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학원을 다니면서 제일 큰 즐거움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코스프레라고 대답할 것이다.
강렬한 빨간색 구두,
이제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짧은 치마,
일상에서는 시도하기 무리인 라인석의 화려한 벨트와 액세서리,
내 머리크기보다 더 큰 왕리본 머리핀 등
나를 맘껏 꾸밀 수 있는 댄스학원에서의 시간은 나를 다시 젊은 시절로 데려가준다.
마치 예전에 즐겨 들었던 추억의 노래가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처럼......
몇 년 전부터 유행했던 발레코어룩(발레 Ballet와 평범함을 추구하는 패션이라는 뜻의 놈코어 Normcore의 합성어로 발레복을 일상복에 접목시킨 패션스타일을 의미한다.
발레 할 때 신는 신발인 토슈즈와 무용수가 착용하는 옷인 레오타드와 튀튀 tutu를 본떠 만든 옷에 무릎가지 올라오는 양말인 니 삭스나 흰색 타이즈를 코디하는 게 특징이다)과
프레피룩(미국 명문 사립학교 학생들이 입을 것 같은 단정하고 깔끔한 스타일링으로 고급스럽지만 과하지 않은 우아함을 지향하는 스쿨룩 느낌의 코디 중 하나, 부유한 사립학교의 학생들을 뜻하는 프렙에서 유래된 패션 룩 종류 임)
은 수술이 치렁치렁 달린 댄스복대신 가끔 기분전환용으로 입곤 하는데 내가 마치 우아한 발레리나가 되고 교복 입은 여학생이 된 것처럼 자아도취에 빠지곤 한다.
이것 말고도 모든 여인들의 로망인 하얀 테니스치마, 데님 스커트, 나풀나풀 프릴이 달린 얇고 가벼운 치마,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자유롭고 편한 보헤미안 스타일의 옷 등 주객이 전도될 때도 많다.
내가 좀 과한 걸까 싶었는데 웬걸 댄스학원은 말 그대로 패션쇼장이었다.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원들은 수업 횟수가 누적될수록 화려함과 세련미도 더해지고, 어떤 사람(나 포함)은 어릴 때 못 신어본 건지 레이스가 달린 양말을 신고, 또 어떤 이는 등이 훤히 드러나는, 전문 댄서들이나 입을법한 의상을 입고 와서 선생님과 다른 회원들을 놀라게 했다.
국민학교(1980년대) 3학년 봄소풍 때 일이다.
나는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싸준 김밥과 과자 몇봉을 책가방에 넣고 어젯밤에 미리 챙겨둔 빨간 줄무늬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것은 나처럼 평상복이 아닌 하얀 블라우스와 깜찍한 멜빵 스커트 차림의,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한 소녀들 모습이었다.
소녀들의 머리카락은 윤기가 흐르고 블라우스와 스커트에 붙은 프릴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드라마틱하게 움직였다.
내 나름대로는,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예쁘고 깨끗한 옷(소풍 전날까지는)을 고른 거였는데 다른 여학생들이 입은 옷을 보는 순간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패션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우리 집 형편상 의복에 많은 지출을 할 수 없었기에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는 종이인형으로 이리저리 코디하며 놀거나, 가격이 저렴한 헤어핀과 머리 방울로 만족해야 했다.
중,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거리 사람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패션잡지를 통해 그 해 패션트렌드의 정보를 얻었다.
20살 대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집은 가난했고 나에게 옷은 사치품이었다.
봄날 캠퍼스에는 화사한 옷차림의 여학생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다닐 때
나는 청바지 몇 개와 티셔츠 몇 개로 4년을 견뎠다.
졸업을 하고 바로 결혼을 하면서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며 더더욱 나를 가꿀 시간과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물론 덕분에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지만 한편으로 나에게는 잃어버린 20년이다.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나!
잃어버린 상실의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어린 시절의 결핍은 완전하게 충족되지 않겠지만
오늘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댄스학원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