에 성실히 임할 수 있었고, 근무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구체화시켜 내 작품으로 하나 둘 쌓아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쌓아올린 흔적들은 허무하게만 느껴졌던 군생활에 활력과 의미를 불어넣었다. 내가 하지 못할 것만 같던 글쓰기도 어느새 자주 하게 되었고, 평생 사서 읽지 않을 것 같던 책도 사 보았으며, 꿈도 꾸지 못했던 도전을 해 보기도 했다. 나는 이제부터 경계병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작가로서 얻은 것들을 여기서 나누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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