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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의 통제욕구

by 에이프럴

"가라! 가! 가시나야! 다시는 오지 마라!"

엄마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정리의 여왕인 언니가 또 엄마집을 다 뒤집어 정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기 기준대로 정리한 것이다.

엄마가 나중에 먹으려고 넣어둔 냉장고 속 음식, 냉동실 식재료, 옷, 물건, 가구, 잡동사니 등등 엄마의 살림살이들을 물어보지도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다 버려버렸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버린 것들 중에는 쓸모 있어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1년에 한두 번씩 엄마와 언니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고 서로 반목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곤 했다.


우리 댄스학원은 소프트웨어는 좋은데 하드가 별로이다.


30년이 더 되어 보이는 칙칙하고 유행이 한참 뒤떨어진 인테리어,

공간분할이 애매해서 길기만 한 탈의실은 한 사람이 서 있기도 좁은 편이다.


탈의실 라커룸은 경첩이 다 떨어져 너덜거리고 오래된 냉난방기는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거기다 입구옆에는 실력 좋은 원장님의 수십 개가 넘는 수상트로피가 오픈 책장에 먼지 쌓인 채 진열되어 있고 식사를 학원에서 직접 해결하는지 각종 식기와 식재료들, 택배박스, 재활용들이 어지럽게 얽혀있었다.


수건은 얼마나 오래 썼는지 흰 수건이 회색같이 보이고 빨아도 쉰 냄새가 났다.


나는 학원에 갈 때마다 이런 것들이 눈에 거슬렸다.

경첩을 고쳐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고 입구의 어지러운 곳들을 가림막 천을 구입해 달아주고 싶었다.


요즘에 수건이 얼마나 예쁘게 나오는데, 헌 수건을 싹 다 버리고 새 수건을 20장 정도 사서 가지런히 정리해주고 싶었다.


예전에는 나의 이런 생각들이 통제욕구라는 걸 알지 못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내가 배려하고 챙겨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해서 실천에 옮겼다.


언니처럼 마음대로 버리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대신 구입해 주고 그 사람이 잘 쓰든 말든 흡족해하곤 했다.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나의 통제욕구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 모양대로 하고 싶어 하는 욕구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목아래 내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 하는 심리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은 그만큼 통제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나는 이제 우리 엄마가 남겨준(?) 유산,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불편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학원에도 나름 사정이 있고 원장님의 라이프 스타일을 인정하려 한다.


오늘도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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