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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야 Mar 27. 2023

합석하실래요?

포르투에서 낯선 이와 함께 한 식당

#1 


하늘에서 본 포르투

 비가 오는 마드리드에서 저가항공을 타고 포르투에 도착했다. 저가항공에 대한 좋지 않은 후기들이 많아 고민했는데, 연착과 짐 분실 없이 수월하게 이동했다. 한참을 걱정했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다행이다. 아무래도 걱정인형 하나 들고 다녀야겠다.


 내륙에만 있다가 비행기에서 본 드넓은 바다를 보니 속이 뻥 뚫렸다. 포르투는 항구라는 뜻의 'o Porto', 영어로 하면 'the Port'라는 뜻이란다. 아주 옛날부터 저 바다에서 다른 나라와 교역을 했겠지. 이내 기장의 곧 도착한다는 안내와 함께 포르투에 더 가까워졌다.


 포르투는 파란색과 잘 어울리는 도시라 생각한다. 바다 때문일까. 포르투갈에서 국경 너머 스페인까지 흐르는 도우루 강 때문일까. 아니면 포르투 상 벤투역에서 본 푸른색 아줄레주(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 때문일까. 파란 하늘에 파란 요소들이 속속 들어있는 이 도시의 첫 느낌이 정말 좋았다.




 포르투 상벤투역에서 숙소를 가는 길, 언덕과 계단이 얼마나 많은지 캐리어를 끌고 가다가 던질 뻔했다. 거리가 돌바닥이어서 끌 때마다 '두두두두'하며 온몸에 진동이 느껴진다. 만약 포르투갈만 여행을 간다면, 무조건 배낭을 챙겼을 것이다. 


 힘겹게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마드리드와 비슷한 가격대로 숙소를 잡았지만, 이곳의 퀄리티는 훨씬 좋았다. 포르투갈의 물가가 스페인보다 싸서 그런가 보다. 넓고 깔끔하고, 시설도 좋았다. 주방과 냉장고, 큰 침대, 깔끔한 화장실까지. 친절한 직원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우리에게 숙소 사용에 대한 설명과 주의사항을 이야기해 주셨다. 마드리드 숙소에서 고생을 진탕 한 우리는 숙소에서부터 이미 신나 있었기에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안 들었다_나중에 이것 때문에 곤란해지긴 했지만. 


 오후 5시, 어딜 돌아다니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식사를 위한 맛집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편한 숙소에서 쉬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많이 풀렸다. 




#2


식당 앞 골목길

 포르투에서 가기로 한 맛집은 브레이크 타임 이후 오후 7시에 다시 문을 열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예약을 하지 못해서 미리 가있기로 했다.


 온 동네가 돌바닥이라니, 캐리어를 끌고 왔으면 중간에 바퀴가 고장 났겠다. 저녁이라 해가 이미 져있는 어두컴컴한 동네 골목길을 걸었다. 좁고 구불거리는 뒷골목으로 가니 조금은 무서웠다. 겁 때문에, 아니 겁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글 지도의 지름길이 편하기도 하지만, 가는 길이 모두 아름답진 않았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도착한 식당은 아직 준비 중인듯했다. 먼발치엔 일본인으로 보이는 여성분 2명이 계셨다. 식당 문 앞에 서서 미리 메뉴를 고민하는 중에, 갑자기 식당 문이 열리고 웨이터 한 분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예약하셨나요?"

 "아니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리곤 다시 문을 닫는다. 언제 들어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메뉴를 보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 사이 우리 바로 뒤에 한 명이 줄을 섰다. 혼자 여행 중이신 듯한 여성분이셨다.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걸 보고 한국인이란 걸 알았나 보다. 한국어로 줄 서고 있는 거냐고, 언제쯤 들어갈 수 있는지 아냐고 물어보셨다. 길가에서 만난 한국인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지만,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부턴 정말 반가웠다. 어떤 메뉴를 먹을 거냐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두 명이라 메뉴 2개를 시키지만, 그분은 혼자서 왔기 때문에 2개를 시켜도 다 남겨야 하고, 하나만 시키자니 아쉽다고 하셨다.


