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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상처받는 상황이 다 상대방 잘못은 아니다

by 에이프럴

젊은 선생님이 다음 곡 설정을 위해 터벅터벅 앰프스피커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뭐야! 흥이 다 깨져버렸네! "

나는 입술을 오므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인생최대의 취미라 여길 만큼 지금 배우는 라인댄스(여러 명의 사람이 줄을 지어서 동일한 동작을 하는 댄스)가 너무 흥미로웠다.


엉덩이를 흔드는 것조차 쑥스러워 통나무처럼 굳어 있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비교적 유연해진 나 자신이 대견하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춤선에 적잖이 성취감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언젠가는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춤추리라!


그런데 이 선생님은 한곡이 끝나면 다시 다른 곡을 설정하는데, 그 텀이 너무 길다.

나는 흐름이 끊기는 것을 매 수업시간마다 인식하고 답답함을 느꼈지만 아무 말 못 하고 속으로만 삭이다가 오늘은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선생님 노래가 연속으로 나오게 해 주세요"

간주에 발을 맞춰보던 선생이 몸을 돌려 내쪽을 쳐다보며

"뭐라고요?" 하면서

입을 벌려 기가 찬 표정을 짓는다.


이어서

"나도 좀 쉬어야지!" 하며 씩 웃는다.

순간 나는 모멸감에 어쩔 줄 몰라했다.


당혹스러운 것도 잠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작년 무더위가 한창일 때 이 댄스학원 라인댄스 초급반에 등록을 하고 이 선생님을 처음 만났었다.


초급반 선생님은 나보다 10살이나 어리고 키가 컸지만 앳되고 귀여운 얼굴을 가져서 다가가기 편한 인상을 풍겼다.


낯을 가리는 나이긴 하지만, 선생님과 약속을 잡아 두어 번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카톡으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던 터라 나름 친밀하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돌발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업시간 내내 불쾌감을 떨치지 못한 채 나는 앞사람 뒤통수만 바라보며 어서 수업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중간에 뛰쳐나갈까?

아니면 뭐라고 항의를 해볼까?

아니, 아니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감정은 화가 나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몸은 계속 음악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수업시간이 끝났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선생님의 말과 표정이 떠올라 밤새 뒤척이고 괴로웠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내가 한 제안을 묵살한 거

비웃음...

무안함...


이제 어떡하지?

수업시간을 변경해야 하나?

학원을 그만두어야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던 그때, 갑자기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갑고 매서운 눈, 고집스럽게 앙 다문 입술,

내가 어떤 부탁을 했을 때 단칼에 거절하던 엄마의 모습,

수없이 느꼈던 그 좌절과 절망감...


오늘 있었던 일과 어릴 때 느꼈던 그 감정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


선생님의 묵살이 그 감정을 다시 불러온 걸까?


아.... 그랬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무의식 깊숙이 억압해 두었던 그 감정이 살아난 것이었다.


순간 내 눈에는 눈물이 솟구쳤다.

울고 나니 상황이 분명해지고 선명해졌다.


사실만을 보자!

선생님은 어떤 이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교회활동, 강연, 아파서 병원 다니는 일 등등 너무 바빠서 제대로 못 쉼)인지는 모르지만 나도 좀 쉬어야지라고 말했고 웃었다.


그다음은 다 내 생각이다.

무시했다는 것,

비웃음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다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일 뿐이었다.


화라는 것도 그 밑바닥에는 다른 감정이 있었다.

외로움과 슬픔......

나름 친밀한 사람에게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외로웠고 사랑받지 않는 것 같아 슬펐다.


그 외로움과 슬픔이 진짜 나의 감정인데 표면적으로는 분노하게 된 것이었다.


다음 수업시간이 다가왔다.

알아차렸다고 모든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껄끄럽고 눈을 마주치기가 불편해서 엉뚱한 곳을 쳐다보게 되었다.


어젯밤 알아차린 것들을 선생님과 대화로 풀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다시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다.

내가 불편해하니 상대방도 나를 거리 두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2주쯤 흘렀을 때 옆반에서 수업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이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가?

모든 이유를 갖다 붙이며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그래, 저 선생님이 훨씬 동작도 크고 잘 가르치지!'

'외모도 잘 꾸미고 옷도 예쁘게 입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이 즐겁지' 등...


"선생님! 이 반은 동호회 회원만 들어갈 수 있나요?"

"아니요, 아무나 들어오실 수 있어요!"

그렇게 물어보고 집에 돌아온 날, 선생님에게서 한통의 카톡이 왔다.


요즘 자신이 좀 불편하지 않냐는, 그날은 아무 의도 없이 한 말과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는, 그렇지만 앞으로 언행에 좀 더 신중하겠다는 사과의 글이었다.


옆반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그래,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훨씬 따뜻하고 용기 있고 너그러운 사람이지'

선생님에 대한 노여움과 오해가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무례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 안에 있었던 상처가 건드려져서 일을 크게 확대 한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거절의 아픔이 너무나 큰 사람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와 선생님과의 관계는 좀 더 서로를 이해하고 단단해졌다. 그리고 상처받는 상황이 다 상대방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며 늘 작고 큰 상처를 받게 된다.

말 그대로 상대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는 것이다.


상대는 의도도 하지 않고 하는 말과 행동들이 우리의 원상처를 자극해 상처받는 상황이 많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면 어떨까?


상처받았던 그 순간은 지나가고 없지만 그 감정은 여전히 내 무의식에 남아있고, 여전히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 내가 있다. 그 어린 나를 알아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다면 덜 상처받고 세상살이가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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