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부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대안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주 업무는 10대들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학생들 연구논문 지도를 하는 일. 지금까지 해 본 어떠한 일과도 다른 이 일이, 난 인생이 내게 준 선물 같이 느껴진다.
학교로 가는 길은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문을 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니까.
아이들.
내가 맡은 나이가 다들 조금씩 다른 12명의 10대 학생들은 내 이름이 붙은 커다란 연구실 각자의 자리에서 공부하며 지낸다. 여태 대학생들만 가르쳐 본 나는 10대를 보고 있으면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분명 우리 다 같은 인간 사람. 눈 코 입 있고 비슷한 듯 생겼는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생명체.
책상에 비스듬히 엎드려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햇살을 쬐며 녹아내리는 고양이 같아 보일 때도 있다.
말하는 걸 들을 때면 더 신비롭다. 어른처럼 말하다가도 그 나이대 만의 생뚱맞음이 매력적이다. 이들의 순수함이 빛나는 순간들도 마주한다. 그럴 때면 난, 뭐라 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태어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하다. Blissful 이란 단어는 이런 순간을 위한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든다.
밤 11시 자율학습 당직을 마치며 학생들에게
“오늘도 고생했어. 어서 들어가 쉬자. “
별생각 없이 한 말에 갑자기 감동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도 있고, 갑자기 다가와 손하트를 만들며 “선생님, 선생님. 사랑해요.” 방긋 웃는 학생도 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자기 마음이 정한 누군가에게 감사편지 쓰는 날. 무심하게, “오늘은 선생님한테 썼어요.” 하면서 대충 접은 편지를 건네주는 학생도 있다. 엄청난 걸 기대할 필요는 없다. 감동적인 내용은 딱히 없으니까. 이번엔 다섯 줄 정도다.
”… 선생님. 우리 연구실 애들이 문을 너무 잘 안 닫아요. 그래도 자꾸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해요…. “ 뭐 이런 내용이다. 근데 그래서-
너무도 아무 생각이 없어서. 너무도 꾸밈이 없어서. 마음에서, 마음이 말하는 그대로 적어 주어서 나는 감동받는다. 내게 써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실은 감동이다.
읽고 있던 논문을 들고 와 모르겠다며 설명해 달랬을 때 조금 쉽게 풀어주면 갑자기 말을 끊고 “아. 별 거 아니네요~“ 귀여운 자신감으로 신나게 웃으며 제 자리로 돌아가는 학생. 토마토, 옥수수, 수박을 키울 거라고 씨앗을 사 오는 학생. 스마트팜 코딩을 하는 학생 등등.
여긴 각각이 다른 꽃나무와 들풀이 가득한 정원.
우리는 각자의 세계로 만나, 각자의 세계로 반짝인다.
(주말. 집에 왔는데도 주중에 친구랑 사이가 안 좋아져서 이틀 내내 울적해하던 학생 생각이 나서 끄적여보았다.
학교란, 참 놀라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