 "합석하실래요?"

 "오, 좋아요! 그럼 더 다양하게 먹을 수 있겠네요!"


 낯가림이 심한 나는 낯선 이와 함께 합석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친구도 마찬가지. 하지만 용기를 냈다. 세명이면 음식을 더 많이 시킬 수 있으니까. 대화 중에 문이 다시 열렸다. 우리보다도 먼저 온 일본인 2명이 있었지만, 직원 눈에는 가장 먼저 띈 게 우리여서 그런지, 우리를 제일 먼저 안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세명이요!"


 식당 내부는 꽤 좁았다. 테이블이 몇 개 없어서 오픈하자마자 자리가 금방 다 찼다. 안내받은 테이블에 앉아 짐을 풀고 음식을 주문했다. 30분 전 처음 본 낯선 사람도 그 순간부터는 친구가 되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남미를 오래 여행하고 잠시 쉬려고 포르투갈에 오셨다고 했다. 나는 유럽에서 잠깐 있는 것도 겁내고 걱정했는데, 누군가에겐 안전하고 편한 여행지였다니. 역시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 남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어쩌면 탐험과 모험을 하는 사람을 보니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를 하면 끝도 한도 없지. 스스로 만족하기만 하면 되는 걸.


 한참 수다를 떠는 중에 음식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포르투를 닮은 접시에 담겨 나오는 음식들. 3명이라 먹어보고 싶은 음식을 모두 시킬 수 있었다. 문어밥, 해물밥, 그리고 농어구이. 농어구이는 불쇼까지 보여줘서 눈도 즐거웠다. 생각보다 양은 적었지만, 비린 맛 하나 없이 맛있는 생선구이였다. 해물밥과 문어밥은 여태 먹었던 해산물밥 요리 중에 정말 최고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그 맛이 그리워 포르투에 가고 싶을 정도. 디저트로 옆 테이블에서 시킨 머랭 케이크까지 먹었다. 마드리드에선 거의 굶고 다니다시피 해서 그런지 더더욱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농어구이 불쇼
차례로 해물밥, 문어밥, 농어구이


 음식을 먹는 중에 우리의 옆테이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줄 서있는 동안, 우리 세명 바로 뒤에 서계셨던 분이었다. 혼자 오신 한국인이었는데, 음식 두 개를 시켜서 먹고 있었다. 혼자 여행을 한다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식당에서 식사할 경우가 애매할 것 같다. 그래서 커뮤니티에 식사할 일행을 구하는 글이 빈번하게 올라오나 보다.


 만약 우리가 먼저 다가가서 "합석하실래요?"라고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그분도 혼자보단 여러 명이랑 여러 음식을 시켜 먹는 게 더 좋다고 할까. 아님 낯가리고 혼자만의 여행을 왔는데 낭만을 망친다고 생각을 할까. 아무래도 우리의 수가 더 많으니 먼저 말을 걸어봤어야 할까. 내가 더 외향적인 사람이었다면 바로 물어봤을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뒤늦게 이야기해 볼까 생각해 봤자 무슨 소용인가. 앞에 놓인 즐거움을 먼저 만끽해야지.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더치페이로 계산을 하고 나와 큰 골목길까지 같이 걸어갔다. 그분은 호텔에 돌아간다고 했다. 잠깐 만난 인연이지만, 짧고 굵게 즐거움만 나눈 후 우린 그렇게 인사했다. 안전하고 즐겁게 여행하라는 인사와 함께. 


 그 뒤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모른다. 하지만 가끔 생각은 난다. 여전히 남미와 아프리카, 전 세계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계실까.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 혹여나 길에서 만나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추억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그분도 우리를 기억하실까. 


도우루 강과 다리, 수도원

 식당 골목에서 아래로 내려오니 도우루 강이 나온다. 강바람이 불어 쌀쌀했지만 강 근처를 한번 걸어본다. 조용한 강에 비친 다리와 건물의 빛들이 반짝인다. 포르투의 첫인상과 하루의 느낌 모두 정말 좋았다. 다음 날은 포르투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은 좋은 추억으로 평생 가져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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