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 「카페인」
'쏜못넬'이라는 용어를 아는가? 아마 인디음악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주기율표의 두문자를 따서 외우는 것처럼 밴드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묶어놓은 이 용어는 '쏜애플', '못', '넬'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셋 밴드는 모두 특징이 있는데, 바로 '몽환성'이다. 먼저 넬은 인디 1집(Reflection of)~정규 1집(Let it rain)까지는 라디오헤드의 [The bends]에 매우 큰 영향을 받아 현악기나 키보드가 두드러지는 노래가 없었지만 3집부터 키보드와 신디사이저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몽환'하면 떠오르는 밴드로 군림하게 된다.
쏜애플도 넬처럼 라디오헤드의 영향을 크게 받긴 했지만, 1집(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부터 기타 위주로 사운드를 구성하고 이펙터나 디스토션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 물 먹고 습기찬 기타톤을 만들어 차별화를 꾀했고 이와 같은 노력은 마침내 EP앨범 [서울병]에서 완전히 개화한다.
못은 앞서 언급한 두 밴드와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밟으며 성장한다. 애초에 그들의 1집 [비선형]부터가 굉장히 기형적인 구조로 발매되었는데, 바로 무홍보, 무공연, 무인력이다. 최근(2023.7.13 기준) 오로지 포스터 하나만 공개한 채로 아무런 마케팅을 하지않는 영화가 매우 큰 관심을 끌고있는데, 당연히 그러한 리버스 마케팅은 기초적인 인지도가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겠지만 못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채, 보컬인 이이언이 96년도부터 01년도까지 혼자서 작업해오던 것을 기타리스트인 지이가 영입된 후 04년까지 갈무리하여 그것 하나만 맨땅에 헤딩하듯 발매한다. 통상적이라면 망하는게 당연하겠지만... 독보적으로 어둡고 불안한 사운드에 시적인 가사, 노트와 음 하나하나에 새겨진 공학적 프로듀싱은 해외 밴드의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있던 당대의 인디씬을 흔들어놓기 충분했고 단숨에 못은 선각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오늘 알아볼 노래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닌 못의 1집, [비선형]의 수록곡 <카페인>이다.
[비선형]은 못 만의 몽환성을 창조적으로, 또 그로테스크하게 잡아낸 명반이다. 앨범을 관통하는 어두움은 이미 앨범커버에 지독히도 드러나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못'엔 회색에 녹색이 녹아있는 듯하다. 보통 회색을 흔히 도시의 색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건축물은 회색으로 빛바래가거나 최초부터 회색이었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낯빛마저 회색으로 물들기도 한다. 반면 녹색은 자연의 색이다. 엽록소로 점철된 식물들의 옷은 기본적으로 여름 위주의 패션이지만 겨울에도 간혹 그것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겨울은 고동색과 눈이 만든 잿빛 판타지에 식물을 전부 묻어버리거나, 녹색을 멸종시킨다. 겨울에서 차가운 냄새가 나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이 앨범의 광경은 겨울과 여름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줄기를, 뿌리를, 나뭇가지를 사근히 덮고 있던 녹색은 완전히 배제되었고 오로지 고동색만이 나무를 형성한다. 혹은 나무가 아닌, 나무를 닮은 무엇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람이 만들어낸 나무를 닮은 고동색 물체일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던 간에 그것은 완전히 녹색에서 탈출했다. 심지어는 나뭇잎마저 엽록색을 벗었다. 이러한 고동색이 두르고 있는 곳은 '못'이다. '못'에선 그나마 녹색을 발견할 수 있다. 연꽃이 그나마 자연을 유지하며 그것을 머금고 있지만 그것은 점점 희미해진다. 결국 회색으로 변모해가는 녹색은 일관된 인공성을 상징하게 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인공성의 비유는 앞으로 전개될 그들의 노래에 중요한 소재로 작용한다. 기존의 라디오헤드적 기타 팝에 물들어 있던 인디음악에 파괴적이고도 매우 냉혹한 읊조림을 고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때의 음악을 '밴드음악'으로 칭하기는 약간 어폐가 있다. 오히려 그들은 밴드가 아니기에 제일 이질적인 음악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밴드'라 함은 기타, 보컬, 베이스, 드럼 등의 악기들이 어우러져 한 목소리를 내는 단체였지만 [비선형]에선 그러한 양태는 드러나지 않는다.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차디차고 가는 이이언의 목소리, 그리고 그 차가움을 더더욱 몰아붙이며 만들어낸 기계적이고 공학적인 사운드. 모든 것이 '정서'라는 것과 철저히 거리를 두며 걷는다.
물론 이후 5인조로 개편되며 발매한 3집 [재의 기술]에선 훨씬 밴드적 사운드가 흠씬 묻어나게 되지만 그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2016년 [재의 기술]을 발매하고 못은 딱히 이렇다할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이언은 지금은 해체한 언니네 이발관의 기타리스트 이능룡과 함께 '나이트 오프(Night-off)'라는 2인조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서론이 좀 길었다. 여튼 [비선형]은 거를 곡이 없는 명반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달리 개인적으로 끌렸던 곡인 <카페인>을 알아보자.
