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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겸손을 모르는 사람

by 에이프럴

"혜순이(가명) 이제 좀 따라 하나?"

지금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이 여자는 이 댄스학원의 고참, 즉 나보다 3년 정도 더 다닌 사람이다.

나이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많아봐야 나보다 고작 예니곱살 정도 많아 보인다.

그런데 이제 막 알기 시작한 나에게 반말로 대화를 시도하는 이 무례함이란......


라인댄스가 보기에는 쉬워 보이고 운동량이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지만 2시간 동안 춤추면 1만보보다 걷는 운동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정수기 앞은 너도나도 물을 마시기 위한 줄의 행렬이 길다.

평소에는 집에서 땀을 닦을 손수건과 물병을 준비하는데 그날은 깜박하고 그냥 온 날이었다.

내 순서가 되어 종이컵을 정수기 호스에 가져다 댄 순간 이 무례한 여자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아.... 네... 좀 어렵네요...."


며칠 후 수업시간이 시작되기 전 탈의실에서 댄스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이었는데 또 이 여자가 들어왔다.

내가 "안녕하세요?"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는데 "응, 안녕!"하고 내 옆을 쌩 지나갔다.

다음 수업 때도, 그 다름 수업 때도 절대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받는 것도 아니고 목을 빳빳하게 쳐든 채 인사를 받았다.

우리 반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물론 없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반말은 기본이고 나한테 하듯이 하대했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열등감이 많아서 교만한 사람

자기가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 못하는 사람

자기의 행동이나 말을 돌아보거나 성찰이 없는 사람

대접해 주면 정말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우쭐대는 어리석고도 미숙한 사람......


어느 날, 나는 순간적으로 이 사람을 좀 골려주고 싶어졌다.

"아유 선배님!

선배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추세요?

모든 곡의 안무를 틀리지도 않고 하시던데 헷갈리지도 않으세요?

머리가 좋으신가 봐요"

"음, 내가 좀 그렇지!

학창 시절에도 암기 같은 건 잘했어!"

오랜만에 듣는 칭찬인지 귀에 입이 걸릴 것처럼 이 여자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혜순이는 다닌 지가 언젠데 아직도 빌빌거리나? 이게 뭐가 어렵다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무반응으로 대응하다가 이것도 아세요? 저것도 아세요? 하며 물으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 알지 하길래 나는 이때다 싶어,

"그럼 혹시 겸손도 아실까요?"

하고 말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자기를 먹이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버럭 화를 내야 마땅함인데 이 어리석고도 무례한 여자는

"겸손도 알지"

라고 대답했다.


세상에는 네 가지 영역이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영역, 네가 아는 영역, 우리 둘 다 아는 영역, 우리 둘 다 모르는 영역

내가 지금보다 더 미숙했을 때 하나를 알게 되면 세상이치를 다 알게 된 것처럼 교만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안다. 열개를 알게 되면 내가 모르는 열개가 있다는 것을......

백개를 아는 지금 세상은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라고......

그 교만조차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것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아끼게 되고 행동도 조심하게 된다.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저절로 되는 건 아니다.

어른이 어른답지도 않은데 관습처럼 어른으로 대접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이 무례하게 나이만 든 여자를 마음속에서 제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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