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에 독립을 하다!

인생 처음 독립을 하고 들었던 생각들 두런두런

by 따홍 ttahong

만 31살, 그러니까 32살에 들어서야 나는 자취를 시작했다. 이제 4달이 가까워진다. 부모님께서 아주 많이 보수적이셔서 용기 내기 쉽지 않았다. (부모님 당신은 스스로 보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신다.)


사실 내가 독립을 해도 되는지 제대로 허락을 구한 적도 없고 대차게 거절당한 적도 없었지만 3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부모님의 보수적인 면들을 지켜봐왔기 때문에 ‘당연히 허락은 쉽지 않겠지?’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친구 약속은 물론이고 회식이 있어도 12시 통금을 지켜야 했다. 중간 중간 연락만 된다면 한…새벽 1시 정도까지 1년에 5회 미만은 가능했다. 친구와 집 앞 산책하는 것도 한…새벽 1시 정도 까지는 오케이… 32살 과장으로서 통금을 지키는 것은 인턴이나 신입 앞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말씀 중에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살다가 내가 결혼해서 분가하길 원하시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직장은 서울이고 집은 경기도였으니까 퇴근하고 혼자 영화라도 보고 집에 오면 11시가 넘었는데 그때마다 일찍 일찍 다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가볍게 하신 말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점점 크게 들렸다. 등 따습고 배부른데 답답했다. 불안했다.


20대 중반에 한번은 크게 부모님께 대들어봐야 12시 통금을 깰 수 있다는 친구들의 조언에 크게 부모님께 화를 낸 적도 있었지만 부모님께서는 사춘기의 반항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난 디자이너로 회사에서 5년 넘게 근무하고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다. 언젠가 이게 본업이 되길 바라며…


10대부터 대학생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좋았다. 그 시절 라디오나 음악을 틀어놓고 집중해서 손으로 그림을 그리던 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좋은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으며, 집중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렇게 평생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는 게 힘들다. 그림은 그리고 싶지만 퇴근하고 몰려오는 텍사스 소떼 같은 피곤함에 마음은 책상 앞이지만 몸은 침대 위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간혹, 김목인의 ‘뮤즈가 다녀가다’의 가사처럼 정말로 뮤즈가 나타날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이면 다음날 출근해서 꾸벅꾸벅 졸더라도 이 집중의 불꽃이 꺼질 때까지 그림을 그리리라 다짐했다. 마구마구 그림을 그리다가 새벽 1-2시가 되면 갑자기 방문을 똑똑 두드리며, ‘내일 출근하니 자거라’ 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집중의 불꽃이 꺼져버렸다.


방문을 두드리시지 않는 날이면 내가 불을 켜고 잠이 든 줄 아시고는 (나는 항상 방문을 잠그고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집안 불 전체를 끄시거나 다음날 아침에 꼭 뭐하느라 늦게 잠들었냐고 물으셨다.


왠지 그 질문에 ‘그림을 그리느라 새벽까지 못 잤어요.’라고 답하는 게 쑥스러웠다. ‘개운하게 출근하기’라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자아실현은 한없이 힘이 없었다.


아빠는 그냥 물어보신 걸 텐데 나는 또 크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화를 내시지 않았는데 화를 내신 것처럼 느꼈다.


그림을 그리느라 늦게 자서 피곤해도 안 피곤한 척을 하기도 했다. 그냥 솔직하게 ‘어제 그림 그리느라 오늘 피곤할 걸 알지만 늦게 잤어요. 역시나 피곤하지만 그림을 그리느라 좋았어요. 그래서 괜찮아요.’라고 말을 못 했다.


언젠가부터 뮤즈가 나타나면 나는 아빠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미리 오늘은 늦게 잔다고 말씀을 드려야 하나?

나 지금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데 굳이 거실로 나가서 불 끄지 마시라고 늦게 잔다고 말씀을 드려야 하나?

왜냐고 물으시면 그림 그리느라 늦게 잔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잔소리 들으려나? 그런 생각들로 인해 뮤즈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분명 부모님과 나는 화목한데, 너무 가까워서 답답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작년부터는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하고 싶어도 우선 독립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인생의 단계에서 독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온 것 같았다.


참고 참고 참다가 혼자 돈을 모으고 집을 알아보고 부모님께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엄마께는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았는데, 아빠께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그래서 장문의 편지를 써서 아빠께 드리고 출근했다. 긴장한 채로 하루 종일 연락을 기다렸는데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엄마께 전화가 왔다. 아빠께서 허락하셨다고 했다. 혹여라도 집 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냥 같이 지내는 거 어떻니?’라는 말씀을 하실까 봐 한여름에 무리해서 집을 보러 다니고 한 달 만에 구했다.


이렇게 32살이 되어서야 독립을 하게 됐다.


이젠 ‘출근하는데 왕복 2시간이 넘어서 피곤해 하면서 왜 독립 안 해?’ 라는 친구들의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된다. 친구들의 그 질문이 듣기 힘들었던 이유는 부모님께 허락받기 쉽지 않다고 답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32살에 저렇게 답하기는 쉽지 않았다. 싫었다.


혼자 살게 되니 30년 넘도록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종종 떠오른다. 나와 부모님은 너무 오래 함께 지내서인지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분리되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도 거대한 나무뿌리에 붙어있는 잔뿌리들처럼 정리되어야 하는 감정들이 얽혀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정리되리라 믿는다.


아무튼 3달이 되어서야 집에 적응을 한 것 같고 이제야 집이 편하게 느껴진다. 2024년 크리스마스는 나만의 방에서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다. 혼자서 행복하고 따뜻하게 보내…


아 나 그때 본가 가야된다.ㅎㅎㅎ




https://youtu.be/vmy4f-PKT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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