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ny C Dec 01. 2023

그리스도의 계시 9

9th, 하늘 상급 8

 하늘 상급


생명책에 기록되어 지워지지 않는 이름 -4th

[요한계시록 3장 4~6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죄악에 물들지 않은 사람]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사람[신앙의 승리자]은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인데, 나는 그의 이름을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않을 것이며, 내 아버지 앞과 아버지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시인[인정]할 것이다."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리스도의 생명책 2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지워질 수 있다.

'출애굽기 32장 31~ 34절'

"모세가 주님께로 돌아가서 아뢰기를, '슬픕니다. 이 백성이 금으로 신상을 만듦으로써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주옵소서.'"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나는 오직 그 사람만을 나의 책에서 지운다.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보아라. 나의 천사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때가 되면, 내가 그들에게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다.'"


모세와 하나님 간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지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구원받을 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지우시는 분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은 자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만 그런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죄임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범죄 그리고, 피해자에게 사죄하지도 않으며, 주께 자백하고 회개하지도 않는 종교인의 교만'은 구원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생명책의 주인 예수께서는 그의 선하심과 자비와 사랑 때문에 죄인이 땅에서 죽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회개하라' 하시며 구원을 회복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럼에도, 육체의 마지막 호흡이 끝날 때까지 그리스도의 권고를 거절한 자는 결국 주께서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십니다. 

교회의 지도자와 목사로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남겼더라도, 심지어 성령님께서 수많은 기적들을 그를 통해 보이셨다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이 그러하다면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하나님의 존귀한 말씀과 계명을 왜곡하고 거짓 사상을 가르치는 교회의 지도자는 그가 죽은 후에도 끝날에 있을 어린양의 심판을 절망적인 공포 가운데 기다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7~9절', "그래서 성령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할 당시 반역하던 때처럼 못된 고집을 부리지 말라. 거기서 너희 조상들이 나를 떠보고 시험하였으며, 40년 동안 내가 하는 일을 보았느니라."

'11, 12절', "~ 또 내가 분노하여 '그들은 안식처가 될 약속의 땅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바울]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즉, 성령님의 말씀과 광야 40년 동안 백성이 행한 악을 돌아보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원에서 스스로 떠나는 사람이 있다'라고 분명히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에 대한 근거로 든 것이, 출애굽 당시 애굽에 내리신 재앙들을 보았고, 혹독했던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의 구원을 받았으며, 갈라진 홍해를 건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하시는 등,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음에도 그 백성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며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서 스스로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2장'에서 '하나님께 죄지은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겠다' 하신 것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복음서에서 찾아보면, 바리새파, 사두개파, 열심당원 같은 정치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자며, 하나님의 언약을 기다리는 자들이었지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로마 총독 빌라도를 끌어들여 '옛 언약대로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그분을 죽였습니다.'

주님의 제자 중에는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그는 3년이나 주님의 12제자 중에 속해 주님의 모든 양육을 받았고,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기적들을 경험했으며, 성경 예언들이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는 것을 직접 본 증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 가는 주님의 행보에 실망'했고, 주께서 먹게 하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외면한 채 고작 은 30에 자기 주님을 팔았고 그 죄책감에 침몰되어 스스로를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까지 제 손으로 버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자살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은 40년도 채 안된 주 후 70년, 제1차 유대 반란 기간 중에 로마 제국 각지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모여든 110만 명[요세푸스의 기록]이 단 3개월여 만에 소멸되었습니다.



니골라, 니골라 당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니골라'입니다. 그는 어쩌면 생전의 주님과 대면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사도들과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가르치는 주님의 계명과 복음을 들었고 믿었으며, 복음의 진리 또한 안다 할 수 있는 성도였습니다. 또 성령께서 사도와 제자들을 통해 보이시는 많은 기적들을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교회의 운영을 책임질 집사의 선출이 필요해졌습니다.


'사도행전 6장 3절'

'여러분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 명을 뽑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그들에게 이 일을 맞기겠습니다.'


선출된 그들은 사도들이 언급한 대로 '교회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 칭찬받는 성도들'이었고, 그 많은 성도들 가운데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 된 자가 '니골라'였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닌 안디옥 출신의 헬라 사람으로서 한때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단적 주장을 보면 헬라 철학에도 밝았고, '진리를 찾는 자 중의 한 사람이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곧 '많은 지식과 뛰어난 언변과 삶에서의 원칙'이 있으면서, '믿음과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많은 성도들과 사도들에게까지 칭찬받을 만큼 알려지고 인정된 자였습니다. 


