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감각하기
아침에 일어나 환기를 하고 편백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부터 하루의 사랑이 시작된다.
입에 abc 주스를 물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켠다. 하루의 시작을 어떤 노래로 맞이할지 오늘의 분위기를 좌우할 노래를 신중히 고른 후, 침대에 걸터앉아 어제 생각한 점심 메뉴의 요리 순서를 그려본다.
'새우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먹어볼까, 그러면 우선 대파와 계란, 양파를 꺼내고 새우는 해동 후 맛술을 살짝 뿌려놔야겠다. 파기름을 내고 간장을 살짝 태우면 감칠맛이 더 살아나지. 새우는 오래 익히면 퍽퍽해지니까 빠르게 볶아야지.'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고 그려본 순서대로 착착 요리를 시작한다.
요리하는 순간에는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노래와 지글지글 여러 재료가 요리되는 소리가 섞여 좁은 내 집이 소리로 풍부해진다. 나무 주걱으로 휘휘 재료들을 저어나가고,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포가 퐁퐁 터지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나를 그 순간에 오롯이 머물게 한다.
집안일을 할 때는 스피커의 볼륨을 높인다.
음 흠흠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한다. 그릇과 컵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소리가 공격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고무장갑 너머로 따뜻함이 느껴지고 뽀도독거리는 감각이 아침의 정신을 깨끗이 씻어내 준다. 설거지를 마치고 청소기와 돌돌이까지 신나게 마무리하고선 뿌듯하게 집안을 둘러본다. 작은 집이라 고개만 돌려도 전체가 보이는데, 괜히 서성거리며 둘러본다. 그렇게 높아진 기분으로 집 밖을 나서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높아진 마음이 아까워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본다.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동네의 풍경 속에도 늘 어제와 다른 새로움이 있다. 찾으려 하면 보이는 새로운 예쁨들. 같은 풍경에 빛이 드는 모습도 늘 다르게 예쁘다. 나무의 그림자도 다르게 예쁘고, 가끔 달라져있는 자전거의 위치도 새롭게 예쁘다.
그렇게 여행하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려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예쁨 들을 발견하면 왠지 흐뭇함이 올라온다. 눈에 담은 풍경이 꼭 나로 인해 생기가 도는 듯하고, 그로 인해 나도 더욱 살아있는 듯한 느낌. 참 소중한 기분이다.
좋아하는 동네의 노후화된 담벼락이 사라지고 매끈한 펜스로 바뀌었을 때 참 슬펐던 기억이 있다. 등교하는 길에 매일 보았던 담벼락이었는데, 그 아래로 낡고 투박했지만 귀여운 민들레가 많이 자라던 담벼락이었는데, 왠지 모를 헛헛함과 슬픔이 올라왔었다.
많은 사람들이 매끈하게 칠해진 세련된 펜스를 좋아했지만, 나는 그 반짝이는 펜스가 반갑지 않았다.
이제는 내 기억 한 켠에만 존재하는 낡은 담벼락과 민들레 같은 풍경. 일상 속에서 어느 부분들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게 애틋해졌다.
사라지면 슬픈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하루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그 소중함에서 작은 사랑이 피어오르고, 그렇게 피어난 사랑들이 모여 내 하루를 이루고, 내 일 년을, 내 삶을 이루고 있음을 느낀다.
삶에 가득 찬 사랑들.
산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건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