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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Oct 02. 2023

- 빠삐-


시골집은 으레 그렇듯이 집집마다 개를 키웠다. 도사견을 키우는 집도 꽤 있었고, 발바리든 잡종이든 집마다 개는 있었다. 대문이나 집 어귀에 다가가면 풍기는 지금도 생생한 개똥 냄새와 개털 비린내. 큰 다라이를 엎어놓고 입구를 뚫어 만든 거무튀튀한 개집. 시골의 낡고 더러운 환경은 진돗개나 삽사리, 풍산개와 같은 족보 있는 개라도 별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집도 개를 키웠다. 어릴 때 기억하는 개는 4대에 걸쳐 키워온 진돗개였다. 집을 잘 지켰고 충성스러웠던 진돗개는 굉장히 사랑을 받았다. 충성이 과했던 3세대는 가족들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걸 뒤쫓아 오다 차에 치여 죽었다고 들었다. 진돗개가 아니더라도 개는 계속해서 키웠지만 번견이나 애완용이 아닌 식용이나 번식견에 가까웠다. 많이 키워서 개장수한테 팔았다. 정주고 귀여워했던 개를 팔 때마다 엉엉 울며 엄마를 원망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구나 싶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팔려가는 개를 보면서 나는 더 이상 개에게는 정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우리 집 진돗개들은 모두 ‘빠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1세대를 ‘빠삐완’이라고 부르기 시작해 일대의 자손은 아니지만 마지막 진돗개인 ‘빠삐포’까지 키웠다. 아버지는 개를 다 빠삐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때 한창 방영했던 탈출의 대명사 ‘빠삐용’에서 따온 줄 알았다. 개이름의 어원을 이제와 생각해 보니, 일제강점기 때 태어난 아버지가 강아지를 일본어로 부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를 뜻하는 영어 Puppy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딱 ‘빠삐 パピー’였으니까. 6.25 전쟁 때 소년병이었던 아버지는 개머리판으로 맞아 치아 절반을 잃었고, 그 탓에 발음이 항상 샜지만 빠삐라는 이름은 또렷하게 들리게 불렀다. 까칠하고 항상 투덜대는 입버릇을 가졌던 아버지가 개 이름을 강아지라고 지었다니 나름 개를 좋아했던 건가 생각했지만, 딱히 아버지가 개를 예뻐한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냥 일제강점기를 보낸 사람들이 다 개를 ‘빠삐’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아버지가 개를 귀여워했던 모습보다는 차에 치여 죽었던 ‘빠삐쓰리’를 가지고 동네 사람 불러다 먹였던 기억이 더 강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의 역할이라고 해야 하나? 동네에서 개 잡는 모습은 수시로 봤어도, 아버지가 개를 잡는 기억은 없는 걸 보면 사고로 죽은 개만 먹었던 거 같기도 하고. 나름 어른들 입장에선 합리적인 처리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개를 먹는 게 싫었다. 하기사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우리 집 가족 중 개를 먹는 건 아버지 말고는 없었으니까. 무슨 이유에서인지-아마 갯값이 폭락해서 일지도- 내가 중학교 즈음부터는 우리 집은 개를 키우는 걸 멈췄다. 쥐 때문에 고양이는 거둬 먹였지만, 개는 없었다.


개똥냄새도 개비린내도, 입구를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낡은 다라이도 사라졌다.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개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 갔다. 그렇게 홀가분해졌다.


친정식구들끼리 명절에 모이면 ‘빠삐’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나오곤 한다. 이 인상 깊은 이름 때문에 식구들은 모두 빠삐들을 꽤 정확하게 기억했다. 더 이후에 키운 잡종견들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빠삐의 어원에 대해서 좀 더 일찍 물어봤어야 하는 걸, 이미 아버지가 소천하셔서 때가 늦었다. 그래서 식구들도 다들 나처럼 그렇지 않을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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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과 궁상사이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일상툰입니다.

매주 월(정기) 목(부정기) 업로드하여 주 1-2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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