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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 Mar 23. 2025

빈 끝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쪽의 세상이 끝나고 한 귀퉁이로 그 자리를 내줬다.
전부였던 그때도 아깝지 않던 세상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 끝으로 내려앉았다.
반들반들 윤 나도록 귀이 아끼며 품던 자리는 이제 빈껍데기로도 쓸모가 없다.
앉던 그 자리 그 시간 모두 그대로인 것 같은데 두바퀴 돌아 이미 내 자리 그 시간은 지나가버렸다.
새로 들어앉은 앙증맞은 잎새도 그 자리 귀이 여겨줄거란 나의 바람은 너무 무색해지고 말았다.
애닳다 닳는다 흩어진다...
이미 내어주겠다 한 편을 비운 마음인데 왠지 그것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같이 떠받치던 동무도 자꾸 힘을 잃어 자주 삐그덕 거린다.
한바퀴 또 돌고나면 또 아귀가 맞아갈까 기약없는 읊조림만 늘어간다.
내 귀한 것은 찬바람 부는 한뎃바람 맞으며 봄 훈풍 보담 좋다고 따뜻하다 한다.
불어올 바람은 이미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애써 데워놓았던 자리도 온기를 잃는데 자기의 체온으로 녹일 수 있다 한다.
이젠 힘이 다한 바람개비 마냥 바람만 기다리고 혼자 움직일 수 없음에 자꾸만 빈 손만 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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