율법 폐기론

그러나, 헬라 다신교 신앙과 철학을 배경으로 성장한 그의 사상에는 '영과 육을 각기 독립적인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관점'이 숨어 있었고, 이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과 육체가 하나로 지음 받은 존재가 사람'이라는 관점, 철학적 표현으로는 '영-육 일원론'과 대립하는 견해였습니다. 즉, 창세기의 아담 창조를 역사적 관점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플라톤 철학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첨가해서 '육체가 이데아[본질]의 미메시스[모방]이므로, 육체의 범죄와 타락은 본질인 영의 구원과 영생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간의 사상으로 왜곡하고 훼손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로마와 그리스 사람들의 일상이 얼마나 방탕하고 탐욕스러웠는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듯이, 그들의 탐욕스럽고 음탕한 생활방식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전파된 것입니다. 그의 화려한 말재주에 많은 성도가 속았고, 세속인과 다를 바 없이 방탕한 삶을 살다가 끝내는 그리스도의 구원에서 스스로 떠나버렸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께서는 큰 기쁨으로 생명책에 기록하셨던 그의 이름과 추종자들의 이름들까지 모두 지우시면서 큰 슬픔에 아파하셨음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에베소 교회에게는,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하셨고, 버가모 교회에게는, "이와 같이[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와 같은]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즉, 니골라를 발람의 후손으로 정죄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4, 15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버가모 교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런데, '율법을 거스르는 육체의 죄가 영의 구원과 관계없으므로, 구원받은 후에 범하는 죄는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게 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니골라와 니골라 당의 율법 폐기론'은, 얼핏 바울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언급한 '폐하여진 율법'과 말도 비슷하고 내용도 같은 맥락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철학적 이원론의 구원관과 성경적 일원론의 구원관은 '사람에 대한 인식'이 서로 대립하고 있어서 '육체의 범죄가 영의 구원에 영향이 있고/없고'에 극단적으로 다른 결론을 만든다는 것이 큰 차이입니다. 

이원론 관점에서는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것이 그 결론이고, 영과 육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경적 구원관의 결론은, 발람이 이스라엘 청년들을 음행에 빠지게 해서 2만 4천의 남자를 죽게 만든 것처럼, 육체의 범죄는 육체만 죽게할 뿐 아니라 영도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자신의 범죄에 대한 정당성을 고집하기 위해 본인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못하게 해서 결국은 영원한 심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이를 말함에 있어서 성경적 진리에 중심을 둔 바울은, '니골라의 율법 폐기론'이 자신의 '폐기된 율법에 대한 언급'과는 전혀 다르고, 단지 비슷하게 모방된 거짓이라는 논지를 '로마서 6장'에서 분명히 밝힙니다. 


'로마서 6장'

2절,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6절, "우리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에 매인 육체를 죽여서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인 줄 압니다."

15절, "그러면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언급한 폐기된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 의인의 길로 인도하는 율법의 기능'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상징과 계시가 담긴 율법의 형식 즉할례와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와 절기 준수와 같은 그리스도의 예표들이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이미 완벽하게 성취하셨기 때문에 폐하여진 것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또한, 율법에서 의인을 위한 규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계명 하나에 귀결되었다는 것과, 그 계명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예수께서 십자가에 오르심으로 보이셨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들의 육체 역시 그리스도께서 오르신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는 육체의 욕심과 탐심을 채우는 범죄에 다시 빠져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물려받은 자들을' 주께서 율법에도 완전케 하심으로 율법의 형식이 더 이상 필요 없게 하셨는데, 그 존귀한 공로를 왜곡하고 비틀어버린 것이 니골라가 주장한 율법 폐기론 이단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런 니골라당의 이단교리는 지금의 '구원파'로 계승되었습니다.



율법주의

사도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집중적으로 언급한 '폐하여진 율법'은 '율법폐기론이 옳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바리새파를 비롯한 '유대 율법주의에 대한 반론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에 의한 할례 그리고,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의인의 길을 가르치는 모세의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의 경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제물이 되어 마지막 제사가 십자가 위에서 드려졌으므로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된 것과 같은 이해입니다.

그리고 '율법주의'는 '모세가 전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을 받고, 또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인데, 그러나 율법의 기능은 죄를 자각하게 하며 의인의 삶을 살게 하고, 지상의 삶에서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아 '주께서 약속하신 지상에서 누릴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헬라제국에 이어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환란과 수모를 견디고 있던 당시 유대민족이 간절히 고대하던 하나님의 복, 즉 '메시아의 구원은 강한 제사장 국가 이스라엘의 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유대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의 율법과 함께 제사장 국가로서의 강한 이스라엘'을 주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과 선지자들의 경고와 그분의 나라와 왕되신 하나님을 멸시했고, 결국 당시로 근 600년 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로는 '제사장 국가 이스라엘과 성전 재건과 율법의 의에 이르는 길'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도록 자신들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때문에 성전은 무너지고 언약궤는 사라졌으며, 다윗의 왕권은 나라를 잃었고, 제사장은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었으며, 백성은 포로가 되어 강제이주를 당한 것입니다.

