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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Mar 14. 2024

만들어진 세상일지라도

  sns를 아이의 성장 기록용으로만 쓰고 있었다. 우연히 다른 삶들이 눈에 들어왔다. 멋있게 당당하게 자신을 세우고 사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글도 어쩜 그리도 잘 쓰고 하는 일은 또 어쩜 그리도 전문적인지, 그리고 그 안의 모든 활동 소통들을 통해 그들이 성장하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니, 이거 지금 당장 나도 그들처럼 시작하지 않으면 늦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꾸어놓은 예쁜 화단과 같은 모습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말이 조금 비약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sns 세상은 정말 그러했다. 좋은 것 행복한 것만 가득했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잘 활용하며 즐기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인사 치례라도 허투루 넘어가는 사람들이 없었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이 미치길 원하는 것 같았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을 끌어당긴다는 법칙이 잘 적용된 공간이었다.


 열심히 진심을 다해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 가려가며 이익을 저울질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겉으로는 나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비치길 바라며 ‘성장’이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그런류?의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 같은 세상에서는 나와 동색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색안경이 자동으로 껴졌다.  

    

  때로는 타인의 성장과 비교하여 괜스레 주눅 든 날도 있고, 아이의 교육과 관련된 정보들을 수집하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극성스러운 엄마였나 싶고, 육아에 관련된 영상이나 글을 보다 반성하는 날도 있다. 서로 주고받는 소통 속에서 내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었고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들, 내 가족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사람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엄마라는 타이틀로 내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많이 낯선 이 공간에 발을 들여놨을 때 엄마 말고 다른 타이틀을 가지고 나를 그 공간 한 자락에 세우고 싶었다. 낯선 공간에서 또 다른 이름의 나를 찾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새로운 명찰을 달아보고 싶어졌다.



 전업주부일 때는 엄마라는 확실한 정체성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매 순간 나를 찾는 아이들은 내가 엄마로서 정확히 해야 할 일들을 주었으며, 서툴지만 두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나의 엄마라는 자리도 더 단단해지고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렇게 난 엄마라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효용성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확고히 가질 수 있었다.


 세상은 달랐다. 호기롭게 학원장이라는 타이틀을 이력에 넣었지만, 이력이 주는 중압감만큼 내가 채워야 할 그릇은 더 커졌고 그만큼 배워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글도 써보기로 했지만, 쓰면 쓸수록 나란 사람이 부족한 사람임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내가 같이 성장하는 과정은 생각이상의 고통을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힘듦에도 의미가 있겠지라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 때로는 눈 딱 감고 단순하게 무식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깊이를 만들어주고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준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뭐도 아닌 내가 뭐라도 되기 위해 꾸역꾸역 매일을 살았다..


 진짜 세상은 나에게 이렇게나 치열한 곳인데, 결과물만 쏟아내는 sns에 피로감이 느껴졌다. 내 삶은 때때로 삐걱거리며 멈추기도 하는데, 진정성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이 피곤할 정도로 그 예쁘고 멋지기만 한 세상은 잘 만 돌아갔다. 의도해서 소외시킨 것도 아닌데, 의도치 않게 소외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 처지는 느낌이구나.'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치열하게 걸어온 길을 더듬어 올라갔다. 삐뚤빼뚤 빙 둘러온 그 과정들이 제법 길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성장해 있었고, 비록 그렇다 할 결과물을 내어놓지 못했지만, 미숙했던 지난날의 생각들을 읽어보니 나 역시 더디게나마 변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만들어진 세상'이라 했던가. 아무도 각자의 인생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삐딱하고 오만한 지난날의 내 시선을 거두기로 했다. 멋지고 예쁜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치열함에 끌여가보기로 다짐했다.



오래 살아도 우리는 인생에 라벨을 붙이기가 어렵다.
누구에게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꿈같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게 우리네 삶이다.
 - 장재형 <마흔에 읽는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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