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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몸의 기억

by 에이프럴

168cm 정도 되는 키, 길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 개미처럼 날씬한 허리,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게 적당한 근육이 붙은 몸,

발레나 피겨스케이팅을 했더라면 정말 예쁜 몸매였다.


그녀가 처음에는 기혼인 줄 알았는데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이야기하다가 미혼이고 부모님 집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항상 수업시간보다 10분쯤 늦게 허둥지둥 들어와 제일 뒷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따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3년 늦은 나보다도 헤매는 것처럼 보인다.


라인댄스 특성상 매 수업 때마다 같은 걸 반복하기에 머리가 나빠도 웬만하면 몸이 기억해서 따라가게 되어있다.


뒤로 돌거나 옆으로 돌 때 그녀를 보게 되는데 가늘고 긴 다리의 날씬한 몸이지만 다리나 팔을 경직한 채로 벌리고 있어 왠지 어그적 어그적 로봇이 흔드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눈은 놀란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고, 입은 늘 조금 벌리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부터 이렇게 몸이 굳어진 걸까?



라인댄스만 몇 달 하다가 벨리댄스도 새로 배우게 되었다.

벨리댄스를 하다 보면 쉬미(shimmy, 흔들다. 떨다)라는 동작이 있다.

니 쉬미(knee shimmy), 숄더 쉬미(shoulder shimmy), 트위스트 쉬미(twist shimmy) 등이 있는데,

그 중 숄더쉬미(shoulder shimmy)는 두 손을 어깨 양쪽으로 뻗어 올린 채 어깨를 앞뒤로 찍듯이 교차시키는 것으로


처음에는 어깨를 천천히 교차시키다가 서서히 빠르게 교차시키는 동작인데 처음 이걸 할 때 좀 충격을 받았다.

분명 내 몸에 달려있는 것인데 마음처럼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하체는 또 어떤가?

니 쉬미(knee shimmy)라는 것은 무릎을 구부리고 펴는 것을 빠르게 해서

떨듯이 다리를 동시에 움직이거나 번갈아가면서 하는 동작인데,나는 하체의 근력이 너무나 약해서 무릎을 빠르게 흔들 수가 없었다.


정형외과에서 도수치료를 받을 때 내 어깨가 라운드숄더(rounded shoulder posture, 어깨와 견갑골이 앞으로 말리고 등이 굽어지는 현상)란 걸 들었을 때도 놀라웠는데, 내 상체와 하체가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 순간은 말 그대로 당혹함 그 자체였다.

내 몸은 언제부터 이렇게 균형이 깨지고 굳어진 걸까?


어린 시절 서로를 비난하며 부모님이 큰 소리로 싸울 때 나는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불화하고 초라한 부모가 부끄러웠고 가난이 수치스러웠다.

나는 그 모든 감정을 해결하지 못한 채 억압해 두고 내 몸을 깊이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그저 세상으로부터 도태되지 않겠다는 일념하나로 살았다.


나이가 들 수록 몸을 더 움츠렸을 테고 불안과 긴장, 수치스러움은 내 몸 구석구석-어쩌면 세포 하나하나에도-녹아들었을지도 모른다.

어깨는 점점 말려들듯이 둥글게 되고 사지는 몸통에 딱 붙은 것처럼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몸의 취약한 어떤 부분은 균형이 깨졌을 것이다.


댄스를 배우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내 몸이 마음 먹은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만큼 딱딱하게 굳어있다는 것을,

몸의 균형이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을,

몸이 마음보다 더 정직해서 이렇게 드러난다는 것을 말이다.

지난 내 삶의 흔적을 몸은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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