결국 메시아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그때에도, '모세의 율법이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 재건'이라고 오해했고, 그 오해는 2천 년이 진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주실 복'은 제사장 국가의 재건이 아닌, 창세 때에 여호와께서 선포하셨던 대로 '그분을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복은 이스라엘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상 만국 모든 백성을 위하는 생명구원의 성취'였습니다.

곧, 복음을 접한 모든 자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결국 '율법의 의'에는 흠이 없도록 더 이상의 죄를 범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하심을 받을 수 있는 '구원의 첫출발'을 그리스도께 가르침을 받은 사도 바울도 동일하게 말한 것입니다. 

사실, '믿음'은 한순간의 선택이라 어렵지 않다 말할 수도 있지만 그 한 번의 선택이 참 어렵고, '믿음의 성장'은 율법에 완전함을 이루는 것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좁은 길을 가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0~22'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다만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뿐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면 누구나 차별 없이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구원파

그런데, 혹자들은 '계시록의 니골라가 사도행전의 니골라와 다른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 근거로 '한번 구원받은 자는 그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데, '로마서 8장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라는 바울의 언급을 인용합니다. 

'이미 구원받은 집사 니골라는 그리스도께서 이단으로 지목한 '니골라당의 수괴 니골라'일 수 없다'는 단순 추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군의 주께서 지키시는 백성의 구원은 절대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비슷한 언급이 성경에 다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에 이어서 한 말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했는데, 이는 '세상 권력의 모든 외압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지킨다는 말'이지, '구원에서 떨어질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여호와께서도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제어하지 않으셨고, 구원의 하나님 예수께서도 가룟 유다를 비롯해 니골라와 모든 성도의 자발적인 선택을 존중하시면서 믿음을 지키는 자는 기뻐하시되, 스스로 영생구원을 버리는 자는 크게 슬퍼하십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의 편지 여러 곳에서 '구원에서 떨어질 것을 조심하라' 가르치고, '히브리서 3장'에서는 더욱 분명하고 강하게 권면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떠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2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믿지 않은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래서 더 집중해야 할 문제는, 니골라가 일곱 집사 중의 한 명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명이인이라는 그 주장의 논리적 배경'에 있습니다. 그 주장의 주체가 다름 아닌 교회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사상적 배경은 '헬라 철학의 이원론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혼합되어 만들어진 율법폐기론'에 따른 것인데, '복음의 진리를 지킨다는 교회'에서 '니골라의 그 이단사상 율법폐기론'을 주장하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 이단사상에 빠지면 스스로 구원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한 문단에서, 한 챕터에서, 한 권의 책에서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맥락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은혜받은 한 문장에 집중한 채 그 문장만 깊이깊이 묵상하다 보면, 자기만의 소설을 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듣지 않고, 자신의 사상에 기록된 말씀을 끼워 맞추고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신 말씀이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해석에 의해 참 깊다 할만한 감동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런 감동이 그 몇몇 문장의 본질적인 의미라고 단순 규정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율법폐기론, 그와 동일한 구원파의 그 주장은, '기록된 한 문장의 글을 읽고 말은 알아듣되, 그 글 속에 담긴 의미는 전혀 파악하지 못한 데서 일어나는 오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소설 같은 오해를 진실이라 믿고 주장하면 그것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조금도 알지 못한 채,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구절 암송만 하는 것' 역시 구원파 같은 이단 사상이 파고들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됩니다.


사실, 필자도 한 때 구원파의 가르침이 너무 듣기 좋고 큰 감동도 있어서 그 주장이 진실되다고 믿었었고, 니골라는 당연히 동명이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발람의 후손이 니골라이고, 니골라당의 후손이 구원파임을 몰랐던 겁니다. 

그러나 니골라당의 사상은 사도 바울에 의해 이미 정죄되었고 그들의 주장과 이단적 오류는 그의 서신서에 기록되었으며, 요한에게 임하신 주께서도 니골라당을 '싫어한다' 하셨습니다. 이후 교회에서도 이단으로 단죄되었지만,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구원파의 이름으로 교회에 빌붙어 있는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스도의 계시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