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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psyviolet Feb 24. 2023

과거의 망령 2.

일지 20230223

Please, be silent!

나는 올해로 30살을 맞이했다, 그런데도 유년기의 몇몇 사건은 아직도 소름 돋게 선명하다. 그만큼 강렬했던 기억이었던 탓일까? 나는 오로지 진실만을 얘기하고 있지만 전적으로 판단은 독자님들의 몫.


내가 3살 무렵쯤의 일이다. 그 이전의 일은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에도 기억에 없다. 그때 당시의 내 생각을 빌려오자면, 내가 그전에는 눈을 뜨고 있지 않아서 세상을 볼 수 없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문득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처절한 고통과 격노의 감정을 서로에게 쏘아붙이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날아드는 이런저런 물건들. 나는 매번 그들의 싸움을 어떻게든 말려보고 싶어 울먹이며 그만하라고 목 놓아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도비탄같이 날아든 베개와 나의 쉬어터진 목소리. 나는 어릴 때부터 발성적으로 좋지 않았다, 아마 이때의 일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물론 지금은 전혀 문제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당시의 나의 세계관에서 모든 부모님들은 그렇게 매일같이 싸우고,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는 줄 알았다. 매일매일이 그런 시끄러운 절규와 고통으로 가득한 일상의 반복. 나에게는 그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난 그 흔한 어린이집을 가본 적도 없었고, 친구가 늘 없었다. 그저 집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이런 상황들을 관망하며 나의 무기력함에 젖었을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이 시끄러운 상황이 빨리 흘러가길 바라는 것. 그러고 내가 할 일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엄마의 등을 토닥이면 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두 분의 모습이 사뭇 다르게 보였다. 조금은 즐거워 보이기도 했었다. 매일매일 관찰하며 지내다 보니, 이른 나이에 눈치라는 게 좀 생겼던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나는 전혀 즐겁지가 않았고, 머릿속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통제하는 법을 그 어린아이가 어찌 알겠는가? 나는 그저 예민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표출했다. 부모님은 무료하셨나 보다. 투정 가득한 나의 모습을 보며, 장난감을 갖고 나와 같이 놀아주겠다고도 하셨다. 그래, 장난감 얘기를 하니 나에겐 당시 애착 인형이 하나 있었다. 작은 곰돌이 인형이었다. 그 인형만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나의 얘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 이외에 다른 친구를 원하지 않았던 것일까? 장난감은 싫다고 말했더니 그럼 TV나 보자면서 전원을 켰다. 이내 나는 적막을 깨는 시끄러운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제발 꺼달라고 애원을 했다. 너무 시끄럽다고 말했더니 볼륨을 낮추셨다, 그래도 나의 애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TV의 전원이 꺼지고 나서야 나는 사그라들었다. 나만 적막을 원했었나 보다. 무료한 부모님들은 그 조용한 상황이 영 탐탁지 않으셨나 보다. 난 항상 시끄러웠는데, 잠시 조용함을 즐기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렇게 다른 걸 해보자며 라디오를 틀었다. 다시 찾아온 소음이 내 귓가에 입력되자, 나는 같은 결과 값을 출력했다. 소리가 문제였다, 나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했던 것이다.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영 떠나지 않는 내 머릿속의 소음은 지금 이 시점에도 나를 괴롭힌다. 이제는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지금도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는 누가 말을 걸어오면 나름 조심하고 있지만, 예민함이 묻어나는 대답이 나도 모르게 섞여 나온다. 이윽고 꺼진 라디오, 다시 집안엔 고요한 적막만이 흘렀다. 계속해서 나의 의사를 궁금해하는 두 분의 대화도 듣고 싶지 않았다. 무얼 하고 싶느냐는 말에 나는 그저 소파에 앉아 웅크리고 있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와 부모님은 셋이 나란히 소파에 같은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나는 곰인형만을 끌어안은 채로.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오직 음악만이 유일한 치유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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