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번째 심리상담을 진행하기까지.
병원을 가지 않고 지내면서
나는 더 심해졌다.
더 자주 우는 걸 떠나 매일 울었고,
내 삶은 걱정으로 뒤덮였다.
밖에서는 밝은 척을 했고, 집에만 들어오면 나는 무너졌다. 그리고 그 괴리감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었지만, 부모님이 있는 본가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도 갱년기를 겪고 계셔서 매우 예민하셨고, 나도 예민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밖에 안 되었다.
세상에 혼자서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안 되겠다 싶은데, 또 병원을 가고 싶지 않았다.
심리상담을 받고 싶었다. 일반적인 심리상담소는 한 번 가는데, 10만 원이라고 했다. 보통 횟수는 10회 정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학생인 나에게 그만한 돈은 없다.
그 와중에 우리 학교에 심리상담센터가 있는 것을 알았다.
용기를 내서 상담센터에 인터넷으로 신청을 했고, 1월쯤 상담글을 올려서 3월 말에 첫 상담을 할 수 있었다.
상담은 비슷하지만 다르게 이루어졌다.
먼저, 나의 상태를 알아보는 검사지는 똑같지만, 일주일에 1시간 정도씩 매일 상담을 하고, 백색소음이 있는, 방음이 완벽하게 되는 방에서 나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울었다. 상담을 하면서 늘 울었는데, 점점 눈물이 줄어들고 방학이 되어 상담이 끝이 났다.
첫 번째 상담은 사실, 나를 알아가지는 못했고, 그냥 눈물을 그치는데에서 끝이 났다.
나는 좀 덜 울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바쁘게 살았다.
전과를 해서 적응을 해야 했고, 학교 내의 열심히 활동하던 동아리에서 직책을 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작은 일이다. 그저 대학교 내의 그냥 동아리의 부장 정도. 그때의 나는 많은 일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많이 내려야 했었다. 그 와중에 싸움도 많이 하고, 욕도 많이 먹었다. 친구가 내 말을 왜곡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퍼트린 것을 듣고는 너무 충격을 먹었고, 한 선배가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하고, 학교에서 한 친구가 나를 유독 싫어하고, 이유도 모른 채 다른 아이들은 방관했다.
나는 그 모든 인간관계를 무시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
그러한 일들 사이에서도 나를 믿어주고 이해해 주고 옆에 있어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조차 못 믿을 것 같았다.
아무도 못 믿겠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내 탓 같았다. 내가 못해서 일어난 일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집에서 생활을 하며 더 더 더 가라앉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왜 살고 있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3월에 계속 학교를 가는 것이 연기가 되면서, 본가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낮에는 부모님과 동생이 다 나가기 때문에 혼자 숨죽여 울 수 있었는데, 밤에는 그게 좀 어려웠다.
혹시나 내 울움소리를 들을까 봐 무서웠다.
그리고 5월이 되어서 학과 자체가 실기를 위주로 하는 과다 보니, 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즈음의 학교는 최악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로 나가지도 못하고, 룸메와의 사이는 좋았지만, 혼자 있고 싶었고, 동아리방에도 갈 수가 없고, 대면을 하는 과가 많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과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놀 수도 없었다.
점점 숨이 가빠오고,
명상을 하면 진정이 되었었는데 진정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서 걸어도 불안감이 지속되고,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내가 좋아서 하는 수업인데, 수업이 너무 무겁게 여겨졌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데 누구라도 만나고 싶고, 울다가 헐떡이고, 숨이 잘 안 쉬어져서 머리가 멍해지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잘 안 들리고, 집중이 안되었다.
모두가 나의 뒷담을 하는 것 같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살기 위해서 조금 쉬기로 했다.
과제에, 사람들 사이에서 허덕이고 싶지 않아서 휴학신청을 했다.
그리고 학교에 두 번째 상담신청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