그 자리에 앉아 낙서를 했지
종이 위에 순서 없이 흘린 말들이
네가 되는 것을 보았지
네가 되는 것을 보았지
난 숨을 참아 보다가 눈을 감았다가
또 손목을 짚어도 내 심장은 무심히
카페인을 흘리우고 있었지
카페인을 흘리우고 있었지
늘 깨어 있고만 싶어
모든 중력을 다 거슬러
날 더 괴롭히고 싶어
더 많은 허전함을 내게
하루는 그리 길지도 않고
지루하다 할 것도 없는데
난 더 이상 기다리지도 않는데
난 더 이상 기다리지도 않는데
늘 깨어 있고만 싶어
모든 중력을 다 거슬러
날 더 괴롭히고 싶어
더 많은 허전함을 허전함을 내게
늘 깨어 있고만 싶어
모든 중력을 다 거슬러
날 더 괴롭히고 싶어
<카페인>의 전개는 굉장히 기묘하다. 시작부터 천천히 페이드 인되는 전자기타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그리고 하몬드 오르간이 이루는 극도로 불안한 사운드는 독보적인 그들의 우울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매우 간단한 리프이지만 철저히 듣는 이로 하여금 이러한 '상태'에 빠지게끔 설계한 이이언의 능력은 정말... 비오는 날의 권태를 연상케하는 전개는 나른하기까지 하며 점점 기타의 크기를 키우다가 싸비부분으로 접어든다.
반주만으로 시각화를 성취할 수 있는 밴드가 몇이나 될까? 빗물이 창을 타고 흐르듯이, 그러나 멈칫 멈추듯이, 이이언의 보컬과 기계적이고 인공적인 재색의 반주는 유체성을 띄며 서로 저항할 수 없는 흐름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가사의 화자는 극도로 권태적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하몬드 오르간의 역할이다. 늘어지기도 하고 템포를 낮추기도 하고, 특유의 감성이 상실된 소리는 그로테스크하고 고어하다. 흰 종이에 아무런 규칙없이 나열된 글자들은 상관계수가 0에 수렴할 것이다. 이를 총칭하는 말은 결국 '낙서'로 귀결된다. 화자는 숨을 참기도하고, 눈을 감기도 하고 손목을 짚기도 하면서 자신의 생리적 상태를 체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인 녹색, 생기를 띄는 선홍색 피는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몸엔 오로지 '카페인'만이 흐를 뿐.
코드는 동시다발적으로 변형되며 파쇄적인 분위기를 띄게된다.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형식은 화자에게 남아있는 일말의 주체성을 캐내려 한다. 그를 침대에 묶어두려는, 인간이라면 모두 거역할 수 없는 중력에 저항하고 인간이라면 반드시 따라야하는 수면욕에 저항한다. 중력과 수면을 거스르려는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탁하고 기괴한 사운드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파괴'에 직면하게 된다. 일종의 '가학'일지도 모른다. 중력을 거스른 생물의 목적지는 죽음밖에 없다. 수면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하루만 밤을 새어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이처럼 참 나약하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비선형'이다. 비선형은 공학, 수학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지만 독특하게도 이이언은 해당 앨범의 제목으로 이를 선택했다. 이러한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신을 묶어두는 일말의 모든 것에서부터 탈출하고픈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하루는 그리 길지도 않고 지루하다 할 것도 없는데'와 같은 무기력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진술은 고독하며 모든 것을 달관한 자의 비참함마저 느껴진다. 그는 결국 더 이상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자극적인 육욕도, 달콤한 사랑도, 나른한 수면도, 구속의 중력도 그에겐 전부 통하지 않는다. 결국 그 자신을 괴롭히고 싶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카페인>이다. 저항할 수 없는 중력에 맞서 '누워있다'는 상태마저 감각할 수 없는 포근한 침대에 감싸이지만 역설적으로 카페인을 섭취함으로서 잠에 거역하는, 소시민적이고 사소한 일탈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임에 틀림없다.
못의 사운드는 기이하고 잔인하다. 물론 점점 최근으로 올 수록 어둠이 물러가지만 오히려 필자는 그러한 기조가 아쉽다. 변화하는 밴드의 스타일은 그들이 진화한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아쉬움으로 변환되기도 하는 것 같다.
<카페인>은 비선형에서 가장 늘어지는 곡이다. 기괴함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현기증'이나 '자랑'에 비해서..) 극한의 권태를 추구한다. 권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극이지만 그러한 자극은 결국 물린다. 일종의 금기의 설정과 그것의 분쇄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분쇄는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다. 이이언은 그것을 이리 지독한 사운드와 가사로 표현해 낸것이 아닐까.
카페인은 각성제 작용을 한다. 졸려도 한 잔만 마시면 금방 잠에서 깨거나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러나 그것에 익숙해지면 또다시 권태에 빠지고 더더욱 강력한 것을 찾아 방황하고, 허전함을 느끼게 될 것이 자명하다. 금기의 설정-분쇄-또 다른 설정-재분쇄.. 변증법적인 전개가 명확하리만치 보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더 우월한, 혹은 지극한 탈출을 꿈꾸기도 하며 발진한다. 그것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지만, 작금의 상황에선 약간 고삐를 늦출 필요도 있다. 'More and more'의 시대는 지났다. 조금만 천천히 살아봐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