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푹 빠진 동물의 숲 게임도 하고, 부끄럽게도 자주 꺼내 들진 않았던 책도 오래간만에 찾아 정독을 해보기도 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어떤 글을 써볼까 생각에 잠겨있기도 해 보고, 그러던 차에 정말 뜬금없이 '나'를 생각해 보게 됐다. 글을 쓰다 보니 나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나 보다.
우리 반 아이들이 생각할법한 그런 생각을 나도 해보았다. 나는 누구일까?
그런데 도통 나란 모습들에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정반대의 모습을 같이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딱 하나로 떨어지는 성격으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나는 E와 I의 경계, S와 N의 경계, T와 F의 경계, J와 P의 경계선에 있었다. 이렇게 경계선에 있는 나는 간혹 MBTI를 상대에 따라 이리저리 바꿔서 말할 때도 있는데, 문제는 다 다른 MBTI를 얘기해도 상대는 나에게 '오, 정말 너에게 찰떡이다.' 이런 감탄 어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리고 타인에 의해 더 알쏭달쏭해지는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참에 나에 대해 정의해 볼 수 있는 여러 일들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직장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서글서글하니 주변에 잘 녹아드는 리액션 담당이 되어있다. 연령과 상관없이 편히 나눌 수 있는 스몰토크에서 깔깔깔 웃어대는 내 모습에 나를 외향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내가 그은 선을 넘는다고 느낄 때는, 갑작스러운 다가옴을 느낄 경우에는 나도 모르게 그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그 이유는 나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내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는 시시콜콜 내 감정의 모든 것을 다 털어놓기도 한다. 경험했던 일에 대해서만이 아닌, 그 과정에 담긴 내 감정까지 속속들이. 그리고 어찌나 하도 여러 번 얘기했는지,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할 때도 있다. 누구에게는 절대 속을 드러내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모든 속을 탈탈 털어놓는 나.
여행을 계획할 때, 어디를 갈지, 어디에서 묵을지, 무엇을 먹을지를 어느 정도 그려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10분 단위로 무얼 할지 정해놓는 정도의 치밀함은 없지만, 계획해 두었던 일정이 차질을 빚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B코스, C코스 정도는 여유 있게 생각해 두는 편이다. 그런 데다가 버스티켓 하나를 산다면 어디 골목에서 사면 좋을지, 공항에서 길을 헤매지 않으려면 어느 편 엘리베이터를 타면 좋을지, 혼자서 미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 두었던 일정과 완벽히 달라지는 즉흥적인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 계획은 계획일 뿐,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오히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제안이 있다면 더 반갑게 받아들일 수 있다. 더 좋은 제안? 오히려 좋아!
예전에 한번 핸드폰을 자급제로 구매하며 6개월 무이자 할부를 긁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동이체가 될 때까지 기다려본 적이 없다. 월별 명세서가 뜨는 즉시, 나는 즉시 결제를 선택해 버리니까. 그다음부턴 할부를 아예 끊질 않는 편이다.
그리고 월급이 들어오는 그 즉시 보험, 적금, 예금, 그리고 각종 제출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한 시간 내에 끝내버린다. 해외라서 은행 업무가 중단되었을 때나 아파서 몸져누웠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다음으로 미뤄본 적이 없다. 귀찮다는 이유로 넘긴 적은 단연코 없다.
물건 하나를 사도 리뷰를 꼼꼼히 살펴보고, 가격비교도 제대로 해서 가장 최저가를 찾아내는 법이다. 20살 성인이 되고 난 후부터 하도 단련이 되어서 그런가 이제는 그 속도도 훨씬 빨라지고, 정확해졌다. 우유 하나도 꼼꼼히 가격과 품질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나지만, 길 가다가 본마음에 쏙 드는 물건에 당장에 용돈 예산 초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홀려버린다. 큰 금액을 긁을 만큼 대범하진 못하지만 홀려버린 그 마음에 단번에 호응을 할 때가 있다.
누군가는 내가 공감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반대로 말하기도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 범위에서는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맘처럼 그게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온전히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왜? 그랬을까? 상황을 분석하고 그 이유를 찾아낼 때가 있다. 상대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문제 해결방법을 찾고 말이다.
특히나 그런 맥락에서 사과가 나에겐 참 어렵다. 고마움을 전하는 것, 격려하는 것은 항상 내 입가에 맴도는 말들이다. 사람을 대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나는 사랑의 언어를 항상 연습해 왔고, 노력해 왔다. 마음이 굳어 있는 아이에게 마음으로 다가간다는 건 꽤 오랜 시간이 인내가 필요한 것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내 언어 습관들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사과라는 것은 내게 참 어렵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도 참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에게 미안함으로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이 어렵다. 돌이켜보면 가족과도 제대로 된 소소한 사과를 많이 나눠보지 못했던 것 같다. 서로로 인해 속상했지만 참았던 순간도 많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가볍게 농담하며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시간에 맡겼던 것 같다. 그래서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고서야 내가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자존심이 세서 그 순간 그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도통해보지 못한 그 낯선 표현을 꺼내지조차 못하는 것일까.
