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순이(가명) 이제 좀 따라 하나?"
지금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이 여자는 이 댄스학원의 고참, 즉 나보다 3년 정도 더 다닌 사람이다.
나이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많아봐야 나보다 고작 예니곱살 정도 많아 보인다.
그런데 이제 막 알기 시작한 나에게 반말로 대화를 시도하는 이 무례함이란......
라인댄스가 보기에는 쉬워 보이고 운동량이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지만 2시간 동안 춤추면 1만보보다 더 걷는 운동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정수기 앞은 너도나도 물을 마시기 위한 줄의 행렬이 길다.
평소에는 집에서 땀을 닦을 손수건과 물병을 준비하는데 그날은 깜박하고 그냥 온 날이었다.
내 순서가 되어 종이컵을 정수기 호스에 가져다 댄 순간 이 무례한 여자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아.... 네... 좀 어렵네요...."
며칠 후 수업시간이 시작되기 전 탈의실에서 댄스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이었는데 또 이 여자가 들어왔다.
내가 "안녕하세요?"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는데 "응, 안녕!"하고 내 옆을 쌩 지나갔다.
다음 수업 때도, 그 다름 수업 때도 절대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받는 것도 아니고 목을 빳빳하게 쳐든 채 인사를 받았다.
우리 반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물론 없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반말은 기본이고 나한테 하듯이 하대했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열등감이 많아서 교만한 사람
자기가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 못하는 사람
자기의 행동이나 말을 돌아보거나 성찰이 없는 사람
대접해 주면 정말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우쭐대는 어리석고도 미숙한 사람......
어느 날, 나는 순간적으로 이 사람을 좀 골려주고 싶어졌다.
"아유 선배님!
선배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추세요?
모든 곡의 안무를 틀리지도 않고 하시던데 헷갈리지도 않으세요?
머리가 좋으신가 봐요"
"음, 내가 좀 그렇지!
학창 시절에도 암기 같은 건 잘했어!"
오랜만에 듣는 칭찬인지 귀에 입이 걸릴 것처럼 이 여자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혜순이는 다닌 지가 언젠데 아직도 빌빌거리나? 이게 뭐가 어렵다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무반응으로 대응하다가 이것도 아세요? 저것도 아세요? 하며 물으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 알지 하길래 나는 이때다 싶어,
"그럼 혹시 겸손도 아실까요?"
하고 말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자기를 먹이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버럭 화를 내야 마땅함인데 이 어리석고도 무례한 여자는
"겸손도 알지"
라고 대답했다.
세상에는 네 가지 영역이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영역, 네가 아는 영역, 우리 둘 다 아는 영역, 우리 둘 다 모르는 영역
내가 지금보다 더 미숙했을 때 하나를 알게 되면 세상이치를 다 알게 된 것처럼 교만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안다. 열개를 알게 되면 내가 모르는 열개가 있다는 것을......
백개를 아는 지금 세상은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라고......
그 교만조차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것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아끼게 되고 행동도 조심하게 된다.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저절로 되는 건 아니다.
어른이 어른답지도 않은데 관습처럼 어른으로 대접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이 무례하게 나이만 든 여자를 마음속에서 제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