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미화 Mar 13. 2024

다 제각각의 속도가 있다

'내 아이, 글 좀 잘 썼으면 좋겠다’

욕심이다.



5년 전에는 이랬었지.

'내 아이, 말 좀 잘했으면 좋겠다'

첫째는 말이 느렸다. 그저 때가 되면 터지겠지 하며 발화를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게 다였다. 보채지 않았다. 기관에 가기 전까지 일명 ‘단어 치기’로 짧은 단어 몇 개로 의사소통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존재가 첫째였다. 책도 많이 읽어주고 말도 많이 시켜주고 나름 노력은 했지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영유아 검진은 언제나 ‘언어추적검사 요망’으로 나왔다.


5살이 되고 점점 입 근육이 풀리는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 신기한 경험을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했을 뿐이다.


언어발달 속도가 남다르다는 걸 알고 난 후,  철저히 첫째의 발달 속도에 맞췄다.

천천히.

한글의 자음 모음공부도 7세 때 시작했다. 이미 한글을 떼고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5살에 이미 한글 떼고 카드 읽고 쓴다는 건 다른 세상이야기였다. 코로나가 터진 후 가정보육을 시작하고 다른 아이와 비교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매일 책 읽기.

매일 한 장 한글 쓰기 학습지.

매일 받아쓰기 연습.


그렇게 한 두 달 지나니, 아이는 한글을 나름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책도 소리 내어 읽고, 말도 안 되는 문장이지만 삐뚤빼뚤 편지도 쓰고, 설명서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이버 검색창에 알고 싶은 걸 입력해서 스스로 찾아보는 것에도 굉장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엄마의 욕심이 자라는 순간이 왔다. 아이가 책도 읽고 짧게나마 글도 쓰고 하니 ‘멋진 글’ ‘반듯하고 훌륭한 글’ ‘잘 쓴 글’을 썼으면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자라기 시작했다. 더욱이 인스타 피드에 올라오는 또래 아이들의 잘 쓴 글들을 보며 더 그런 마음이 생겼다. 일기를 쓰자고 했다. 아이는 며칠 쓰다 지우다 반복하다 일기 쓰자는 말에 표정이 어두워진다. 참 어리석은 엄마.


한 날은 아이가 나에게 되려 물었다.

“엄마, 내 글이 별로야?”

별로라고 말한 적이 없었지만, ‘이렇게 적으면 더 글이 멋질 거 같다’라는 말이 첫째에게는 상처가 되었나 보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어”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네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뗀 아이에게 속도내서 달려라고 말하고 있었으니...

다시 물었다.


“네가 글을 잘 못 쓰는 거 같아? 어려워? 어떤 게 잘 안되는지 말해줄래?”

“엄마, 사실은 내가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종이에 적으려니까 어떻게 뭐부터 적어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못해서 글을 못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 이것 봐 바. 저것 봐 바. 이건 어때. 저건 어때’라고 하루종일 엄마 옆에서 종알종알 이야기를 풀어놓는 아이만 봐도 이해가 된다.


생각을 끄집어내 가지런히 쓰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 후로 아이에게 글 쓰라는 말 대신 질문을 던진다. 생각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그래서 느낌이 어떤데?”

“어떻게 하면 될까?”

“네 생각은 어떤 것 같아?”

천천히 가더라도 배우는 과정을 통해 탄탄한 내면을 가꾸는 사람으로서 ‘쓰는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그걸로면 충분하다. 이미 너는 잘하고 있느니라.

매거진의 이전글 위악적인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