꽤나 현실적이다. 허황된 것을 좇지 않고,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어렸을 때 다이어리를 보면 내 좌우명이 '분수에 맞게 살자'이다. 어떻게 하면 초등학생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나도 내 과거가 참 낯설 때가 많다.
하지만 욕심은 있다. 욕심이 많진 않다. 그저 단호히 있을 뿐이다.
엄마는 항상 내 어렸을 때를 회상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너는 어쩜, 마트에 가서 먹을 걸 골라보라고 하면, 꼭 하나만 골랐어. 마음에 드는 그 하나를 찾지 못하면 동동 눈을 굴리며 불안해하는데, 하나를 딱 고르고 나선 다른 걸 권해도 괜찮다고 하더라."
갖고 싶은 거, 내게 필요한 거 딱 하나만 있으면 괜찮아. 했던 그 아이는 그대로 커서 그런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그 하나에 대한 욕심은 강렬하지만 많은 것, 더 높은 것에 대한 욕심은 없는 어른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많다. 낯도 많이 가리고 낯선 상황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하지만 낯선 것을 도전했을 때, 그 시도 자체에 스스로 꽤나 만족스러워할 때가 많다. 혼자서 시도하기까지는 힘들지만 누군가와 함께 한다고 하면 기꺼이 시도해 볼 수 있다.
의외로 또 무대체질이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덜덜 떨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세상 그게 무슨 어려움이었냐는 듯, 어디서 가져온 용기인지 어마어마하게 큰 용기를 장착하고선, 발표를 하든 춤을 추든 온갖 짓(?)을 원 없이 하고 내려온다. 내려오면 무한정 부끄럽고, 민망스럽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는다.
차분히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정독실에서 공부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교실에서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노래를 들으며 공부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무래도 집으로 가야겠다며 선생님께 말씀드리고선 방 안에 테디베어 인형을 앞에 두고 수업을 하듯 그렇게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게 꽤 맘에 들어서 1달 동안은 집에서 야간 자율 학습을 하겠다고 선생님께 선전포고를 하니, 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고, 'OO아, 혹시 무슨 힘든 일 있니?' 하고 물으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따뜻한 마음이 담긴 초콜릿과 함께.
그때가 수능을 한 두어 달 앞둔 때였는 데다가, 나름 반 1등은 놓치지 않았던 나였으니 선생님이 걱정하실 만도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도 전혀 그런 상황을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수능이 하루 전 날이어도 크게 상관 안 해.
그렇게 개의치 않게 있다가도 이번에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을 때 같은 순간엔 또 오락가락 난리도 아니었다. 브런치를 알게 되고, 가입하자마자 나도 작가가 되어봐야겠다 대찬 마음을 품었다. 큰 포부가 있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작가라는 이름을 갖고 내 글을 쓴다는 건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것과는 스스로가 좀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뭉게뭉게 설레는 마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기소개글도 쓰고, 지원할 만한 글도 두어 편 써보고.
그렇게 제출하고 나서 블로그에 검색을 해보았다. 보통은 단번에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고, 보통 합격을 하면 하루 뒤쯤 메일이 오고 불합격하면 이틀이나 사흘 뒤에 연락이 온다고 했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날 아침부터 쉬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핸드폰을 손에 쥐었을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메일함에 들어가 봤다. 메일함에서 반복되는 무수히 많은 새로고침, 그때마다 쌓이는 JUST 프로모션 메일들
불합격이든 합격이든 빨리 연락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오후 5시쯤,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쯤까지도 이어지던 그때, 혹시나 하고 메일함에 들어가 봤던 그 순간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전까지 남편이 "무슨 안 좋은 일이, 힘든 일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응? 아니야~ 그런 거 아닌데~"라고 대답했지만, 그 연락을 받자마자 내 감정을 그제야 정확히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이 연락을 받지 못해서 그동안 계속 마음 졸이고 불안해하고 있었구나. 아닌척하면서, 엄청나게 크게 걱정하고, 그 걱정하는 마음을 들키고 싶지도 않아서 이런 내 모습이 낯설어서 쉬이 털어놓지도 못했던 그날의 나.
그렇게 이 하나의 일에 마음 졸이고 있던 나를 생각하니 이건 왜 그렇게 맘처럼 쿨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었더랬다.
나를 알아가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타인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될 때도 있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낯선 내 모습, 혹은 친근한 나의 모습을 새로이 발견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나를 '누구이다.' 하고 명확히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고 차곡차곡 경험으로 쌓아나가다 보면, 그래도 내가 누구인지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내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